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비즈 칼럼] 더 미룰 수 없는 농업용 저수지 치수 대책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04면

최진용 한국농공학회 회장, 서울대 교수

최진용 한국농공학회 회장, 서울대 교수

중국의 우왕은 치수(治水)로 나라를 부강하게 이끈 왕으로 전해져 온다. 요순시대의 홍수를 마감하고 하나라 왕이 된 것도 치수의 공을 높이 산 덕택이라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치수는 국가 번영의 기본임이 틀림없다.

치수를 위협하는 기후변화가 심상치 않다. 온실가스 발생 증가로 인한 기후변화는 미래의 일이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해 우리는 역대급 장마를 겪으면서 기후변화의 단면을 체험했다. 54일에 이르는 긴 장마 동안 이어진 폭우는 치수 대비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일깨워 줬다. 치수에 대한 우리의 노력을 뒤돌아봐야 할 때다.

나라의 안녕은 식량과 직결된다. 인심도 곳간에서 나온다고 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식량 안정을 위해 농업 생산 기반을 꾸준히 정비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대표적인 농업 생산 기반인 전국 1만7000여개의 농업용 저수지는 식량 생산에 필요한 물을 공급하는 심장 역할을 한다. 그런데 국가 안정에 필요한 농업용 저수지가 위험에 처했다.

농업용 저수지의 위험 요소는 노후화와 기후변화다. 전체의 80%가 넘는 1만4000여 저수지가 50년 이상 된 고령 시설이고, 30년 이상 된 저수지를 합하면 노후 저수지는 95%가 넘는다. 지난해에는 저수지 63개소 하류부 주민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최근 20년 동안 저수지 17개소가 붕괴하면서 4000억원 넘는 재산 피해가 난 것도 노후화와 기후변화에 따른 것으로 봐야 한다.

농업용 저수지는 지금까지 한정된 예산으로 수리시설 개보수를 통해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해왔으나 2020년 장마를 겪으면서 한계가 여실히 드러났다. 50년 전 설계기준으로 설치된 노후 저수지의 치수 능력을 기후변화에 맞춰 근본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안전을 지키는 데 한계가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폭우 증가는 많은 과학자의 일치된 견해다. 이를 인식하면서도 국민 안전과 직결된 농업용 저수지를 시급히 정비하지 않는다면 이로 인한 수해는 인재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농업용 저수지의 치수 능력을 재평가 하는 사업을 전국적으로 실시해야 한다. 200년 빈도 이상의 강우에도 안전하도록 물넘이를 확장하고 저수지 구조를 개선해 사전 방류가 가능하도록 하는 등 종합적인 치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치수는 요순시대와 다름없이 국가의 기본 책무다. 농업용 저수지 치수 대책을 더는 미룰 수 없다.

최진용 한국농공학회 회장, 서울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