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박영범의 이코노믹스

“유연한 해고가 일자리 만든다” 역설, 미국·유럽이 증명

중앙일보

입력 2021.01.19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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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악의 고용 상황 빠져나올 탈출구는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코로나19로 인한 일자리 충격이 심각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고용동향을 보면 1년 전보다 21만8000명이 줄었다. 외환위기 여파가 몰아쳤던 1998년 이래 22년 만에 최악의 감소 폭이다. 실업자와 비경제활동인구 모두 통계 비교가 가능한 2000년 이후 가장 많다. 일시 휴직자도 두 배 이상 증가해 관련 통계가 작성된 1980년 이후 가장 많이 늘어났다. 강화와 완화를 반복하는 거리 두기의 직격탄을 맞은 숙박·음식업의 타격이 특히 심각하다. 지난해 12월에는 31만3000명 줄었다.

미국 80년대 유연성 높여 고용 증가
독일도 노동개혁 이후 실업률 하락
세금뿌리는 ‘위장고용’ 해법 안돼
기업, 고용부담 안 느껴야 채용 늘려

경제의 허리인 30·40대 취업자 수가 급감하는 것도 문제다. 세금 일자리가 대부분인 60대 일자리를 제외하고 전 연령대에서 취업자가 준 것은 1998년 이후 처음이다. 특히 좋은 일자리인 제조업 취업자가 5만 명 이상 감소했다. 3차 팬데믹이 현실화하고 백신 확보가 늦어지면서 4차 팬데믹 가능성이 크지만, 코로나19가 조기에 극복된다고 해도 일자리 상황은 좋아지기 어렵다.

코로나19 발생 이전부터 고용 없는 성장은 계속되고 있었다. 생산이 10억 원 증가할 때 늘어나는 취업자 수를 의미하는 취업유발계수가 2015년 11.4명, 2016년 11.2명, 2017년 10.6명, 2018년 10.1명으로 지속해서 줄어들었다. 최저임금이 2019년에도 큰 폭으로 올랐고, 코로나19로 무인화 속도가 더욱 빨라진 것을 고려하면 취업유발계수는 현재 10명 미만으로 떨어진 것은 확실하다.

박영범의 이코노믹스 그래픽=신용호

박영범의 이코노믹스 그래픽=신용호

일자리의 질을 보면 우려가 더 크다. 정부의 행정통계 분석에 의하면 코로나19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에도 일자리는 50·60대가 주로 하는 공공일자리 사업,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는 보건·사회복지사업에서 대부분 늘어났다. 절반 이상이 비영리 기업에서 늘어났고 대기업 일자리는 10%인 6만개 증가에 그쳤다.

코로나19 이후 경제 성장세가 회복되어도 유연한 해고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없이는 민간부문에서 일자리가 늘어나기에 한계가 있다는 것은 1980·90년대 미국과 유럽의 경험을 비교해도 알 수 있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유류파동으로 망가진 세계 경제는 1980년대 이후 회복세로 돌아섰으나 일자리 창출 성과는 미국이 유럽보다 확연히 우월했다. 미국의 1980년 실업률은 7.2%로 유럽연합(EU)보다 높았으나 1997년에는 4.9%로 오히려 낮아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서는 미국이 레이건 정부의 출범을 시작으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제고하는 조치를 적극적으로 시행한 것을 주요 원인의 하나로 보고 있다.

청년고용 상황 OECD 중하위권 추락

2000년대 이후 유럽에서도 해고를 포함한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는 조치가 많은 나라에서 이루어졌고 청년실업률이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09년 우리나라 청년실업률은 OECD 국가에서 견실한 상위권(5위)으로 낮았으나 지금은 중하위권으로 크게 높아졌다. 2009년부터 2019년까지 OECD 국가의 청년실업률은 평균 4% 포인트 이상 하락했지만, 한국은 1% 포인트 가까이 상승해 37개국 중 20위로 주저앉으면서다. 특히 해고가 허용되는 사업장을 확대하는 등 하르츠 노동개혁을 추진한 독일의 경우 2010년대 초반까지는 우리나라보다 청년실업률이 높았으나 2019년에는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기업들이 신규 고용에 부담을 느끼지 않아 취업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법적 해고 비용

법적 해고 비용

코로나19 상황에서도 고용을 늘린 기업들이 있다. 2020년 9월 말 기준으로 4만3000명을 고용해 삼성전자·현대자동차와 함께 고용 ‘빅3’를 차지한 쿠팡이 대표적이다. 쿠팡은 2020년 2월부터 9월까지 국내 500대 기업에서 줄어든 인력의 7배가 넘는 인력을 새로이 채용했다. 그러나 쿠팡은 연말에 여러 기관에서 주는 일자리 창출 대상 기업으로 선정되는 등 사회적으로 인정받기보다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생기고, 장시간 야간 노동, 물류센터 직원 처우 문제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의 상징으로 ‘쿠팡맨을 괜찮은 일자리로!’라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상당수의 직원을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으로 채용하거나 독립사업자와 계약을 맺는 형태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고 어려우니 새 직장 찾기도 어려워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지금과 같은 특수를 누릴 수 없는 것이 명확해 쿠팡과 같은 물류·택배업체가 정규직으로 인원을 충당하지 않는 것을 비난할 수만은 없다. 해고비용이 없는 미국의 아마존은 정규직으로 필요인력을 채우고 있어 우리나라와 대조된다.

기업이 체감하는 해고 비용

기업이 체감하는 해고 비용

보다 유연한 해고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과도한 처우 격차가 좁혀져야 한다. 대기업이나 공공부문의 경우 해고를 하려면 법에 정한 비용 이상을 지불해야 한다. 1998년 정리해고 법이 도입되었지만, 법에 정한 요건을 충족시킨다 할지라도 해고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구조조정 요건은 되나 실제적인 시행과정에서 많은 충돌이 있고 사망자가 생기는 등 불행한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20년 이상 주인을 찾지 못했던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의 합병을 저지하기 위해서 노조가 EU 등에 반대 운동을 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등 처우 격차가 크고 일단 대기업 정규직에서 밀려나면 새로운 좋은 직장을 찾기도 어렵기 때문에 근로자 입장에서는 구조조정에 격렬하게 저항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 격차가 평균 2000만원이 넘고 근속 기간이 길어질수록 그 격차가 커진다. 중소기업 이직자 10명 중 1명만이 대기업에 취업할 수 있다.

대기업체 종사자가 전체 사업체 종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현재 14.6%, 2003년 대비 5% 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해고비용 등에 부담을 느낀 대기업들이 해외로 나가거나 자동화에 투자하기 때문이다.

2020년 정기국회에서 통과된 노조법 개정으로 대기업 노동조합의 힘은 더욱 강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등 보완 입법을 통해 유연한 해고가 가능한 기업환경이 조성되어야 세금으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아니라 민간 부분에서 진짜 일자리가 많이 생길 수 있다.

‘해고 비용’ OECD 국가 중 터키 빼고 가장 높아
세계은행의 ‘기업환경평가 2019’ 보고서를 분석한 한국경제연구원에 의하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법에 따라서 근로자 1명을 해고하는데 1주일 급여의 27.4배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OECD 가입 36개 국가 중 터키 다음으로 높다. 독일·프랑스·영국·일본은 각각 1주일 급여의 21.6배, 13배, 8.3배, 4.3배다. 미국은 해고비용이 없다. 미국 등 주요 5개국(G5)의 평균 해고비용은 1주일 급여의 9.6배다.

근속연수가 길어질수록 빠르게 증가하는 퇴직금의 부담이 크다. 여당에서 추진하는 1개월 이상 근무자에게도 퇴직금을 지급하는 법안이 현실화된다면 해고 비용은 더 비싸지고 OECD 국가 중 터키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할 것이다.

2019년 OECD 고용 보호 지수에 따르면 한국의 정규 근로자 보호 지수는 6점 척도에서 2.31점으로 OECD 평균 2.26점과 비슷했다. 그러나 기업이 경영이 어려워 개별적으로 인원을 정리하거나 구조조정을 할 때 근로자를 보호하는 수준을 나타내는 척도는 4점으로 OECD 평균보다 1점 이상 높았다. 집단해고의 절차(5점) 및 부당해고 판정 시 복직관련(6점) 규제 수준도 높았다.

실제 적용되는 해고 비용은 법에서 조문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보다 높다. OECD 지수와 같이 각종 규제를 지수화한 해고 비용에 비해 기업들이 체험하는 해고 비용이 높기 때문이다.

2019년 세계경제포럼(WEF)에 의하면 기업들이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한국의 정리해고 비용 순위는 140개국 중 25위, 해고·고용 관행은 39위다. OECD 국가 내에서 정리해고 비용은 36개국 중 4위, 고용·해고 관행은 12위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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