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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석에 누운 할아버지도 계급 높은 손녀에게 경례하는 미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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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관과 신사'에서 장교 후보생 리처드 기어가 임관식을 마친 뒤 소위 계급장을 달고 훈련 조교 루이스 고셋 주니어를 찾아가 첫번째 경례를 받는다.리처드 기어는 첫번째 경례를 받기 앞서 루이스 고셋 주니어에게 은화를 건넸다. [유튜브 Lemon Juice 계정 캡처]

영화 '사관과 신사'에서 장교 후보생 리처드 기어가 임관식을 마친 뒤 소위 계급장을 달고 훈련 조교 루이스 고셋 주니어를 찾아가 첫번째 경례를 받는다.리처드 기어는 첫번째 경례를 받기 앞서 루이스 고셋 주니어에게 은화를 건넸다. [유튜브 Lemon Juice 계정 캡처]

지난해 연말 일부 주임원사들이 ‘남영신 육군참모총장이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면서 장교와 부사관의 역할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1982년에 개봉한 영화 ‘사관과 신사(An Officer and A Gentleman)’가 생각난다. 이 영화는 주연을 맡은 배우 리처드 기어를 세계적인 배우로 올려놓은 작품으로 유명하다. 또한, 장교와 부사관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이는 미국 군대 문화와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이 담겨있다.

리처드 기어가 역할을 맡은 장교 후보생 ‘잭 마요’는 훈련 조교 ‘폴리’ 상사(루이스 고셋 주니어)로부터 매우 혹독하고 잔인한 훈련을 받는다. 폴리 상사는 그야말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조교로서 장교 후보생들의 신체는 물론 마음까지도 철저하게 훈련시킨다.

훈련이 끝나고 졸업식 날 후보생들은 임관을 마치자마자 하나같이 소위 계급장을 달고 가혹했던 조교 폴리 상사를 찾아간다. 후보생 시절 상급자였던 조교에서 하급자가 된 폴리 상사로부터 공식적인 경례를 받기 위해서다. 폴리 상사는 소위로 임관해 상급자가 된 과거의 훈련생에게 정중하고 절도 있는 거수경례를 해 감동적이고 긴 여운을 남긴다.

2008년 미국 노리치 대학교에서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퇴역 부사관이 이날 새로 임관한 장교에게 첫 번째 경례를 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미 국방부]

2008년 미국 노리치 대학교에서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퇴역 부사관이 이날 새로 임관한 장교에게 첫 번째 경례를 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 미 국방부]

미국 군대 문화에 존재하는 ‘첫 번째 경례(First Salute)’ 전통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미국 군대에서는 장교로 임관한 이후 부사관, 주로 군 생활이 오래된 부사관으로부터 첫 번째 경례를 받는 의식이 있다. 이제 막 임관한 소위에게 나이 많은 부사관이 정중하게 경례를 함으로써 장교에 대한 존중과 상관의 지시와 명령을 따르겠다는 다짐을 표시하는 행사라고 한다.

여기엔 또 다른 전통이 담겨있다. 신임 소위는 조교로부터 첫 경례를 받고 경례를 한 부사관에게 주는 1달러짜리 은화(silver dollar) 선물을 건넨다. 그래서 첫 번째 경례(First Salute)를 ‘Silver Salute’라고도 한다.

첫 번째 경례의 역사와 전통

‘첫 번째 경례’는 영국의 식민지 통치 시절 이후 19세기부터 미군에 남겨진 유산이다. 미군에서는 새로 임관해 부임한 신임장교에게 개별적으로 조언해 주는 조교부사관(enlisted adviser)을 지정했다.

군 업무에 숙련된 조교부사관은 아직 군대 업무와 부대 상황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갖추지 않은 신임 장교에게 부대의 역사와 로프 매는 법 등 각종 군대 업무를 조언해 줬다. 이때 장교들은 조교부사관에게 자기 월급(당시 소위 월급은 약 25달러)에서 당시 돈으로 약 1달러를 수고비로 주는 전통이 생겨났다.

미국에서 판매하는 1달러 은화 [사진 silvertowne.com]

미국에서 판매하는 1달러 은화 [사진 silvertowne.com]

군대 업무에 대한 과외공부 선생님의 역할을 했던 관습은 숙련된 부사관이 신임 장교에게 군에 대한 조언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는 공식 제도는 아니지만, 상생을 위한 조직문화였다. 부사관은 오랜 군 생활로 많은 노하우를 알려 주지만, 장교와 부사관 간의 엄격한 상하 간의 존중과 기강은 분명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지금도 미군에선 장교로 임관하는 소위들은 임관 전에 1달러짜리 지폐 또는 은화(통상 50달러 내외)를 준비한다. 임관 후 본인에게 첫 번째로 경례하는 부사관에게 1달러 은화를 주는 전통 때문이다.

보통은 임관 후 처음 부임하는 부대에서 ‘첫 번째 경례’ 행사를 하게 된다. 1달러 은화를 받는 첫 번째 경례 부사관은 통상 부대의 주임원사나 경험 많은 상급 부사관으로 지명된다. 새로운 계급과 직책을 맡은 신임 소위에게 존경을 표하며 부대와 관련된 많은 조언을 아끼지 않겠다는 약속, 즉 일종의 책임 있는 ‘멘토’ 역할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2014년 육군에서 원사로 퇴역한 노인이 새로 해군 소위로 임관한 손녀에게 경계를 하고 있다. [사진 godupdates.com]

2014년 육군에서 원사로 퇴역한 노인이 새로 해군 소위로 임관한 손녀에게 경계를 하고 있다. [사진 godupdates.com]

어떤 임관식에서는 예비역 원로 부사관인 할아버지로부터 소위로 임관한 손녀딸이 받는 경우도 있다. 장교는 부사관의 경륜을 존중하고, 부사관은 장교의 명령에 대한 복종과 의무를 다하겠다는 상징적 행사의 의미는 ‘미 육군 장교 근무지침서’에도 담겨있다.

미국 합참의장의 전역사

2015년 미국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전역을 몇 달 앞둔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이 축하 연설을 했다. 이 연설 중에 본인이 육군 소위로 임관 후 첫 부대로 부임했을 당시 있었던 첫 번째 경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버니 핸더슨이라는 부사관에게 첫 번째 경례를 받았고 당시에 자기는 1달러짜리 지폐에 본인의 이름을 써서 주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핸더슨은 오래도록 본인에게 부대에 대해 많은 자문을 해줘 군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됐다고 회고했다.

2015년 한국을 찾은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오른쪽)과 최윤희 합참의장이 용산 합동참모본부 연병장에서 열린 환영 의장행사에서 의장대 사열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5년 한국을 찾은 마틴 뎀프시 미 합참의장(오른쪽)과 최윤희 합참의장이 용산 합동참모본부 연병장에서 열린 환영 의장행사에서 의장대 사열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뎀프시 의장은 몇 년 전에 첫 번째 경례를 했던 핸더슨 예비역 상사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그때의 대화를 전했다. 핸더슨은 “뎀프시 소위가 훌륭한 장교로 잘 성장해 존경받는 장군이 되면 첫 번째 경례 때 받은 1달러를 다시 돌려 주겠다고 다짐했는데 이제 그동안 보관해 온 1달러를 보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얼마 후 마틴 뎀프시 이름이 적힌 1달러가 액자에 담겨 도착했다. 여기에 함께 담긴 편지는 “내가 첫 번째 경례를 했던 뎀프시 소위가 군의 최고 계급인 대장이 됐고, 모든 장병이 존경하는 장군이 되어 기쁘게 생각하며, 첫 번째 경례 시 받은 1달러 지폐를 이제는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게 돼 기쁘다”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뎀프시 의장은 이날 연설에서 사관학교 졸업생에게 장교와 부사관 간의 상호 존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졸업생 모두(약 980여 명)에게 뎀프시 본인의 이름을 적어 놓은 1달러 지폐를 한 장씩 선물로 나눠줬다. 본인에게는 최후의 경례(Last Salute)인 셈이다.

남영신 육군참모총장(가운데)이 지난해 12월 중부지역 드론교육센터를 방문해 부사관이 시범을 보이는 드론 조종술 교육현장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 육군 제공]

남영신 육군참모총장(가운데)이 지난해 12월 중부지역 드론교육센터를 방문해 부사관이 시범을 보이는 드론 조종술 교육현장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 육군 제공]

장교와 부사관의 올바른 관계

장교는 군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군대의 기둥 같은 존재이다. 그래서 장교에게는 항상 책임과 헌신이라는 말이 따라 다닌다. 미군 장교의 임관 선서문에는 헌법수호, 책임과 의무, 신뢰와 충성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부사관 선서문에는 헌법수호, 신뢰와 충성 그리고 상관의 명령에 복종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군인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는 동등하나 맡은 바 직무에 대하여 분명히 구분하고 있다.

상하 간의 분명한 관계 설정과 역할 분담, 협력하고 보완적인 관계 문화가 건전하고 강한 군대 문화를 만들어 가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최근 들어 자주 발생하는 군대 내의 기강 문제, 특히 장교와 부사관 간의 갈등, 심지어 하극상까지 발생하는 현실은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특히 나이 어린 신임장교들의 권위를 무시하는 나이 많은 부사관들의 잘못된 행동들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또한 장교들 스스로가 명예심과 자부심을 저버린 한심한 행동을 하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라 생각된다.

장교, 부사관 모두가 진정으로 어떠한 관계를 설정하고 강한 군대를 만들기 위하여 어떻게 노력해야 할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논의를 해야 할 때가 됐다. 강한 군대를 만드는 군대 문화의 시작은 올바르고 명확한 장교와 부사관 간의 문화 형성이 우선 돼야 한다.

※ 김진형,『대한민국 군대를 말한다 』(맥스미디어 , 2017)의 일부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김진형 군인공제회 감사, 전 해군 1함대 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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