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길 그리고 대게… 겨울 영덕을 여행하는 법

중앙일보

입력 2021.01.21 05:00

바다에서 바라본 영덕의 갯마을. 바다를 바라보고 비탈에 터를 잡았다. 알록달록한 지붕을 인 어촌의 집들이 지중해 어느 마을 못지 않게 예쁘다.

바다에서 바라본 영덕의 갯마을. 바다를 바라보고 비탈에 터를 잡았다. 알록달록한 지붕을 인 어촌의 집들이 지중해 어느 마을 못지 않게 예쁘다.

올겨울은 유난히 겨울 색이 짙다. 바람도 야무지게 맵고, 여느 겨울보다 눈도 많이 내린다. 마음이라도 따뜻하면 좋겠는데, 가슴에 부는 바람이 더 차다. 그래도, 아니 그래서 길을 나선다. 사람이 붐비는 곳은 피해야겠고,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곳이면 좋겠다.

문득 바다가 떠올랐다. 무심히 들고 나는 파도를 온종일 바라봐도 좋고, 붉은 해 떠오르는 새벽 바다에 나가도 좋다. 은빛 윤슬 일렁이는 한낮의 바다도, 바닷바람 모진 모래사장도 좋다. 동해안의 한갓진 겨울 풍경을 그리다 경북 영덕의 블루로드를 떠올렸다. 꼭 10년 전 이맘때 이 길을 걸었었다. 그땐, 사람이 그리워 길 위에 섰다. 지금은, 사람과 떨어지려 길을 걷는다.

푸른 길

영덕 축산항의 블루로드 다리. 창포말등대에서 시작한 블루로드 B코스가 축산항에서 끝난다.

영덕 축산항의 블루로드 다리. 창포말등대에서 시작한 블루로드 B코스가 축산항에서 끝난다.

해파랑길은 부산에서 강원도 고성까지 동해안을 잇는 770㎞ 길이의 대형 트레일이다. 이 대장정의 원조가 되는 길이 블루로드다. 2009년 여름 해파랑길 조성 계획을 발표할 때 문체부 담당자가 “동해안에 블루로드 같은 길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던 걸 똑똑히 기억한다.

블루로드는 영덕군청 공무원이 조성한 길이다. 영덕 해안을 따라 모두 4개 코스를 조성했다. 해파랑길이 이 길을 고스란히 빌려 쓴다. 블루로드 A∼D코스가 해파랑길 19∼22코스다. 하여 이름이 두 개여도 길은 하나다.

영덕의 랜드마크 창포말등대. 창포 끝에 있는 등대여서 창포말등대다. 대게 집게다리 모형을 등대에 덧씌웠다.

영덕의 랜드마크 창포말등대. 창포 끝에 있는 등대여서 창포말등대다. 대게 집게다리 모형을 등대에 덧씌웠다.

블루로드의 하이라이트 구간이 B구간, 해파랑길로 치면 21코스다. 창포말등대가 있는 해맞이공원에서 축산항까지 12.8㎞ 길이다. 길은 크게 두 구간으로 나뉜다. 해안도로 옆 인도를 걷는 구간과 옛 해안초소를 잇는 해안절벽 구간. 해안도로가 옛 7번 국도다. 왕복 4차로 신작로가 7번 국도 이름을 가져가면서 20번 지방도로로 이름이 바뀌었다. 해맞이공원에서 대게 원조마을로 유명한 경정 2리까지 이어진다. 경정 2리에서 축산항까지 약 4㎞ 구간이 해안초소길이다. 바다와 바투 붙어 있어 큰 파도가 일면 포말이 튄다. 장담하는데, 이 10리 길은 770㎞ 해파랑길에서 가장 빛나는 구간이다.

블루로드의 대표적인 풍경. 해안 절벽을 따라 탐방로가 나 있다. 옛날 해안초소를 연결했던 길을 걷기여행길로 개조했다.

블루로드의 대표적인 풍경. 해안 절벽을 따라 탐방로가 나 있다. 옛날 해안초소를 연결했던 길을 걷기여행길로 개조했다.

블루로드 해안절벽 길을 바다에서 바라봤다. 멀리서 탐방객 2명이 바다를 보고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블루로드 해안절벽 길을 바다에서 바라봤다. 멀리서 탐방객 2명이 바다를 보고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영덕에 가면 굳이 이정표를 찾아다니며 걸을 필요가 없다. 영덕의 길은 모두 바다로 나 있거나, 바다와 나란히 누워 있다. 어느 길을 걸어도 파란 바다가 함께한다.

겨울 바다 

겨울 대진 해변. 해 질 무렵이어서 그림자가 길다. 한동안 바다를 바라봤다. 코로나 시대 왜 사람들이 그렇게 바다를 찾는지 알 것도 같았다.

겨울 대진 해변. 해 질 무렵이어서 그림자가 길다. 한동안 바다를 바라봤다. 코로나 시대 왜 사람들이 그렇게 바다를 찾는지 알 것도 같았다.

이문열이 1979년 발표한 자전소설 ‘그해 겨울’은 스물한 살 청년의 방랑기다. 이 방랑기와 다른 두 편의 단편을 묶어 이문열 초기 대표작 『젊은 날의 초상』이 완성됐다. 이문열이 국민 작가로 통하던 시절, 수많은 청춘이 ‘그해 겨울’의 청년 영훈처럼, 아니 작가 이문열처럼 혼자 길을 나섰다. 그 길고도 외로운 여정의 끝은 예의 바다였다.

갈대밭 너머 백사장이 있고 백사장 너머 바다가 있다. 대진 해변 풍경이다.

갈대밭 너머 백사장이 있고 백사장 너머 바다가 있다. 대진 해변 풍경이다.

소설에 나오는 바다가 영덕 대진 해변이다. 대진 해변과 고래불 해변을 묶어 이른바 ‘명사이십리길’이 이어진다. 소설에서 영훈은 작가의 고향인 경북 영양에서 창수령을 넘어 송천을 따라 대진 해변까지 걷는다. 이윽고 바다 앞에 선 영훈은 수첩에 이렇게 적는다. ‘바다, 나는 결국 네게로 왔다. 돌연한 네 부름은 어찌 그렇게도 강렬했던지.’

블루로드를 걷는 탐방객들. 블루로드는 바다와 바투 붙어있다.

블루로드를 걷는 탐방객들. 블루로드는 바다와 바투 붙어있다.

영훈이 바다를 찾아갔던 그해 겨울처럼 올겨울도 유례없는 폭설이 쏟아졌고, 한겨울의 대진 해변은 예나 지금이나 쓸쓸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모래사장을 서성거리다, 30년 전 영훈처럼 홀로 바다를 찾아온 청년 두어 명을 목격했다. 그들은 각자 백사장에 앉아 한참 바다를 바라보다 툴툴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영훈처럼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표를 끊으러 가는 길이겠거니 믿었다. 바다는 여전히 청춘을 부른다. 청춘이 아니어도 바다의 부름은 늘 돌연하고 강렬하다.

대게의 계절 

대게는 어느 부위가 제일 맛있을까. 대체로 집게다리 살이 제일 맛있다는 데 동의한다. 아무래도 자주 움직여서일 테다.

대게는 어느 부위가 제일 맛있을까. 대체로 집게다리 살이 제일 맛있다는 데 동의한다. 아무래도 자주 움직여서일 테다.

영덕의 겨울은 대게의 계절이다. 영덕 사람이 대게에 갖는 자부심은 각별하다. 윗마을 울진과 ‘영덕 대게냐 울진 대게냐’ 시비가 붙은 적도 있고 아랫마을 포항이 지금은 출하량은 더 많지만, 영덕 사람은 “영덕 대게는 맛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영덕 대게의 남다른 맛은 나름의 근거가 있다. 대게도 큰놈이 맛있는데, 이른바 박달대게라 불리는 큰놈이 주로 영덕 앞바다, 정확히 말해 강구항∼축산항 앞바다에 모여 산다. 대게 어부들이 ‘무화잠’이라 부르는 수심 100∼420m 해저 지형이다(우병철 영덕 어업지도선 선장).

박달대게, 위아래 몸통 길이가 9㎝ 이상이어야 박달대게 딱지가 붙는다. 러시아 수입산은 등껍질이 반들반들하다.

박달대게, 위아래 몸통 길이가 9㎝ 이상이어야 박달대게 딱지가 붙는다. 러시아 수입산은 등껍질이 반들반들하다.

박달대게는 그냥 부르는 이름이 아니다. 몸통 길이가 위에서 아래로 9㎝가 넘어야 박달대게라 한다. 무게는 최소 1㎏이 넘는다. 박달대게는 수협에서 집게다리에 하얀 딱지를 붙여 표시한다. 비싸다. 1마리에 10만원이 훌쩍 넘는다. 올해는 작황이 좋지 않아 가격이 더 올랐다. 지난 13일까지 대게 어획량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20% 가까이 줄었다(강구수협 윤상필 판매과장).

대게는 겨울에만 먹을 수 있다. 6월부터 11월까지 대게 연안 조업이 금지된다. 1월 하순이니 이제 살이 차올랐을 때다. 겨울 영덕에 가면, 아무리 비싸도 대게는 먹어야 한다. 서울의 수산시장은 기대를 접는 게 현명하다. 영덕 대게는 거의 대부분 영덕에서 소비된다. 영덕에서도 없어서 못 판다.

영덕=글·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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