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표절이었다, 소설·사진·가사 닥치는대로 훔친 그 남자

중앙일보

입력 2021.01.20 05:00

업데이트 2021.01.20 14:43

“복붙왕”, “파도 파도 계속 나온다”, “어떻게 지금까지 안 걸렸나”

타인의 소설·노래가사·사진·슬로건·보고서 등 닥치는 대로 도용해 각종 공모전을 휩쓴 남성 손모씨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하고 있다. 손씨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과시한 화려한 이력이 허위라는 사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다. 주요 대학과 대학원 출신이라는 학력, 해병대를 전역한 뒤 장교로 복무했다는 군 경력에도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그에 대한 언론보도가 나온 뒤 일부 문학상·공모전 주최 측은 그의 수상을 취소하고 상금 환수에 나섰다.

손씨의 소설 도용을 폭로한 김민정 작가의 글. 페이스북 캡처

손씨의 소설 도용을 폭로한 김민정 작가의 글. 페이스북 캡처

소설·가사·사진·보고서…가리지 않고 도용

손씨의 상습 도용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 제기는 지난 16일 피해자인 김민정 작가로부터 나왔다. 김 작가는 페이스북을 통해 “소설 ‘뿌리’의 본문 전체가 무단도용되었으며, 도용한 분이 2020년 다섯 개의 문학공모전에서 수상하였다는 것을 제보를 통해 알게 됐다”고 밝혔다. 김 작가의 소설 ‘뿌리’는 2018년 백마문화상을 받았다.

실제 손씨는 구글 검색만으로 찾아 읽을 수 있는 ‘뿌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베꼈다. ‘도용작’은 ‘제 16회 사계 김장생 문학상’ 신인상, ‘2020포천38문학상’ 대학부 최우수상, ‘제7회 경북일보 문학대전’ 가작, ‘제2회 글로리시니어 신춘문예’ 당선, 계간지 ‘소설 미학’ 2021년 신년호 신인상을 수상작이 됐다. 현재는 5개 문학상 측 모두가 손씨의 수상을 취소한 상태다.

김민정 작가의 소설 '뿌리'의 일부분. 명대신문 캡처

김민정 작가의 소설 '뿌리'의 일부분. 명대신문 캡처

김 작가의 소설을 표절한 도용작의 일부분. 페이스북 캡처

김 작가의 소설을 표절한 도용작의 일부분. 페이스북 캡처

일부 문장이나 단락을 표절한 것도 아니고, 소설 전체를 ‘복사+붙여넣기’ 해서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경악한 네티즌들은 손씨의 이력을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마침 손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주 자세하게 ▶공공기관의 서포터즈·기자단 등 대외활동 ▶ 각종 공모전 수상 소식을 기술했다. 여러 단체로부터 받았다는 수료증·위촉장·감사패·상장 사진들도 게시했다.

이를 검증한 결과 상당수는 소설과 마찬가지로 도용을 통해 얻은 결과로 확인됐다.

도용 발각돼 수상 취소되자 소송 제기

대표적인 것이 손씨의 ‘제6회 디카시 공모전’ 수상 이력이다. ‘디카시’는 디지털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5행 이내의 시를 제출하는 창작시 공모전이다.

지난해 7~8월 진행된 이 공모전에서 손씨는 ‘하동 날다’라는 작품으로 대상을 탔다. 그러나 손씨가 투고한 시는 가수 유영석이 1994년 발표한 노래 ‘화이트’의 후렴구였다. 노래 가사를 자작시인 양 제출한 것이다. 한국디카시연구소는 이 사실을 인지한 뒤 손씨의 수상을 취소했다.

그러나 손씨는 “기준을 보면 사진은 본인이 직접 촬영한 사진이어야 하지만 글은 5행 이내 시적 문장이면 될 뿐이지 본인이 창작한 글이어야 한다고 되어있지 않다”며 따졌다. 그는 요건에 맞춰 가사를 인용했다면서 주최 측을 상대로 소송까지 걸었다. 손씨의 주장대로라면 그는 사진은 직접 찍은 것이 된다. 하지만 손씨는 사진과 제목도 타인의 창작물을 도용한 것으로 보인다. 인스타그램에는 같은 사진이 ‘하동 날다’라는 글과 함께 게시된 어느 개인의 계정이 검색된다.

손씨가 지난해 10월 수상한 ‘2020 혁신아이디어 공모전’ 특허청장상도 도용으로 확인돼 취소됐다.

그는 특허청이 주최한 이 공모전에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신개념 자전거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 케이-바이크(K-BIKE)’라는 제목의 아이디어를 제출했는데, 이는 리포트 공유누리집 ‘해피캠퍼스’에 2018년 4월 올라온 보고서와 제목이 일치한다. 특허청은 사실관계 확인을 거쳐 손씨의 아이디어를 표절이라고 결론짓고 수상을 취소했다.

지난해 11월 손씨가 올린 공모전 수상 내용. 페이스북 캡처

지난해 11월 손씨가 올린 공모전 수상 내용. 페이스북 캡처

콘크리트콘스트럭션 기사 사진. 홈페이지 캡처

콘크리트콘스트럭션 기사 사진. 홈페이지 캡처

문학상 수상 모두 취소…특허청 수상도 박탈  

이 외에도 도용 의혹이 제기된 손씨의 수상 이력은 더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KCA)이 주최한 ‘정보통신 공공데이터 활용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 ‘마이 스트리트 듀얼리티’라는 제목으로 장려상을 받았는데, 이 또한 지난해 6월 해피캠퍼스에 올라온 보고서와 제목이 같다. '오픈 데이터를 활용한 신규 관광 상품 발굴과 안전한 재난 대피 유도'라는 제목으로 진흥원은 사실관계 확인 후 포상을 회수할 계획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다수의 사진 공모전에도 타인의 사진을 출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토일보가 주관한 ‘제1회 대한민국 건설 사진 전국 공모전’에 그가 제출한 사진은 2018년 8월 '콘크리트컨스트럭션'이라는 매체에 올라온 사진이었다. 이 사진으로 손씨는 일반부 장려상을 수상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공동주관한 ‘2020 국민저작물 보물찾기’ 공유전 사진부문에 접수해 은상을 받은 사진 역시 이미 2018년에 올라온 게시물로 온라인에서 검색된다.

국정원 표어 공모엔 육사 슬로건 베껴 출품  

손씨는 각종 표어·포스터 공모전에도 출품했다.

손씨는 지난해 11월 열린 국정원 표어 공모전에 ‘가슴엔 조국을, 두눈엔 세계를’이란 표어를 제출했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알렸다. 그러나 이 표어는 육군사관학교의 슬로건이다.

도용을 반복한 손씨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대한체육회가 주관해 지난해 8월 열린 ‘대한민국 체육 100년 기념 표어·포스터 공모전’에서다. 당시 그는 ‘일백년을 기억하다. 일백년을 기대하다’라는 표어를 제출해 대상을 수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표어는 지난해 6월 이미 체육회에서 사용하던 표어다. 손씨가 출품해 수상한 표어는 ‘함께해온 백년체육, 함께해요 백년건강’였다. 본인이 출품한 표어를 착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경에 이르자 그가 페이스북에 소개한 각종 대외활동 이력도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의심받고 있다.

손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화려한 이력의 일부분. 페이스북 캡처

손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화려한 이력의 일부분. 페이스북 캡처

그는 통일부 통통 국민참여단, 국방부 온라인 서포터즈 'M-프렌즈' 5기, 충북지방경찰청 사이버 명예경찰 '누리캅스', 목포해양경찰서 서포터즈, 국세청 국민탈세감시단 '바른세금지킴이', 국가보훈처 6.25 70주년 사업추진위원회 국민 서포터즈, 경상북도 인권기본계획제안서 평가위원, 국민권익위원회 청렴정책모니터단, 공군사관학교 시간강사, 문화체육관광부 정책기자단, 합동참모본부 무기체계 시험평가 세미나 서포터즈 등으로 활동했다고 적시했다. 사실이라면 손씨는 분야를 막론하고 활발히 활동하는 다재다능한 인물인 셈이다.

손씨 “표절이 결격 사유인지 몰랐다”

끝없이 이어지는 의혹에 손씨는 일부 매체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18일 영남일보와의 통화에서 그는 “공모전 출품을 위해 준비했지만,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그래서 구글링 중 한 편의 글을 발견하게 되고, 그 글로 여러 곳의 문학상에 공모를 했다”고 소설 도용에 대해 말했다. 이어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글인 줄 알았다”며 “작품 표절이 문학상 수상에 결격 사유가 되는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SBS에는 “문학상에 욕심이 있었던 건 아니고, 개인적으로 수상금도 좀 필요했다”며 “제 잘못이다”라고 인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능력자로 포장한 모습이 좋았을 것”

대체 손씨는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손씨의 이같은 행동이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고 봤다. 온라인으로 보여지는 삶을 의심하지 않고 믿는 트렌드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을 언급하면서 “페이스북이나 블로그가 없는 시대였다면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방면으로 열심히 사는 능력자로 포장한 (자신의) 모습이 좋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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