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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w] 국가가 영업손실 보상…여권발 100조짜리 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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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코로나19로 경제적 피해를 본 국민을 국가는 보상(補償)해야 하나. 한다면 누구를, 어느 정도까지 해야 하나. 21일 정치권에서 불거진 ‘손실보상제’가 한국 사회에 던진 질문이다.

정세균 방역피해 보상 법제화 지시 #기재부 반발하자 “저항 세력이냐” #“영업제한 피해 지원 필요하지만 #돈 어떻게 풀지 세밀한 검토 필요”

손실보상제를 주도하는 이는 정세균 국무총리다. 정 총리는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에서 “정부의 방역 기준을 따르느라 영업을 제대로 못 한 분들에게 적절한 지원이 필요하며 이를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할 때”라며 “기획재정부 등은 국회와 함께 법적 제도 개선에 나서 달라”고 지시했다.

정 총리의 손실보상제 구상은 전날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나왔다. 그는 “방역이라는 목적이 있지만 현재의 영업정지 등은 정부가 경제활동을 금지하거나 제한한 것 아닌가. 천재지변하고는 다르다”며 “국민이 합법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야 한다. 그런 점을 대통령님과도 여러 번 논의해 공감대가 만들어진 상태”라고 했다. 정 총리는 또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이번 방역 지침으로 재산권에 제한을 당한 분들에게 헌법에 따른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다”며 헌법정신에 입각했음을 강조했다.

여당은 곧바로 화답했다.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감염병 예방을 위해 정부 지침에 따라 영업하지 못한 소상공인에 대한 지원을 제도화하는 것은 정부와 국가의 기본 책무”라고 말했다.

여태 코로나로 인한 피해를 메우는 주요 방법은 ‘지원’이었다. 코로나 재난지원금 논란도 보편적(전 국민)이냐 선택적(저소득층)이냐, 혹은 액수를 얼마로 하느냐 등 세부 방식을 두고 다퉜지만 대의는 ‘피해 본 이들을 돕는다’는 복지적 접근이었다. 하지만 ‘보상’은 비록 적법한 절차라 해도 그로 발생한 손실을 책임지라는 법률적 개념이다. 강제성을 띤다는 얘기다. 국가의 역할이 자율적 선택(지원)에서 강제적 의무(보상)로 바뀌게 된다.

총리실 관계자는 “고통이 큰 분들에게 두텁게 지원하자는 것은 정 총리의 일관된 생각이다. 손실보상법도 그런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정 총리는 이날 회의에서 “코로나19가 종식돼도 앞으로 이와 유사한 신종 감염병이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고 말했다.

이낙연 이익공유제, 이재명 재난지원금…대선 주자들 퍼주기 경쟁 시각도

하지만 법률이란 구체적이어야 하며 형평성을 유지해야 한다. 실무를 맡게 될 기재부가 난색을 표하는 이유다. 김용범 기재부 차관은 전날 비상경제 중앙대책본부 정례 회견에서 손실보상제와 관련해 “해외에서 법제화한 나라는 찾기가 쉽지 않다”고 답했다. 기재부에선 “정부 대책이 아닌 법으로 조문화할 경우 제외된 이들의 법적 소송 등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이에 정 총리는 전날 김 차관의 발언을 보고받고는 “이 나라가 기재부의 나라냐”고 진노했다고 한다. 방송 인터뷰에선 기재부를 겨냥한 듯 “개혁하는 과정엔 항상 반대 세력, 저항 세력이 있다”고 했다. 결국 김 차관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국가경제자문회의 참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정 총리가 지시한) 제도화 방안을 상세히 검토해서 국회 논의 과정에 임하겠다”며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정 총리가 드라이브를 걸면서 자영업자 손실보상제는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일단 관심은 얼마의 돈이 드느냐다. 민병덕 민주당 의원은 손실 매출액의 50%(일반 업종)에서 최대 70%(집합금지 업종)까지 보상하는 법안을 22일 발의하는데, 이 경우 보상액은 월평균 24조7000억원이다. 영업 제한 기간을 4개월로 한정하면 총액은 98조8000억원이다. 올해 정부 총예산(558조원)의 17.7%에 달하며, 국방 예산(52조8000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액수를 줄여 최저임금·임대료의 20%를 지원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한 달 1조2370억원, 연간 14조8440억원으로 추산했다. 다만 이 경우엔 “보상이란 ‘피해 입은 전액을 돌려준다’는 의미 아닌가. 액수가 적으면 법 취지가 무색해진다”(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는 반론도 나온다.

지난해 기준 국내 자영업 종사자 수는 657만3000명으로 전체 취업자(2690만4000명) 중 24.4%를 차지한다. 하지만 자영업자의 매출이나 소득 등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정확한 피해 액수 등을 산출하고 대상자를 선별하는 데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 지원 대상에서 빠진 자영업자의 반발도 예상된다.

근본적으론 국가적 보상의 적절성 여부다. 이영 한양대 교수는 “정부가 손실이 난 걸 보전해 준다면 경제활동 유인이 줄어들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 총리는 여권 내 대선주자로 꼽힌다. 코로나 피해 보존과 관련해 이낙연 민주당 대표가 이익공유제를, 이재명 경기지사가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피력하자 정 총리가 차별화 전략에서 손실보상제를 꺼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4·7 재·보선과 내년 대선 등을 앞두고 정치권의 선심성 퍼주기 경쟁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커질 공산이 크다. 정교한 검토 없이 서두르기만 해선 안 될 일이다. 대통령학연구소장인 임동욱 한국교통대 교수는 “코로나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은 필요한 게 사실”이라면서도 “중요한 건 어떻게 돈을 풀어 어떤 효과를 거둘 것인가라는 세밀한 예측과 검토다. 정치적 사감이 들어가면 부작용만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민우 정치에디터, 조현숙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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