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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면 목숨건다···어떤 나라든 전쟁터 만든 '푸틴의 셰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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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프리카 공화국(CAR)은 아프리카 대륙의 한복판에 있는 나라다. 수도는 방기.

[이철재의 밀담]

시리아에서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PMC)인 바그네르 그룹의 전투원이 전투를 치르고 있다. [SKY News 유튜브 계정 캡처]

시리아에서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PMC)인 바그네르 그룹의 전투원이 전투를 치르고 있다. [SKY News 유튜브 계정 캡처]

지난해 12월 말 방기 공항에 러시아의 수송기인 Il-76이 도착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수송기에서 10여 대의 군용 트럭과 2대의 장갑차가 내렸다. 장비와 함께 도착한 300여 명은 모두 군복 차림에 무장했다.

장갑차에 대한 정보가 나중에 나왔다. 카마즈-53949 타이푼-L이란 러시아의 지뢰방호차량(MRAP)이었다. 승무원 2명과 완전무장 병력 8명을 태우고 시속 105㎞까지 달릴 수 있다. 14.5㎜ 중기관총으로 공격할 수 있으며, 지뢰나 급조폭발물(IED) 폭발에도 끄떡없다.

러시아 육군이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배치하고 있는 최신 무기다. 그런데 방기 공항에서 목격된 장비와 무장 병력은 러시아 연방군 소속이 아니다. 바그네르(Wagner) 그룹이라는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의 장비와 용병이었다. PMC는 용병 파견회사다.

대선과 총선을 앞뒀던 CAR에서 지난해 12월 19일 전 대통령인 프랑수아 보지제의 쿠데타 모의가 발각됐다. 선거 감시 임무를 맡고 있던 아프리카 평화유지군 3명이 살해됐다. 그러자 CAR의 포스탱아르샹주 투아데라 대통령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공항에 도착한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인 바그네르 그룹의 장갑차. [Форпост]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공항에 도착한 러시아 민간군사기업(PMC)인 바그네르 그룹의 장갑차. [Форпост]

바그네르 그룹은 2017년부터 CAR에 머물렀다. 이번에 병력과 장비를 증원한 것이다. 바그네르 그룹은 CAR에 요인 경호ㆍ안보 자문ㆍ군사 훈련을 지원하고 있다. 실제 전투에도 직접 뛰어든다. 그 대가로 CAR로부터 7곳의 다이아몬드ㆍ금광ㆍ광물 채굴권을 얻어냈다.

러시아 공수 병력 사실은 업체 소속 

미국 의회조사국(CRS)에 따르면 바그네르 그룹은 유럽의 우크라이나를 시작으로 중동의 시리아를 거쳐 CARㆍ리비아ㆍ수단ㆍ모잠비크에서 활동하고 있다. 말리ㆍ니제르ㆍ차드ㆍ부르키나파소ㆍ모리타니 등 아프리카 국가도 러시아에 군사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이들 국가는 바그네르 그룹의 다음 고객이 될 전망이다.

시리아에서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PMC)인 바그네르 그룹의 전투원이 전투를 치르고 있다. [We Salute Indian Army 유튜브 계정 캡처]

시리아에서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PMC)인 바그네르 그룹의 전투원이 전투를 치르고 있다. [We Salute Indian Army 유튜브 계정 캡처]

CNN은 바그네르 그룹을 ‘푸틴의 사병(私兵)’이라고 불렀다. 바그네르 그룹의 실질적 오너인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그는 20대 때 길거리 핫도그 장사로 시작해 요식 사업으로 큰돈을 벌었다.

프리고진은 푸틴 대통령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때 친러 반군 편에 섰다. 2016년 미국 대선 때는 댓글 부대를 동원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은밀히 지원했다. 그래서‘푸틴의 셰프(요리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美 대선, 트럼프 댓글 부대 작전도

바그네르 그룹은 러시아가 주창한 복합전(Hybrid Warfare)의 첨병이다.

지난해 7월 벨라루스 당국이 민스크에서 30명이 넘는 러시아인을 체포했다. 이들은 모두 바그네르 그룹 소속의 용병들이었다. 당시 벨라루스는 러시아와 가스공급 축소를 두고 분쟁을 벌이고 있었다. 바그네그 그룹과 같은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PMC)은 러시아의 국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AP]

지난해 7월 벨라루스 당국이 민스크에서 30명이 넘는 러시아인을 체포했다. 이들은 모두 바그네르 그룹 소속의 용병들이었다. 당시 벨라루스는 러시아와 가스공급 축소를 두고 분쟁을 벌이고 있었다. 바그네그 그룹과 같은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PMC)은 러시아의 국익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AP]

복합전은 ‘전쟁인 듯, 전쟁 아닌, 전쟁 같은 전쟁’이다. 정규전과 비정규전, 사이버전을 복합한 전쟁이다. 국가는 물론, 반군ㆍ민병대ㆍ테러단체ㆍ범죄단도 이 전쟁의 플레이어들이다. 국가가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조정한다면 상대가 대응하기가 힘들어지면서 국익을 챙길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 때 복합전을 잘 써먹었다. 당시 크림반도를 강제로 병합한 뒤 친러 분리주의 반군을 부추겼다. 러시아 현역 군인이나 첩보원이 이들 반군에 동참했다.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고, 심리전도 펼쳤다.

러시아의 발레리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2013년 2월 ‘과학의 가치는 예측’이라는 논문에서 복합전을 이렇게 정의했다.

“전통적인 능력, 비정규적 전술 및 대형, 무차별적 폭력과 강압을 포함하는 테러분자의 행동 그리고 범죄적 무질서를 포함하는 전쟁의 다양한 형태들을 통합한다”

그러면서 복합전에 대해 이렇게 자랑했다.

“정치적으로 안정됐고 경제적으로 반영하는 국가라도 (복합전을 겪으면) 수개월 내, 심지어 며칠 안에 격렬한 무력 충돌의 장으로 바뀔 수 있고, 외국의 개입의 희생자가 될 수 있으며, 혼란ㆍ인도주의적인 재난ㆍ내전이 혼재된 상태에서 침몰할 수 있다.”

어떤 나라도 전쟁터로 바뀔 수 있어

러시아 정부는 바그네르 그룹과의 연관성을 부인한다. 그러나 바그네르 그룹은 러시아군과 정보기관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리비아에 배치된 러시아의 MiG-29 전투기.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PMC)인 바그네르 그룹을 지원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가 보냈다. [미국 국방부]

리비아에 배치된 러시아의 MiG-29 전투기. 러시아의 민간군사기업(PMC)인 바그네르 그룹을 지원하기 위해 러시아 정부가 보냈다. [미국 국방부]

2016년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와 시리아에서 사망한 바그너 그룹의 용병에게 훈장을 줬다.

바그네르의 훈련소는 모스크바에서 동쪽으로 200㎞ 떨어진 몰키노에 있다. 그런데 이 훈련소를 제10 특수임무 여단과 함께 쓰고 있다. 10여단은 러시아군 총참모부(합참) 정보총국 예하의 특수부대다. 이 부대는 ‘특수임무군’을 뜻하는 러시아어의 줄임말인 스페츠나즈(спецназ)로 더 잘 알려졌다.

지난해 5월 미군 아프리카사령부(AFRICOM)는 러시아가 내전 상태인 리비아에 MiG-29와 Su-35 등 최소 14대의 전투기를 배치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전투기는 러시아를 떠나 시리아에서 라운델(국적 표시)을 지워 국적을 감춘 뒤 리비아로 들어갔다. 바그네르 그룹을 지원하기 위한 파병이었다. 바그네르 그룹의 뒷배가 러시아 정부라는 물증이다.

중국도 ‘전쟁 수출’ 정부 차원 지원

중국은 PMC를 적극적으로 키우려고 한다. 김진용 대테러국제용병협회 회장은 ”중국 정부는 민간보안회사(PSC)을 PMC로 육성하는 데 관심이 많다. 정부 차원에서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8년 8월 11일 파키스탄에서 발로치스탄 해방군의 자살폭탄 테러로 버스가 불탔다. 이 테러로 중국인 3명이 부상당했다. 파키스탄은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서 중요 국가다. 중국이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그만큼 중국인을 노린 공격이 늘어나고 있다.  [신화망]

2018년 8월 11일 파키스탄에서 발로치스탄 해방군의 자살폭탄 테러로 버스가 불탔다. 이 테러로 중국인 3명이 부상당했다. 파키스탄은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서 중요 국가다. 중국이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이처럼 중국이 전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그만큼 중국인을 노린 공격이 늘어나고 있다. [신화망]

중국은 중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경제권인 일대일로(一帶一路ㆍBRI)를 꿈꾸고 있다. 그래서 전 세계 곳곳에 투자하고 있다. 이미 많은 수의 중국인이 해외로 나가 활동하고 있다.

2004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중국인 건설 노동자 11명이 탈레반에 살해됐다. 이후 해외 중국인 살해 사건이 잇따랐다. 그러자, 중국 정부는 2009년 안보복무관리조례를 만들어 PSC를 합법화했다.

중국은 해외에 무력을 투사할 능력을 차근차근 갖추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아시아ㆍ아프리카에 파병할 수 있다. 그러나 군을 자주 동원하다 보면 중국이 늘 내세우는 외교 원칙인 ‘불간섭주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셈이다. 그래서 해외 중국인 보호에 군 대신 민간회사를 내세우려고 한다.

2018년 현재 중국의 4000개의 PSC에서 430만명을 고용하고 있다. 대부분 중국 인민해방군이나 무장경찰 전역자들이다. 2016년 현재 20여 개 PSC의 3200여 명이 해외에서 보안 업무를 맡고 있다. 김진용 회장은 “중국 정부는 군ㆍ경찰 출신에 일자리를 마련하는 차원에서도 PSC를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세계에 더 깊숙이 발을 담글 수록 더 많은 ‘부수적 피해’를 볼 것이란 전망이다. 2018년 파키스탄에서 자살폭탄 테러와 총격 사건으로 중국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 해방군이란 분리주의 단체의 소행이었다. 이들은 중국을 ‘압제자’라고 비난했다.

中 공안부 통제 아래 훈련기지 차려

중국 PMC의 육성 정책 배경엔 한 인물이 있다. 미국의 PMC인 블랙워터의 최고경영자였던 에릭 프린스다. 이라크 전쟁 이후 한참 잘나가던 블랙워터는 비무장 민간인인 사살한 사건을 일으켰다. 이 사건으로 관련자는 처벌을 받았고, 회사는 이름을 아카데미로 바꿨다. 프린스는 홍콩에 프론티어 서비스 그룹(FSG)이란 PSC를 만든 뒤 중국 정부에 컨설팅해주고 있다.

중국의 민간보안회사(PSC)인 더웨이(北京德威保安服務有限公司)의 홍보물. 더웨이는 37개국에서 8000명이 보안 업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Eurasia Review]

중국의 민간보안회사(PSC)인 더웨이(北京德威保安服務有限公司)의 홍보물. 더웨이는 37개국에서 8000명이 보안 업무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Eurasia Review]

FSG는 2019년 신장(新疆)성에 훈련기지를 세운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이에 대해 ‘노코멘트’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중국의 모든 PSC는 중국 공안부의 강력한 통제를 받는다.

중국의 PSC는 미국ㆍ유럽의 PMC와 비교하면 경험이 부족하다. 그러나,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다. 12명의 중국 PSC 경호원을 고용하는 비용은 1명의 미국ㆍ영국 PMC 경호원 비용 수준이라는 보고서도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러시아의 PMC와 중국의 PSC를 먼 나라의 일로 여겨야 할까.

인텔엣지라는 PMC를 운영했던 경력을 가진 양욱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러시아의 PMC와 중국의 PSC는 사익이 아닌 국익을 추구하는 준(準) 국가기관“이라며 ”러시아는 이들 회사를 복합전의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중국도 러시아를 따라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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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욱 교수는 ”중국이 PSC를 내세워 수출 시장을 장악한다면 한국에 좋을 리 없다“며 “PMC와 PSC를 규제하는 국제 질서를 세우는 데 한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철재·박용한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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