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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시장이 정한 카테고리 부숴야 미래가 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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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현상 기자 중앙일보 논설실장

부엌·가구 이어 리모델링으로 승부수 … 한샘 강승수 회장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홈 루덴스. ‘호모 루덴스’(놀이하는 인간)을 살짝 비튼 이 신조어의 뜻은 ‘집에서 놀고 즐기는 사람들’. 위험한 바깥을 피해 일·운동·재충전 등 웬만한 활동은 집에서 해결하는 신풍속도를 표현한다. 약간 과장을 보태면 코로나19가 낳은 새로운 인간 유형이다. 코로나19가 삶의 많은 것을 바꿨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집에 대한 개념이다. 생활 공간으로서 집의 중요성이야 코로나 전에도 이미 강조됐지만, 이른바 비대면(언택트) 활동의 증가는 이런 경향을 가속했다.

토털 인테리어로 매출 10조 목표 #가구·IT 결합한 스마트홈에 도전 #코로나 시대 라이프 스타일 변화 #또 다른 변신 향한 도전이자 기회

한샘은 이런 변화에 가장 민감한 기업이다. 급변하는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곧 회사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강승수 회장은 “업의 본질마저 바꾼다는 각오로 혁신에 도전하지 않으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한다. 2019년 말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 강 회장은 취임 후 곧장 사업조직 체제를 바꾸는 등 회사 변신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서울 상암동 본사에서 강 회장을 만났다.

강승수 한샘 회장이 서울 상암동 본사 사 7층에 있는 모델하우스에서 회사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사옥 7층 전체가 다양한 면적의 리모델링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한샘은 부엌·가구에서 토털 인테리어 사업으로 주력을 옮기고 있다. 임현동 기자

강승수 한샘 회장이 서울 상암동 본사 사 7층에 있는 모델하우스에서 회사 전략을 설명하고 있다. 사옥 7층 전체가 다양한 면적의 리모델링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한샘은 부엌·가구에서 토털 인테리어 사업으로 주력을 옮기고 있다. 임현동 기자

코로나19에도 지난해 실적이 좋았다.
“2017년 2조원 매출을 달성한 뒤 2년 연속 후퇴했다가 지난해 회복했다. 재택근무와 원격 교육이 일상화하면서 가구·인테리어·소품 등 집에 대한 소비자들의 투자가 크게 늘었다. 소비자들이 ‘삶의 공간으로서 집’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수록 홈 관련 산업은 지속해서 성장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더 큰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 시대 집은 어떻게 바뀔까.
“재택근무 확산에 따른 홈 오피스 공간 확대, 가족 공간 강화, 개인 공간과 가족 공간의 분리, 스마트홈 기술 적용, 인텔리전트 수납공간 확대 등이 집의 새로운 트렌드가 될 것으로 본다. 하지만 이런 변화에도 불구하고 집의 세 가지 본질적 기능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더 나은 미래 세대 육성의 공간,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공간, 재충전과 휴식으로서의 공간이 그것이다. 인테리어는 이 기능의 회복에 기여해야 한다.”
지난해 창사 50년을 맞아 7년 내 매출 10조원 목표를 발표했다. 지금 매출의 5배나 되는데.
“2조 매출 달성 뒤 주춤했던 것은 내부 역량 부족 때문이었다. 체질 강화를 위해 사업본부별 책임경영제를 도입했다. CEO가 모든 의사 결정을 맡던 체제에서 5대 사업본부가 각각 중기 목표와 전략, 결과를 책임지는 체제로 바꿨다. CEO는 신성장동력 발굴 등 미래 준비에 더 신경 쓸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변화가 성과로 이어진다면 매출 10조원 조기 달성도 가능하리라 기대한다.”

‘리하우스’ 브랜드로 사업 주력 교체

한샘 사업조직 중 두드러진 곳이 ‘리하우스’ 사업본부다. 리하우스는 가구뿐 아니라 욕실·창호·바닥재 등 집 전체를 통일성 있게 바꾸는 리모델링 사업 브랜드다. 기존에는 인테리어 제휴점에 가구와 부엌·욕실 자재를 납품했으나, 철거부터 설계·시공, 사후 관리(AS)까지 직접 책임지는 리모델링 사업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변신은 성공적이었다. 전국 500여개 리하우스 대리점을 통해 ‘리모델링 패키지 상품’이 현재 월 1500세트 정도 판매되고 있다. 이를 월 1만 세트까지 늘려 매출 목표 10조원 중 5조원을 리모델링 사업으로 달성하겠다는 것이 강 회장의 구상이다.

한샘 분기별 실적

한샘 분기별 실적

가구업에서 리모델링 쪽으로 주력이 바뀌었다.
“시장도 시장이지만, 홈 퍼니싱 전문 기업으로 가진 우리 경쟁력에 자신이 있었다. 설계와 시공 능력이 결합해야 하는 리모델링 사업은 쉽게 손대기 어려운 분야다. 소비자들의 기호가 저마다 달라 분쟁도 잦다. 여간한 업력이 쌓이지 않으면 안 된다. 사나흘씩 걸리던 욕실 공사를 패널을 이용해 하루 만에 끝내는 기술 등은 이런 노하우의 산물이다. 숙련된 시공 사원은 물론 소비자 요구를 맞춰줄 영업 인력도 필요하다. 변신에도 자산이 필요한 법이다.”
리모델링 사업에 IT 기술을 어떻게 결합하나.
“지금까지 고객들은 리모델링 후 달라지는 집 모습도 제대로 확인 못 하고 계약했다. 생각해보라. 자동차 등 비싼 내구재 상품 대부분 완성품을 보고 사지 않나. 수천만 원짜리 계약을 하면서 팸플릿에 나온 그림만 보고 덜렁 선택하라는 건 불합리하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 기술 기반의 온라인 인테리어 설계 플랫폼 ‘홈플래너 2.0’을 개발했다. 전국 매장과 대리점에서 고객들은 리모델링 후 바뀌는 공간의 모양을 실물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고객에 상품을 보여주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홈플래너로 설계된 주거 공간은 데이터베이스(DB)로 누적돼 빅데이터가 된다. 방대하게 축적된 DB는 고객 특성에 가장 적합한 인테리어를 제안할 수 있게 한다. 궁극적으로는 이를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과 연결해야 한다. 기술 기반의 홈 리모델링을 위해서는 IT 기업과 협업도 강화할 계획이다.”

“카테고리 파괴가 한샘의 역사”

국내 대표적 장수 브랜드 한샘의 50년은 변신의 역사이기도 하다. 1970년 조창걸 명예회장이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자본금 200만원으로 매장을 열며 시작한 한샘은 한국 부엌에 혁명을 가져 왔다. 1997년에는 서울 방배동에 국내 최초로 가구·인테리어 원스톱 쇼핑을 할 수 있는 ‘플래그샵’(대형 매장)을 내며 가구를 제조에서 유통 개념으로 접근했다. 설계·시공·AS를 묶은 토털 인테리어(홈 리모델링)는 한샘의 또 다른 변신 도전인 셈이다.

직원들에게 ‘카테고리 파괴’를 강조하고 있다고 들었다.
“기존 시장에 이미 형성된 카테고리에 매이는 순간 기업의 미래도 묶인다. 카테고리 파괴라는 도전이 없었으면 지금의 한샘은 없었다. 싱크대에서 부엌 전체 설계로, 단품 가구에서 ‘공간’으로, 가구 제조에서 유통으로, 개별 건재 공급에서 ‘풀 리모델링 패키지’로…. 조직 문화에 내려온 DNA라 할 수 있다. 홈 리모델링 사업도 언젠가는 넘어야 할 카테고리가 될 것이다. 그 길을 스마트홈과 스마트시티로 향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에서 찾고 있다.”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기존 리하우스와 온라인을 결합한 혁신적 인테리어 비즈니스 모델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한샘닷컴’과 ‘한샘몰’을 통해 고객과 전국 700곳의 오프라인 매장을 연결하는 ‘O4O(Online for Offline)’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 내 3D로 고객 집을 제안하는 ‘홈아이디어 콘텐츠’를 오픈할 계획이다. VR로 모델하우스를 보며 가족 유형과 라이프스타일, 예산에 맞춰 고객이 직접 집을 꾸며 볼 수 있다.”
해외 사업, 특히 중국에 관심이 많았는데.
“중국 소비자들의 특성이 국내와 달라 고전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내 시장의 리하우스 사업 성공 모델을 중국 시장에 접목해 재도전에 나설 계획이다. 국내처럼 기존 가구 중심에서 리모델링 중심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현지 경쟁사와는 차별화된 설계와 시공 서비스를 갖춰나갈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중국인들도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욕구가 높아짐에 따라 중국 인테리어 시장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입사 24년 만에 회장 … “장애물 있는 곳이 곧 길”

“장애물이 있는 곳이 바로 길.” “평범함이 쌓여 비범함이 된다.”

강승수 회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대기업(대한항공)에 다니다 1995년 한샘에 대리로 입사했다. 입사 이후 고속 승진을 거듭한 끝에 24년 만에 대표이사 회장에까지 올랐다. 성공의 비결을 귀띔해달라는 말에 그는 쑥스러워하다가 앞의 두 마디를 꺼냈다. 그는 “대기업에 있었으면 이런 정도의 역할을 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당시) 중소기업에 와서 기회가 생겼다”고 말한다.

입사 직후 가정용 가구 시장 진입을 위해 대형 매장 설립을 세운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기업 정체성을 제조에서 유통으로 돌리는 도전이 성공하면서 한샘은 가구업계 1위로 도약했다. 강 회장은 “당시엔 무모한 짓 같았지만, 고비를 넘고 나니 길이 열렸다”고 말했다. 새로운 주력인 리모델링 사업도 그에겐 도전이다. 다양한 아이템을 한 공간에 구현해서 전체를 시공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전 세계 어느 기업도 리모델링 상품을 양산화해서 판매하지 못하고 있다. 그는 “이런 도전이 가능한 것은 평범해 보이지만 한샘이 쌓아놓은 경험·노하우와 인력 때문”이라고 말한다. 요즘은 50대 중후반의 나이를 잊고 젊은 IT(정보통신)·벤처업체 CEO들과 교류를 넓혀가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기술 속에서 회사의 미래를 모색하려는 노력이다.

이현상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