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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갑생의 바퀴와 날개] 38년전 눈뜨고 내준 그 하늘길…‘아카라 회랑’ 탈환작전 전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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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날아다니는 하늘길을 항로라고 부르다. [중앙일보]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하늘길을 항로라고 부르다. [중앙일보]

 비행기가 다니는 길을 '항로(航路, Airway)'라고 합니다. 그런데 항공기가 오가기는 하는데 항로가 아닌 다른 명칭으로 부르는 길이 있습니다. 바로 '항공 회랑(Corridor)'인데요.

 항로와 회랑의 가장 큰 차이는 고도를 바꿀 수 있느냐 여부입니다. 항로는 정해진 하늘길에서 비행 고도를 달리하는 방식으로 항공기 여러 대를 통과시킬 수 있는데요. 차선이 여러 개인 넓은 도로와 유사합니다.

 반면 회랑은 영어로 복도(코리도)란 의미를 가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정해진 하나의 통로로만 다녀야 합니다. 즉 규정된 고도로만 비행해야 하고, 원칙적으로 이를 바꿔서는 안 됩니다. 회랑은 정식 항로 개설이 어려운 특수한 경우에만 개설되기 때문에 흔치 않습니다.

 항공 회랑은 특정 고도로만 다녀야   

 우리나라 하늘길에 이런 회랑이 있습니다. '아카라-후쿠에 항공회랑(AKARA- FUKUE Coprridor)'이 그것인데요. 흔히 줄여서 아카라 회랑이라고 부릅니다.

 아카라 회랑은 1983년에 생겼습니다. 중국 상하이와 일본을 연결하는 A593 항로 중 한 구간으로 회랑의 길이는 515㎞입니다. 그런데 이 중 절반인 257㎞가 우리 비행정보구역(FIR)에 포함됩니다.

 비행정보구역은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항공안전을 위해 가입국들에 관제 권한과 구조 의무 등을 부여해 놓은 곳으로 최근에는 영공과 연동되는 개념으로 간주되는데요.

 83년 중국~일본 사이 아카라 회랑 개설

 그러나 아카라 회랑 중 우리 FIR 구간에 대한 관제권은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절반은 중국이, 나머지 절반은 일본이 가져갔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당시 중국과 일본은 양국을 연결하는 가급적 빠른 항로를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우리 내륙의 영공을 통과하는 게 최단 코스였지만 중국이 반대했고, 대안으로 찾은 곳이 제주 남쪽의 이어도 부근으로 지금의 아카라 회랑이었습니다.

인천공항 관제탑 옆으로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다. [중앙일보]

인천공항 관제탑 옆으로 비행기가 이륙하고 있다. [중앙일보]

 문제는 관제였습니다. ICAO 규정대로라면 우리 FIR이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관제권을 행사해야 맞지만, 당시 우리와 중국은 미수교 상태로 양국 간 관제 직통선도 없었습니다. 중국이 우리와의 관제 직통선 개설을 거부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우리 하늘인데 관제는 중·일에 내줘 

 관제소 간 통신이 안되는 상황에서 원활하고 안전한 관제가 이뤄질 수는 없는 노릇인데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ICAO가 중재에 나서 아카라 회랑 전체에 대한 관제권을 중국과 일본이 나눠서 갖게 됐습니다.

 항공업계에선 보다 속 깊은 얘기도 들립니다. 인천 FIR로 부르는 우리나라의 비행정보구역은 1963년 ICAO의 결정으로 설정됐습니다. 그런데 뒤늦게 ICAO에 가입한 중국이 1975년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고 하는데요.

 우리 FIR 구역인 제주도 남단 지역을 자신들의 상해 FIR에 편입하겠다고 한 겁니다. 논란은 이어졌고 결국 ICAO의 중재로 현재 FIR을 유지하면서 아카라 회랑을 개설하는 것으로 결정됐다는 내용입니다. 어쨌든 당시로선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할 수도 있는데요.

 한·중 국교 수립 이후에도 상황 불변 

 하지만 1992년 한국과 중국 간 국교수립 이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아카라 회랑과 관련된 우리와 중국 관제소 간 직통선은 이어지지 않았고, 관제권 역시 중국과 일본이 행사한 겁니다.

 아카라 회랑은 중국 상하이를 오가는 우리 항공기도 자주 이용하지만, 양국 관제소 간에 정식으로 관제권을 주고받는 게 아니라 해당 지점에서 갑자기 관제권이 넘어가는 비정상적인 운영을 해왔다는 게 우리 항공업계의 얘기입니다.

 아카라항로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단독보도한 기사.[중앙일보]

아카라항로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단독보도한 기사.[중앙일보]

 이런 상황은 항공 주권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중앙일보가 2018년 3월 23일 '이어도 상공 우리 하늘인데 중국에 통행료 내고 다녔다'는 제목으로 아카라 회랑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단독 보도하기 전까지는 항공 당국과 항공업계·학계의 일부 인사만 알고 있었을 뿐입니다.

 관제권 나뉘면서 항공 사고 우려 커  

 더 큰 문제는 이런 비정상적인 운영이 항공 안전에도 상당한 위험을 주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아카라 회랑 중 일본 관제 구역은 동남아를 오가는 항로와 교차하는 지점으로 교통량이 상당합니다. 이 주변 교통량은 하루 평균 800대나 되는데요.

 우리 FIR이라도 아카라 회랑을 비행하는 항공기는 일본 관제소가, 동남아 연결 항로를 이용하는 비행기는 우리 관제소가 제각각 관제를 하다 보니 유사시 종합적이고 발 빠른 대응이 어려웠던 겁니다.

아카라 회랑의 안전 문제를 제기한 IATA 보고서. [자료 IATA]

아카라 회랑의 안전 문제를 제기한 IATA 보고서. [자료 IATA]

 이 때문에 항공 관련 세계 최대 민간단체인 국제항공운송협회(IATA)가 2017년 11월 발간한 '아카라 회랑의 항로 교차 현상에 대한 보고서'에서 "항공기가 급작스럽게 하강을 하는 비상 상황이 발생할 경우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최근 3년 사이 두 차례 충돌 위기 발생   

 이 같은 우려는 실제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2019년 6월 30일 중국 길상항공과 동방항공 간에 공중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회피기동이 발생했고, 앞서 2018년 7월에는 미국 페덱스 항공기가 무단으로 고도를 상승해 우리 저비용항공사의 여객기가 급히 방향을 바꾼 사건이 있었는데요. (중앙일보 2019년 8월 13일 단독 보도)

 회피기동 당시 길상항공은 인천 종합교통관제소(ACC), 동방항공은 일본 후쿠오카 ACC가 담당했습니다. 또 페덱스 항공기 상황 때는 후쿠오카 ACC가, 우리 항공기는 인천 ACC가 각각 관제를 맡았는데요. 동일 지역에서 관제권이 나뉘어 있기 때문에 생긴 위험한 상황이었던 겁니다.

 아카라 항로의 충돌 위기를 단독보도한 기사.[중앙일보]

아카라 항로의 충돌 위기를 단독보도한 기사.[중앙일보]

 여기서 의문이 드는 게 하나 있을 겁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뭘 했느냐일 텐데요. 사실 우리 항공당국도 문제점을 인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왔습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중국, 일본 등과 얽힌 외교적 문제인 탓에 해결책을 마련하기 쉽지 않았다"고 토로합니다.

 중앙일보, 아카라 회랑 문제 단독 보도  

 아카라 항로의 문제점이 알려지고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국토부는 ICAO와 중국, 일본 측에 상황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책 마련을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그 결과 한·중·일 3개국과 ICAO가 참가하는 워킹그룹이 2019년 1월 구성됩니다. 여기서 관제권 이양, 새로운 항로 개설 등 여러 해결책이 잠정합의돼 그해 11월 말 ICAO 이사회에 보고되기에 이릅니다.

 이에 따라 당초 지난해 4월부터 합의안을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인데요. 코로나 19로 각국 항공당국에 비상이 걸린 데다 항공 교통량도 급격히 줄어들게 된 건데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후속 협의와 시행에 차질이 생긴 겁니다.

 항공당국, 끈질긴 노력 끝 해결책 합의  

 김상도 국토부 항공실장은 "중국과 일본도 자국의 항공 상황이 어려워지다 보니 아카라 회랑 관련 해결책 시행을 다소 미루려는 움직임이었다"며 "여기서 더 지연돼서는 안 된다는 판단에 지난해 5월부터 지속해서 서면 협의와 화상회의 등을 거치면서 마침내 합의점을 찾게 됐다"고 말합니다.

 지난 11일 국토부가 발표한 '아카라 회랑 정상화 방안'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 FIR 내에서 일본에 내줬던 관제권을 38년 만에 회수하고, 중국 상하이 측과 관제 직통선을 연결하고, 항로를 정규·복선화하는 방안을 2단계에 걸쳐 시행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국토부의 유경수 항공안전정책과장은 "오랜 기간 비정상적으로 운영되던 회랑을 국제 규정에 맞게 안전한 정규 항공로로 만들고, 관제도 정상화됐다는 게 큰 의미"라고 설명합니다.

 늦은 감이 없지는 않지만, 항공당국의 끈질긴 노력으로 이제라도 비정상의 정상화를 이뤘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 성과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더 이상은 이런 항공 주권과 안전에 문제가 되는 상황은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강갑생 교통전문기자 kks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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