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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나 인수 신청한 ‘KAL’…‘칼같은 잣대’ 조성욱 넘을까

중앙일보

입력

공정거래위원회 청사와 대한항공 여객기. 다음 로드뷰,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 청사와 대한항공 여객기. 다음 로드뷰, 연합뉴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합병(M&A)이 공정거래위원회 심판대에 올랐다. 공정위는 14일 대한항공으로부터 아시아나항공 주식 취득 관련 기업결합 신고서를 접수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은 이날 한국 공정위를 비롯해 미국·일본·중국·유럽연합(EU) 등 8개 해외 경쟁 당국에도 신고서를 일괄 제출했다.

대한항공 스스로는 결과를 낙관하고 있다.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은 “양사를 통합하면 세계 10위권 항공사로 도약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원가 경쟁력을 크게 향상할 수 있다”며 “과거 무수히 많은 항공사가 인수합병을 진행했지만 (경쟁 당국이) 기업결합을 승인하지 않은 사례는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공정위가 기업결합을 심사할 때 주안점은 두 회사 합병에 독과점 요소가 있느냐다. 구체적으로 ‘경쟁 제한성(시장점유율 50% 이상)’이 있느냐를 따진다. 두 회사에다 진에어ㆍ에어서울ㆍ에어부산 등 두 회사의 저비용항공사(LCC) 국내 여객 시장 점유율까지 더하면 2019년 기준 66%에 달한다. 화물 시장 점유율은 더 높다.

숫자로만 보면 독과점이지만 ‘소비자 후생’이 더 클 경우 독과점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혹은 독과점 우려가 있는 노선의 사업권을 매각하는 조건으로 결합을 승인할 수도 있다.

자유로운 시장 경쟁을 제한할 우려가 있더라도 인수가 정당하다고 볼 가능성은 있다. 아시아나가 회생 불가능한 상태, 즉 지급 불능에 빠졌거나 조만간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다. 익명을 요구한 대형로펌의 공정거래 담당 변호사는 “대한항공이 아시아나의 설비ㆍ인력을 인수해 계속 활용할 수 있고, 대체 가능한 매수자가 마땅치 않다고 판단할 경우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해 인수합병을 승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례도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4월 일부 노선의 경쟁 제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제주항공의 이스타항공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이스타항공이 자본잠식 상태인 데다 단기간에 빚을 갚기도 어려운 점, 인수자로 제주항공 이외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점 등을 고려했다.

글로벌 항공업계에서도 대형항공사 간 M&A는 드문 일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당 1개 대형항공사 체제로 재편하는 추세다. 2004년 에어프랑스ㆍKLM, 2005년 아메리칸항공ㆍUS항공, 2008년 델타항공ㆍ노스웨스트항공, 2009년 브리티시항공(BA)ㆍ이베리아항공, 2010년 유나이티드항공ㆍ컨티넨털 항공 등이 잇달아 인수합병을 승인받아 덩치를 불렸다. 김병종 한국항공대 항공교통물류학부 교수는 “두 항공사는 국내선에선 LCC와 경쟁하고, 국제선에선 외항사와 경쟁이 심하다”며 “항공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합병해 시너지를 내는 게 낫다”고 말했다.

"노선별 독과점 따져야" 우려도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28일 배달의민족의 요기요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하는 내용의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달 28일 배달의민족의 요기요 기업결합을 조건부 승인하는 내용의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결과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2019년 취임해 3년 차를 맞은 조성욱 공정위원장이 원칙에 따른 깐깐한 기업결합 심사 기조를 이어가고 있어서다. 조 위원장은 취임 직후 LG유플러스의 CJ헬로 인수합병과 SK브로드밴드의 티브로드 합병 건을 그대로 넘기지 않고 잇달아 ‘조건부 인수’ 승인했다. 최근엔 배달의민족 인수를 시도한 딜리버리히어로(DH)에 배달의민족을 인수하는 대신 요기요를 팔라고 주문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4일 발간한 ‘대형항공사 M&A 관련 이슈와 쟁점-공정위 기업결합 심사 주요 현안’ 보고서에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합병을 둘러싼 독과점 우려를 드러냈다. 강지원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전체 노선 점유율뿐 아니라 국내외 각 도시를 연결하는 노선별 독과점 우려를 따져야 한다”며 “두 항공사의 취항 편수가 많은 인천발 미국ㆍ일본ㆍ중국 주요 도시행 국제선 노선 일부에 독과점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항공 수요 감소는 심사 고려 사항일 뿐 심사 기준을 약화하는 사유는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공정위 심사 기간은 신고일로부터 30일이다. 필요시 90일까지 연장할 수 있다. 제출한 자료 보완이 필요할 경우 실제 심사 기간은 120일을 넘길 수도 있다. 사안이 크고 복잡한 만큼 올 상반기 말에나 심사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한국 공정위 승인을 받더라도 해외 경쟁 당국 심사가 남아있다. 미국·일본·중국·EU 등 8개국에서도 기업결합 심사를 받아야 한다. 특히 독점 규제가 까다로운 EU 심사가 관건이다. 미국ㆍEU 공정경쟁 당국은 지난해 “코로나 19 상황과 무관하게 기업결합 심사에서 피인수 기업의 회생 불가 여부를 엄격히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숭규 공정거래위원회 기업결합과장은 “기업결합 심사에서 예외를 인정할 땐 사유를 구체적으로 봐야 하고, 조건도 엄격하다”며 경쟁 제한성과 회생 불가능성을 중점적으로 검토하고 소비자 후생에 악영향이 있는지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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