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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상언 논설위원이 간다

"37년간 입양 주선 8000건, 아이 교체 요구 한 번도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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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입양 업무 37년 김혜경씨의 증언

1983년부터 지난해까지 입양 상담원으로 활동한 김혜경씨가 입양 실태를 설명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1983년부터 지난해까지 입양 상담원으로 활동한 김혜경씨가 입양 실태를 설명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한국에 4대 입양기관이 있다. 홀트아동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 성가정입양원. 앞의 세 곳은 국내·해외 입양을 모두, 성가정입양원은 국내 입양만 주선한다. 지방자치단체와 연계된 입양기관들이 있지만 80% 이상의 국내 입양이 이 네 곳을 통해 이뤄진다. 해외 입양은 100% 세 곳을 통해 성사된다.

동방사회복지회 전 입양사업부장 #“입양 확정 전에 아이 맡기는 건 #양부모와 애착 관계 형성 위한 것 #아이 바꿀 기회? 비인도적 발상”

김혜경(62)씨는 동방사회복지회에서 37년7개월 동안 입양 업무 담당자로 일하고 지난해 10월에 정년퇴직했다. 최종 직함은 입양사업부장이었다. 한국에서 입양 실무에 가장 오래 종사한 이로 볼 수 있다.

정인이 학대 사망 사건으로 입양 문제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정인이를 학대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게 양부모라는 것이 기본 배경이다. 거기에 문재인 대통령의 두 차례 언급이 기름을 부었다. 한 번은 입양 관리감독을 강조한 것이었다. 두 번째는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의 “일정 기간 안에는 입양을 취소한다든지, 아이를 바꾼다든지” 발언이었다. 한 입양모는 “대통령의 인식에 치가 떨리는 분노를 느낀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전국입양가족연대라는 단체는 19일 국회 앞에서 대통령 발언 규탄 집회를 열었다.

김씨는 이 사태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그에게 상담원으로서, 관리자로서 성사시킨 입양 건수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더니 “대략 8000건 정도 된다”고 했다. 다음은 그와의 문답이다.

전국 입양가족연대 회원들이 19일 국회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 발언에 항의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우상조 기자

전국 입양가족연대 회원들이 19일 국회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 발언에 항의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우상조 기자

청와대에서는 대통령 발언이 법원에서 최종 입양 허가가 이뤄질 때까지 입양 가정에서 아이를 돌보게 하고, 그 기간에 예비 양부모의 양육 방식에 대해 관찰해서 문제가 발견되면 입양을 취소하도록 하는 ‘사전위탁보호제’ 도입의 필요성을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 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2012년 8월 입양특례법 시행으로 입양에 큰 변화가 생겼다. 종전에는 입양기관의 심사만 끝나면 입양이 됐는데 가정법원의 판사가 허가해야 입양이 가능하게 됐다. 지금은 4∼5개월로 이 절차에 소요되는 기간이 줄었지만 초기에는 7∼8개월이 걸렸다. 태어난 지 100일 안팎에 아이들이 입양되다가 첫 돌 무렵에 입양이 되게 됐다. 예비 양부모들이 애가 탔다. 자기가 입양할 아이가 보호시설에서 계속 지내는 것에 불안을 느꼈다. 아플까 봐, 정서 발달에 문제가 생길까 봐 발을 동동 굴렀다. 아동복지 전문가들은 100일이 지나 사람과 사물에 대한 인식 능력이 많이 생긴 뒤에 입양이 되면 부모와의 애착 관계 형성이 어렵다고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입양기관이 정부 허락을 거쳐 법원 심사 기간에 양부모에게 아이를 인도하는 ‘임시인도’라는 방법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상 정부가 장려했다. 현재는 이걸 ‘입양전제위탁’이라 부른다. 지금 대부분의 양부모가 이 방식으로 아이를 미리 데려다 키운다. 법적 근거는 없다. 정비가 필요한 부분이다.”
대통령 발언을 입양전제위탁 기간에 예비 양부모가 입양을 취소하거나 아이를 바꿀 수 있도록 해 학대 가능성을 줄이자는 것으로 좋게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실제로 입양 취소나 아이 바꾸기 요구가 얼마나 있나.
“내가 직접 겪은 범위 안에서는 아이를 바꿔 달라는 요구가 한 번도 없었다. 법원 심사 중에 입양 취소가 결정된 경우는 세 건이 있었다. 두 건은 생모가 마음을 바꿔 아이를 키우기로 한 경우였다. 한 건은 아이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발견돼 양부모가 법원 허가 요청을 취소한 것이었다.”
동방사회복지회 영아 일시보호소에 입양 대상 아동이 누워 있는 모습. 이 보호소는 운영 예산 부족 때문에 지난해 7월 문을 닫았다. 김상선 기자

동방사회복지회 영아 일시보호소에 입양 대상 아동이 누워 있는 모습. 이 보호소는 운영 예산 부족 때문에 지난해 7월 문을 닫았다. 김상선 기자

입양했다가 파양한 사례도 있는데.
“파양 이야기가 나오는 경우는 아이가 어렸을 때가 아니다. 대부분 아이가 일곱 살, 아홉 살 정도 됐을 때다. 서너 살 때는 예쁘기만 했던 아이가 고집이 생기고 말을 듣지 않자 아이 출생 배경에 대한 탓을 하게 되고 그게 부부 간 불화로 이어져 더는 아이를 키우기 어렵다고 하는 게 전형적 사례다. 그런데 실제로 파양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아이가 자기와 잘 맞지 않는다며 어려움을 호소하는 양부모도 있지 않나.
“돌이 지났거나 24개월 정도 자란 뒤에 입양된 아이들은 이미 여러 번 성장 환경이 바뀌었다고 봐야 한다. 친모, 친척 또는 조부모, 보호시설, 위탁가정 중 몇 곳을 거쳤을 가능성이 크다. 아이가 분리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동심리 전문가들은 아이가 불안을 경험한 시간의 두 배 정도가 그 상처의 치유에 필요하다고 한다. 아이 마음속의 ‘이들도 나를 버릴지 모른다’는 생각을 완전히 없애기가 그렇게 어렵다고 한다. ‘아이가 잘 따르지를 않고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호소하는 양부모에게 이런 아동심리에 관해 설명해 준다. 양부모가 사랑을 많이 주면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가 거의 다 해소된다.”
그렇다면 사전위탁보호제라는 것이 결코 입양 취소나 아이 바꾸기를 위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
“양부모에게서 문제가 발견되는 경우 아동 보호에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아이를 고르는 방법으로 쓰이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일단 데려다 키워보고 판단하겠다는 사람에게 아이를 맡겨서는 안 된다. 그 아이들은 이미 친모 또는 원가정과의 분리라는 아픔을 겪었다. 거기에 상처를 더 얹는 것은 인도적으로도 용납돼선 안 될 일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아이를 입양할 때 남자아이, 여자아이도 고르지 못하게 한다.”
국내에선 여자아이 입양이 압도적으로 많다고 하던데.
“90% 정도가 여자아이를 원한다. 상담원의 권유로 이 비율이 대략 80% 정도로 낮춰진다. 1980년대까지는 남자아이를 원하는 양부모가 많았다. 대를 잇는다는 관념이 크게 작용했다. 90년대 초반에 50대50이 되더니 그 뒤로는 계속 여아 선호 현상이 짙어졌다. 여아가 키우기 편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다.”
그러면 남자아이들은 어디로 가나.
“해외로 입양되거나 보호시설에서 자라게 된다. 해외 양부모들은 대부분 성별을 따지지 않는다.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들도 주로 해외로 간다. 국내에선 입양이 거의 되지 않는다.”
이렇게 다른 이유가 뭔가.
“우리는 ‘데려다 내 자식 만든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해외 양부모들은 ‘아이가 가정에서 자라도록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차이를 만든다.”
통계를 보면 입양 건수가 많이 줄었다. 왜 그렇다고 보나.
“최근에는 국내 입양이 한 해에 도합 400건가량 이뤄진다. 1987년에는 동방사회복지회가 성사시킨 국내 입양만 606건이었다. 입양이 크게 줄어든 것은 저출산 현상과 맥을 같이한다. 결혼해서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줄었다. 입양해서 아이를 기르겠다고 마음먹는 사람이 적을 수밖에 없다. 87년에는 사람들이 대체로 밝은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정인이 사건 뒤 입양을 계획했다가 머뭇거리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하는데.
“괜히 의심받을까 봐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한다. 입양이 줄면 그만큼 보호시설에서 자라는 아이가 많아진다. 그 아이들은 18세가 되면 정부에서 주는 돈 500만원을 들고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이게 우리의 현실이다.”

젊은이들이 쓰는 말 중에 ‘뇌피셜’이라는 게 있다. 뇌+오피셜(official·공식적인)의 합성어다. 근거 없는 주관적 믿음을 마치 사실에 부합하는 상식인 것처럼 말하는 행태를 일컫는다. 입양 제도를 손보겠다고 나선 정부와 여당이 부디 입양가족, 입양기관 종사자의 이야기를 두루 들어 뇌피셜 오류를 범하지 않기 바란다.

당신이 모를 수도 있는 입양 상식

① 해외 입양 땐 5개월 국내 입양 시도해야=입양기관이 해외로 아이를 입양 보내려면 5개월간 국내에서 입양을 꾸준히 시도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국내 입양 우선 정책 때문이다. 국내 입양 희망 부모에게 아이 관련 자료를 계속 제시해야 한다. 이 5개월 경과 규정 때문에 아이가 두 돌이 다 돼서야 입양이 되는 경우가 흔하다. 아이가 국내 위탁가정의 위탁모를 엄마로 알고 자라다가 외국인 부모 가정으로 보내진다.

② 해외 입양의 80% 이상이 남자아이=국내 입양에서 여자아이 선호 비율이 80% 이상이다. 그래서 주로 남자아이들이 해외로 간다. 해외 입양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과 단체가 있는데, 국내 입양이 대폭 늘지 않는 상태에서 해외 입양을 줄이면 보호시설에서 자라는 아이가 늘게 된다.

③ 출생신고 돼 있어야 입양이 가능=현행법에 따라 원칙적으로 출생신고가 이뤄져야 입양 대상 아동이 된다. 미혼모가 낳은 아이인 경우 친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자녀로 올라야 한다. 따라서 친모가 양육을 포기해 ‘베이비 박스’에서 발견된 아이는 입양기관이 맡아 입양을 보낼 수 없다. 아이를 돌보는 보호시설의 책임자가 자신의 아이로 출생신고를 해 입양이 되도록 할 수 있지만 그런 사례는 많지 않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