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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북한의 핵전쟁 위협, 실존적 안보위험부터 줄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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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류제승 전 국방부 정책실장·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

류제승 전 국방부 정책실장·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근 열린 8차 당 대회에서 노동당 총비서가 되면서 “핵전쟁 억제력을 좀 더 강화하면서 최강의 군사력을 키우는데 모든 것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핵 미사일을 방어할 시스템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자신했다.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 의지가 분명히 있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신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핵 억제와 핵 보장 강화책 논의를

북한은 50~70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매년 10개 내외 분량 핵물질을 생산 중이며, 소형 전술핵 개발에 진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제재 효과를 넋 놓고 기다리기보다 실존적 안보 위험부터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새해 첫날, 문 대통령은 공군 지휘통제기를 타고 초계비행하며 “강한 안보 없이 평화도 없다”는 메시지를 내놨다. 지난 4년 동안 문 정부는 “평화 없이는 안보도 없다”며 북한에 유화적 자세로 끌려다니지 않았던가. 그 와중에 북한 억제와 한국 안보를 위한 미국과의 동맹 협력은 뒷전으로 밀렸다.

한국의 경우와 달리 서독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는 1979년 12월 이른바 ‘이중 결정’을 채택해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했다. 이 전략의 목적은 소련 중거리 핵(SS-20) 배치로 깨졌던 힘의 균형을 미국 중거리 핵(Pershing II) 배치를 통해 회복하고, 이를 뒷배로 한 협상에서 소련의 위협을 줄이는 데 있었다. 훗날 통일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가 “그 결정이 없었다면 힘의 균형과 독일 통일도 없었다”고 회고할 정도로 대성공이었다.

이런 경험에 비춰볼 때 북핵 폐기 시점에 맞춘 철수를 조건으로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전진 배치 방책을 쓰면 북핵 억제력 강화와 동시에 북핵 폐기를 압박하는 일거양득(一擧兩得) 효과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

그런데 2017년 9월 청와대 국가안보실은 전술핵 재배치 옵션을 부정했다. 그 이유로 ▶한반도 비핵화 원칙 위배 ▶북한 비핵화 명분 상실 ▶동북아 핵 도미노 촉발 문제 등을 열거했지만, 납득하기 힘든 논리다. 한반도 비핵화 약속은 북한 핵 무장으로 이미 유명무실해졌다. 전술핵의 위치 조정만으로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저촉되는 수평적 확산이 아니다. 중국과 러시아는 핵을 가진 상태고 일본은 수개월 내 핵무장이 가능하다.

미국의 전통적 핵 안보 공약은 핵우산과 모든 범주의 군사 능력으로 한국에 확장억제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한·미 양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인 2011년 확장억제 정책위원회를 설치해 맞춤형 억제체제를 발전시켜 왔다. 그러나 그동안 증대된 북핵 위험은 새로운 ‘억제와 보장의 딜레마’를 초래했다.

본래 ‘핵 억제’보다 ‘핵 보장’이 더 어려운 법이다. 미국은 한반도 국지분쟁이 핵전쟁으로 비화하지 않도록 억제할 수 있다고 장담하지만, 한국은 미국에 더 확고한 핵 안전보장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조 바이든 정부 출범을 계기로 한·미 양국은 핵 억제와 핵 보장 강화책 논의에 착수해야 한다. 핵심 의제로는 미국의 한반도 관련 핵 정책 및 전력태세 기획 과정에 한국의 관여, 핵 위기관리 연습 정례화, 전술핵 전진 배치 태세 조정 등을 고려할 수 있다.

이미 중국은 미국 핵전력의 동아시아 배치 움직임에 대해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총알받이가 되지 말라”며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중국 학자들도 국제회의에서 미국 전술핵의 한국 배치 가능성을 거론한다.

대한민국이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핀란드화’가 현실이 되지 않도록 중국과도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 미래 한·미 핵 공유 체제는 한국의 실존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고, 결국 한반도 비핵화와 동아시아 안정을 이루는 가장 효율적인 대안임을 꾸준히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류제승 전 국방부 정책실장·한국국가전략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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