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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부른 '초유의 풍경'···핵 가방 2개가 돌아다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20일(현지시간) 미국의 제46대 대통령 취임식에선 두 개의 ‘핵 통수권’이 교차했다. 미국의 핵미사일 발사 명령을 내릴 수 있는 핵가방 2개가 돌아다닌 것이다. 조 바이든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몽니를 부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탓이었다.

트럼프 몽니 탓 핵가방 2개 겹쳐 #핵공격 명령 내릴 수 있는 '버튼' #대통령ㆍ부통령용 등 3~4개 존재

2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 전 바이든 대통령 측 핵가방을 든 장교가 취임식장인 미 의회 의사당에 들어가고 있다. 왼쪽(오른손)에 든 가방이 핵가방이다. [Mike DeBonis 트위터 계정 캡처]

20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 전 바이든 대통령 측 핵가방을 든 장교가 취임식장인 미 의회 의사당에 들어가고 있다. 왼쪽(오른손)에 든 가방이 핵가방이다. [Mike DeBonis 트위터 계정 캡처]

일반적으로 핵가방은 신임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한 직후 권한을 넘겨받는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오전 8시 20분쯤 대통령 전용헬기인 마린원을 타고 백악관에서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떠났다. 이때 핵가방을 든 장교가 트럼프 전 대통령을 따라갔다. 오전 11시 15분쯤 또 다른 핵가방을 든 장교가 바이든 취임식이 열리는 의회 의사당에 입장했다.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나기 전, 장교가 핵가방을 대통령 전용 헬기에 운반하고 있다. 정면에 보이는 가방이 핵가방이다. [AFP]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을 떠나기 전, 장교가 핵가방을 대통령 전용 헬기에 운반하고 있다. 정면에 보이는 가방이 핵가방이다. [AFP]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고 바이든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하는 낮 12시, 핵무기 발사 권한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서 바이든 대통령으로 넘겨졌다. 핵 코드가 자동으로 바뀌면서다. 이에따라 트럼프 전 대통령을 따라가던 핵가방은 사용불가가 됐다. 물론 트럼프 전 대통령을 플로리다까지 수행한 '핵가방 장교'는 다시 이 핵가방을 들고 워싱턴으로 돌아왔다.

핵가방의 정식 명칭은 ‘대통령 긴급사태 가방(Presidential Emergency Satchel)’이다. 제로할리버튼이라는 가방회사가 만든 서류 가방이다. 겉은 까맣게 칠해졌다.

스미소니언 미국사 박물관에 전시 중인 핵가방. 이 가방을 들고 다니는 장교는 분실을 막기 위해 금속줄을 자신의 손목에 묶는다. [스미소니언 박물관]

스미소니언 미국사 박물관에 전시 중인 핵가방. 이 가방을 들고 다니는 장교는 분실을 막기 위해 금속줄을 자신의 손목에 묶는다. [스미소니언 박물관]

미국에선 공식 명칭보다 ‘풋볼(Football)’ 또는 ‘뉴클리어 풋볼(Nuclear Football)’이란 별명으로 더 잘 알려졌다. 핵 공격 계획이 암호명인 드롭킥(Dropkick)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드롭킥은 풋볼(미식축구)에서 공을 땅에 떨어뜨려 튀어 오를 때 차는 방법을 뜻한다. 핵가방은 풋볼 공을 넣을 수 만큼 크다.

핵가방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은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지시로 본격 운용됐다. 적국의 갑작스러운 핵공격에 즉각 핵으로 반격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핵가방 안에는 핵공격 계획이 담긴 블랙북(Blackbook), 대통령이 피난할 장소 안내서, 긴급 방송 안내 절차가 담긴 폴더, 핵공격 명령 보안 코드가 적힌 카드 등이 들어있다. 또 핵 코드를 전송할 통신장비가 내장됐다.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찾았을 때 미 해군 장교가 핵가방을 들고 수행하고 있다. 이철재 기자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찾았을 때 미 해군 장교가 핵가방을 들고 수행하고 있다. 이철재 기자

핵 코드 카드는 비스킷이라고도 불린다. 핵공격 명령자가 대통령임을 식별할 수 있도록 글자와 숫자를 조합한 코드가 적혀 있다. 핵 코드가 있어야 핵공격 명령을 내릴 수 있다. 핵가방이 미 대통령의 군 통수권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유다.

핵 가방은 늘 미국 대통령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한다. 현역 영관급 장교들이 교대로 핵가방을 들고 미 대통령을 따라다닌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부통령도 핵가방과 함께 움직인다. 그래서 오바마 행정부 때 부통령을 8년간 수행했던 바이든 대통령은 핵가방에 대해 아주 잘 안다고 한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이번에 핵가방과 핵공격 절차를 배워야 한다. 부통령이 지근거리에 유지하는 핵가방은 대통령 유고 등의 경우에 사용 권한이 부여된다.

안보 소식통에 따르면 이 밖에도 여분의 핵가방이 1~2개 더 있다. 비상시 지정생존자가 사용할 용도다.

러시아도 핵가방을 갖고 있다. 2012년 러시아 대통령 인수인계식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신임 대통령(오른쪽열 왼쪽)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임 대통령(왼쪽열 가운데)으로부터 핵가방을 넘겨받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실]

러시아도 핵가방을 갖고 있다. 2012년 러시아 대통령 인수인계식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신임 대통령(오른쪽열 왼쪽)이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임 대통령(왼쪽열 가운데)으로부터 핵가방을 넘겨받고 있다. [러시아 대통령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핵가방과 관련한 일화가 많다. 2017년 11월 9일 중국 방문 당시 트럼프 전 대통령 일행이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 입장할 때 핵가방을 든 장교가 중국 측의 제지로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자 미국과 중국 수행원간 몸싸움이 있었다는 보도도 나왔다. 결국 중국 측은 사과했고, 이 일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것으로 양국이 합의했다고 한다.

2018년 1월 2일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트위터에 “북한 지도자 김정은이 방금 ‘핵단추가 항상 책상 위에 있다’고 했는데, 나는 그가 가진 것보다 더 크고 강력한 핵 버튼이 있다는 사실을, 식량에 굶주리고 고갈된 정권의 누군가가 그에게 제발 좀 알려주겠느냐”고 썼다. 그는 말미에 “내 버튼은 작동도 한다!”고 덧붙였다.

당시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핵 단추가 내 사무실 책상 위에 항상 놓여 있다”고 밝힌 데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발끈하면서 한 대응이었다. 핵가방의 별명 중 하나가 버튼(button)이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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