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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지원금 2000만원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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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윤설영 기자 중앙일보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윤설영 도쿄 특파원

#1. 도쿄에 사는 A씨는 최근 술집에서 기이한 경험을 했다. 오후 8시가 되니 술집 주인이 셔터를 내리기 시작했다. 5~6명의 손님이 아직 남아있던 상황. 주인은 “영업은 10시까지 계속할 테니, 계산은 카드 말고 현금으로 해달라”며 ‘몰래 영업’을 시작했다. 도쿄도에 긴급사태가 선언돼, 오후 8시 영업시간 단축 요청이 내려온 지난 8일 직후의 일이었다.

#2. 지난 금요일 오후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신바시의 뒷골목을 찾았다. 문을 닫은 음식점이 태반이었다. 가게에는 하나같이 “긴급사태 선언이 종료될 때까지 휴업한다”는 안내가 적혀있었다. 작은 이자카야를 운영하는 N씨는 가게 두 곳 중 한 곳을 아예 휴업하기로 했다. 도쿄도가 영업시간 단축 지원금으로 186만엔(약 1976만원)을 통째로 준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내린 결정이다.

긴급사태를 선언하면서 일본 정부는 대규모 지원금을 풀었다. 영업시간 단축 지원금에만 예비비 1조엔(약 10조원)을 배분했다. “영업 제한과 보상은 반드시 세트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일본 정부 기본 방침이다.

지난 15일 도쿄 신바시의 한 음식점에 긴급사태선언이 해제될 때까지 휴업 한다는 안내가 붙여있다. 윤설영 특파원

지난 15일 도쿄 신바시의 한 음식점에 긴급사태선언이 해제될 때까지 휴업 한다는 안내가 붙여있다. 윤설영 특파원

신청 조건이 까다롭지도 않다. 영업 손실분이나 영업장 규모에 상관없이 음식점에 2000만원 가까운 돈을 지급한다. 정식 집계가 나오진 않았지만, 과감한 ‘당근’ 덕분에 영업시간 단축에 동참하는 비율은 꽤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반면 ‘채찍’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미미하다. 벌금이나 행정처분을 내릴 근거가 없다. 그나마 영업장의 이름을 단계적으로 공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벌칙에 대한 국민 여론이 우호적이지도 않다.

셔터를 내리고 ‘몰래 영업’을 해도, 영업도 안 하면서 지원금을 받아가더라도 일본 정부가 거액의 세금을 뿌리는 이유는 “일단 급한 불은 끄고 보자”는 의도다. 지난해 정부지원금이 지급되는데 몇 달씩 걸리는 바람에 정책 도달 효과가 미미했던 트라우마가 일본 정부에는 남아있다. 코로나19 담당상은 “각각 손실액을 산정해서 지원금을 책정하는 건 너무도 방대한 작업”이라며 스피드를 강조했다.

마음은 급하다. 긴급사태를 선언한지 열흘이 넘었지만, 여전히 도쿄에서 2000명 안팎, 전국에서 7000명 안팎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매일 나오고 있다. PCR 검사가 하루 2만건에서 10만건 사이에서 들쑥날쑥하다. 감염자 파악이 완벽히 안되니 방역의 둑이 여기저기서 무너지고 있다.

더 시급한 건 도쿄올림픽 개최 시한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도쿄올림픽 1년 연장을 결정한 게 3월 24일이었다. 긴급사태 선언을 연장해야 할 상황이 된다면, 스가 정권의 시한도 더 앞당겨질 수 밖에 없다.

윤설영 도쿄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