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는 데 품이 든 연근괴물, 작품 성공 개국공신”

중앙일보

입력 2021.01.1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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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달 18일, 190여개국에 출시된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 [사진 넷플릭스]

지난달 18일, 190여개국에 출시된 넷플릭스 드라마 ‘스위트홈’. [사진 넷플릭스]

“국내에서 이런 괴물 소재의 작품을 드라마로 만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스위트홈’ 작가 김칸비·황영찬
웹툰 원작, 13개국 넷플릭스 1위
감춰온 욕망이 발현돼 괴물로 변신

“좀비물의 자비없는 감염에 반감
정신력으로 극복 가능하게 설정”

지난달 처음 공개돼 한국을 비롯해 대만·필리핀·싱가포르·베트남 등 해외 13개국 넷플릭스 차트 1위를 휩쓴 드라마 ‘스위트홈’의 원작 웹툰 작가 김칸비(39, 본명 김민태)씨의 말이다. 웹툰은 2017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네이버웹툰에서 연재됐고 해외 9개 언어판으로 출시되면서 전 세계 누적 조회 수 12억건을 기록했다. 은둔형 외톨이 고등학생 현수가 자동차 사고로 가족을 잃고 혼자 이사한 아파트에서 갑작스레 창궐한 괴물들에 맞서게 되는 여정을 이웃 주민들의 사연과 버무려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도깨비’의 이응복 PD가 연출을 맡았다.

스토리 작가인 김씨와 황영찬(38) 그림작가가 사이코패스 살인마 아버지를 둔 고등학생을 그린 웹툰 『후레자식』(이번 드라마에서 등장인물이 웹툰 보는 장면에 등장)에 이어 두 번째로 뭉쳤다.

“지인들에게서 축하 연락이 오고 인스타그램 외국 분들 팔로워가 늘었다”(김칸비)  “드라마 흥행이 항상 다른 세계 이야기 같았는데, (현실이 돼) 기뻤다”(황영찬)는 두 작가를 13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원작 웹툰을 토대로 근육괴물(사진) 등 다양한 괴물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사진 넷플릭스]

원작 웹툰을 토대로 근육괴물(사진) 등 다양한 괴물 캐릭터를 등장시켰다. [사진 넷플릭스]

웹툰 완결 전에 드라마 제작이 시작돼 결말 등 다른 부분이 많더라.
김칸비(이하 김)= “배경이 되는 그린홈(아파트) 풍경이 원작보다 훨씬 피폐해진 듯하다. 촬영장에 가보고 싶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못 갔다. 후반 내용이 원작과 달라진단 건 미리 알았다. ”

황영찬(이하 황)= “(정부의) 군대가 나올 것은 예상 못 했다. 그리고 범죄자 집단의 재현 묘사가 뛰어난 게 마음에 들었다.”  

드라마에서 가장 마음에 들게 구현된 괴물 1등을 꼽자면 뭘까.
=“독자님들이 이름 붙여준 ‘연근괴물’(머리 절반이 잘린 단면이 연근과 닮아서 붙은 별명). 그리는 데 품이 들었는데 작품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 데 도움을 준 개국공신 같은 캐릭터다.”
웹툰(왼쪽)과 가장 높은 싱크로율로 꼽힌 연근괴물. 웹툰은 지난해 단행본(위즈덤하우스)으로도 출간됐다. [사진 네이버웹툰]

웹툰(왼쪽)과 가장 높은 싱크로율로 꼽힌 연근괴물. 웹툰은 지난해 단행본(위즈덤하우스)으로도 출간됐다. [사진 네이버웹툰]

‘스위트홈’에선 각자 감춰온 욕망이 발현돼 다양한 괴물로 변하고 이런 증세가 온 세상을 뒤덮는다. 주인공 현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괴물화’ 증세로 인한 괴력을 이용하면서도 내면의 괴물과 싸우며 인간성을 유지한다. 김 작가는 “기존 좀비물의 자비 없는 감염에 대한 반감이 있었다. 정신력과 강한 마음으로 어느 정도 극복 가능한 설정이라면 (가슴) 뜨거운 장면들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다만, 초창기 구상은 달랐단다.

“인체 내부에 생긴 암세포에 자아가 생겨 밖으로 나오려고 한다는 설정이었어요. 온몸이 까뒤집힌 형태의 괴물이었죠. 그래서 주인공을 은둔형 외톨이로 정했죠. 밖을 두려워하고 나가기 싫어하는 주인공의 특성이 내면의 괴물의 성격에 영향을 줘서 ‘괴물화’에 면역을 갖게 된 거죠.”(김) 이 구상을 버린 건 일본 작가 이토 준지의 만화에 이미 유사한 설정이 있었고, 몸 안의 내장이 몸 밖으로 뒤집혀 나온 모습이 끔찍할 듯해서다. 대중성과 심의를 고려해 결국 다양한 괴물로 스케일을 키우고 지금대로 완성했다.

“맨 처음 나오는 괴물은 너무 이질적이지 않게 일부러 양복을 입히고 거인 느낌으로 그려달라 요구했고, 점점 흉악하고 비현실적인 괴물이 등장하게 되죠. 독자들이 조금씩 괴물의 모습에 적응하도록 했어요.” 김 작가의 말에 황 작가는 “각 인간의 욕망을 괴물 디자인에 투영하는 데 초점을 뒀다”면서 “꼴뚜기 같은 것을 상상하면서 기괴하고 이상한 ‘느낌’에 신경 쓰며 그렸다”고 부연했다.

황영찬 작가가 그린 김칸비 작가(왼쪽)와 황작가 자신의 캐리커처. [사진 황영찬]

황영찬 작가가 그린 김칸비 작가(왼쪽)와 황작가 자신의 캐리커처. [사진 황영찬]

드라마에서 가장 좋았던 인간 캐릭터는.
= “차현수. 몇 년간 그려온 주인공을 배우(송강)가 멋진 비주얼로 연기하는 것을 보니 만족감이 컸다. 라면박스 같은 자잘한 소품도 원작을 배려해서 만든 게 보이더라.”

=“김남희 배우가 연기한 정재헌(진검을 무기로 괴물과 싸우는 국어교사). 원작을 상회하는 임팩트를 가진 캐릭터였다. (경비괴물과 싸우는) 엘리베이터 장면도 좋지만, 편상욱(이진욱)이 자기 자신을 포기하고 셔터 밖으로 나갈 때 정재헌이 막는 장면은 원작에 없던 두 사람의 관계가 새롭게 시작된 순간이라 신선했다.”

이 세계에 들어간다면 어떤 괴물이 될 것 같나.
=“집돌이 괴물. 방에서 안 나올 것 같다.”

=“건강해 보이는 근육 괴물이 될 것 같다. 근육질이 부럽다.”

둘은 청강문화산업대학 선후배 사이다. 한 살 위인 김 작가는 2006년 웹툰 『교수인형』으로 데뷔해 웹툰 창작집단 ‘팀겟네임’ 소속 작가로도 활동해왔다. 황 작가는 2009년 웹툰 『비흔』으로 데뷔했다. 처음 함께한 『후레자식』 때부터 대부분 메신저를 통해 ‘랜선 협업’을 해왔다. 황 작가는 “칸비 형은 흥미 있는 이야기를 짜온다. 저는 좀 단순한데, 서로 맞물려가면서 좋은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김 작가는 “황 작가는 매사에 성실하고. 개성 있는 그림체이면서도 대중적이고 호감을 주게 그린다. 그의 통속적인 취향이 저의 마이너함과 섞여 중간 점의 작품을 탄생시키는 듯하다”며 신뢰를 표했다.

최근 ‘스위트홈’ 외에도 ‘여신강림’ ‘경이로운 소문’ 등 웹툰 원작이 주목받는 데 대해 김 작가는 “검증된 시나리오와 잘 구축된 고정팬층”을 요인으로 꼽았다. 스릴러를 주로 써온 그는 SF·스포츠 등 여러 장르를 합쳐 독특한 스릴러를 만들어보고 싶다면서 게임 시나리오도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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