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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IT 기업이 억대 연봉 주고 당서기 스카우트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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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민영기업과 당 조직

알리바바 마윈 그래픽=신용호

알리바바 마윈 그래픽=신용호

중국 안방(安邦)보험은 한때 자산 규모 2조 위안(약 340조원)에 달했던 민영 보험회사였다. 왕성한 해외 진출, 혁신적인 중단기 보험상품 판매 등으로 업계에 새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이 회사는 청산 절차를 밟고 있다. 덩샤오핑의 외손녀 사위인 우샤오후이(吳小暉) 전 회장이 2018년 횡령 혐의로 구속되면서 몰락이 시작됐다. 그냥 없어지는 게 아니다. 중국 금융당국은 2019년 안방보험의 자산과 부채를 인수할 국유 기업인 다자(大家)보험을 설립했다. 국가가 안방을 인수하는 형식이다. 요즘 중국 IT업계에서 ‘안방’의 사례가 회자된다. 알리바바가 안방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에서다.

공산당 비판 뒤 모습 감춘 마윈 #직장 내 당조직이 회사 지도감독 #기업은 부처님 손아귀에 든 격

성공 신화의 대명사로 통하는 알리바바 창업주 마윈이지만, 공산당 권력에 맞선 ‘죄’의 후과는 가혹했다. 마윈은 지난해 11월 말 “중국 은행은 전당포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며 중국 금융의 후진성을 맹비난한 뒤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췄다. 신병 이상설마저 나돈다. 세계 최고 유니콘 앤트그룹을 세운 ‘글로벌 빅샷(거물)’은 지금 일생일대 처절한 좌절을 겪고 있는 중이다.

알리바바는 1999년 영어 교사였던 마윈이 친구 18명을 모아 설립한 민영기업이다. 2015년 뉴욕증시 상장으로 글로벌 지분구조를 갖고 있다. 그런 글로벌 기업도 공산당의 정책과 맞지 않는다면,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마윈 사태는 중국에서의 당-기업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공산당은 민영기업을 어떻게 통제하고 있을까.

‘당서기를 뽑습니다.’

포탈업체 바이두(百度)는 2018년 말 회사 내 ‘당위원회 서기’를 뽑는다는 구인광고를 냈다. 연봉 56만 위안. 우리 돈 1억원에 육박하는 액수다. 자격은 ‘공산당원으로서 최소 2년 이상 정부 업무를 담당한 경험이 있는 대졸 이상의 학력 소지자’로 국한됐고, ‘정부나 대기업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자는 우대한다’는 조항도 담겼다.

당서기는 ‘조직 내 당 관련 업무를 주관’하는 직책이다. 회사 경영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1억 연봉을 줘가며 스카우트하려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급했기 때문이다. 2018년은 시진핑 집권 2기를 시작하는 해였다. 당시 시진핑이 가장 역점을 둔 게 ‘당 건설’이다. 당의 지도 역량을 높이고, 조직을 강화하겠다는 취지다. 공산당 당장(黨章)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당원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당조직을 건설해야 한다. 3명 이상의 당원이 모이면 당지부를 만들 수 있고, 50명이면 당총지부, 100명 이상이면 당위원회를 설립할 수 있다.”

이 조항이 가장 잘 지켜지지 않는 곳이 IT업계란 지적이 제기됐다. 당시 약 15만개에 달하는 국유기업 중 93.2%가 사내 당조직을 건설했지만 273만개 민영기업 등은 그 비율이 70%에도 못 미쳤다. ‘당성(黨性)’이 약한 민영 IT업체들에 “당조직을 건설하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다. 업체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당에 잘 보여야 했다. 당과의 관계를 매끄럽게 이끌어갈 ‘로비스트’가 필요했다. 바이두가 1억 연봉의 당서기 모집 공고를 낸 이유다. 인터넷 자동차 공유업체인 디디추싱(滴滴出行)도 비슷한 시기, 비슷한 조건의 당서기 공채 공고를 냈다. 샤오미(小米)는 최고경영책임자(CEO) 레이쥔(雷軍)이 직접 당조직 활동을 챙겼다.

직장 내 당서기는 무슨 일을 하나.

당장에 규정된 기업 내 당위원회의 역할은 크게 5가지다. ▶당 노선과 방침의 관철 ▶기업의 준법 지도(引導)·감독 ▶직원 단결 ▶기업과 직공의 합법적 권익 수호 ▶기업의 건강한 발전 등이다. 공산당은 민영기업 안으로 파고들어 당의 노선을 잘 따르고 있는지를 감시한다. 주요 경영 활동은 상세히 당에 보고된다. CEO에 압력을 가할 수도 있다. 종업원들은 CEO 지시도 따라야 하고, 당위원회 눈치도 봐야 한다. 회사 조직과는 별도의 권력 체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기업 내 당위원회가 기업 혹은 경영진과 적대적인 것은 아니다. 당지부는 대부분의 민영기업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한다. 당원 스스로 회사 키우기의 선봉에 서는 등 기업 활동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곳도 많다. 그러나 회사 내에 또 다른 명령 체계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기업가에게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민영기업은 오늘날의 중국 경제를 만든 주역이다. 국내총생산(GDP)의 60%, 일자리의 80%를 민영기업이 창출한다. 인터넷 혁명의 주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부처님, 즉 당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운명이다.

외국 투자기업도 다르지 않다. 당지부, 총지부, 당위원회가 설립된다. 종업원 규모로 볼 때 중국에서 가장 큰 외상투자기업은 폭스콘(富士康)이다. 대략 100만 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중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곳에 설립된 당지부는 1030개, 당총지부는 229개, 그리고 사업 단위별로 16개의 상위 당위가 운영 중이다. 3만 명의 적극적인 당원이 활동하고 있다. 2016년 말 현재 10만6000개의 외국투자기업 중 70%에 당조직이 건설됐다. 지금은 더 높아졌을 것이다. 삼성의 반도체 공장에도, 현대자동차의 조립 라인에도 당조직은 있다. 그렇게 외국투자기업은 공산당과 관계를 맺고 있다.

당과 국가는 부자 관계

중국은 ‘당-국가(Party-State)’ 시스템의 나라다. 당이 국가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다. 3권(입법·사법·행정)은 물론 언론까지 틀어쥐고 있다. 국가의 말단 조직에도 당조직이 신경세포처럼 뻗쳐있다. 그 틀이 민영기업에게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에서 당-국가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 사이로 비유한다. 설립 자체가 그랬다. 중국에 공산당이 설립된 건 1921년이다. 그 당이 혁명을 통해 1949년 세운 나라가 바로 지금의 ‘중화인민공화국’이다. 당이 아버지라면, 국가는 아들인 셈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키우듯, 당은 국가의 모든 기관을 장악한다. 그래서 인민해방군은 아직도 당의 군대다. 명문 칭화대학의 큰 발전방향을 결정하는 건 교내 당위원회다. 공산당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국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민영기업이라고 그 시스템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민영 IT기업도 겉으로 보기에는 기업환경이 자유로운 것 같지만, 속으로 들어가 보면 당의 힘이 작용한다. 민영이든 글로벌 기업이든 중국에서의 기업은 ‘부처님(공산당) 손바닥’이라는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중국의 정치와 경제, 권력과 기업의 관계가 그렇다.

중국공산당 개요

설립: 1921년 7월 23일
당원: 9191만4000명(2019년 말 현재)
최고 지도자: 시진핑 총서기
권력 구조: 총서기(1)-정치국 상무위원(7)-정치국 위원(18)-중앙위원회(정 위원 204명, 후보위원 172명)
기층 조직: 468만1000개
당보: 인민일보
군사조직: 중국인민해방군
청년조직: 공청단(중국공산주의청년단)
노동자조직: 중화총공회
싱크탱크: 중앙정책연구실

새장 경제, 마윈 사태의 배경에 엿보이는 중국의 경제 논리

중국 경제용어 중에 ‘조롱(鳥籠)경제’란 말이 있다. ‘새장 경제’란 뜻이다.

1978년 말 덩샤오핑(鄧小平)이 개혁개방에 나선 뒤 시장에 어느 정도의 자율을 허락해야 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벌어졌다.

이 때 덩의 동료 혁명전사이자 경제 전문가였던 천윈(陳雲)이 제기한 논리가 바로 조롱경제다. “새를 새장에 가둬 키우듯 시장도 정부 정책의 틀 속에 넣어 운용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천윈은 “새장이 없으면 새는 날아가 버린다”고 주장했다. 개혁개방은 새장을 키우는 과정이었다. 국가는 거대한 새장을 쳐놓고, 기업을 그 새장 속에 가둔다. “새장을 크게 해 줄 테니 그 안에서 마음껏 날아봐”라는 식이다.

그런데 아주 잘 나는 새가 한 마리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 새는 국가가 쳐 놓은 새장이 점점 좁다고 느낀다. 결국은 새장을 벗어나려 하는 게 새의 속성이다.

마윈이 그랬다. 그는 중국 정규 금융기관으로서는 흉내 낼 수조차 없는 파이낸싱 기법을 선보였다. 지불결제 시장의 약 55%를 장악하고 있는 앤트그룹은 영역을 은행·보험으로 확대하고 있다. 민간의 혁신이었지만, 기존 산업에는 도전으로 여겨졌다. 이 경우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대응은 하나, 새를 새장 안으로 다시 가두는 것이다. 마윈이 만든 유니콘 앤트그룹의 IPO(기업공개) 불발은 이를 보여준다. 1980년대 초 유행했던 조롱경제 논리는 현재진행형이다.

한우덕 차이나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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