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고정애의 직격인터뷰

민주화 세력의 자아도취가 나라 멈추게 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1.15 00:42

업데이트 2021.01.15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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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고정애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5·18 왜곡시 쓴 철학자 최진석

고정애 논설위원

고정애 논설위원

그는 ‘생각하는 것으로 여태껏 밥 먹고 살고 있다’는 철학자다. 2017년 18년간 섰던 강단을 떠났는데 58세의 나이였다. 사람들은 “무림(武林)으로 이동했다”라고도 “강단 학자가 강호 학자”가 됐다고도 했다. 실상은 세상을 직접 만나기 위해서였는데 한 방송에서 강의하면서 이른바 ‘스타 인문학자’가 됐다. 큰 범주로 보면 반야심경·노자·장자였다.

문 대통령, 민족·진영 대표로 인식
민주화 세력, 성공 기억 잡고 완장
낡은 좌파와 낡은 우파만 남았다
생각 없는 국민…생각 없는 정치

2019년 7월 한 일간지에 ‘국가란 무엇인가’를 기고했다. 약산 김원봉의 서훈(敍勳) 논란을 촉발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군 통수권자이지, 민족의 지도자가 아니다”라고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후 국가적 논쟁에 적극 참여했다. 무림 고수의 문파 깨기가 되겠다. 사회평론가로 여겨졌고, 그가 호남 출신으로 촛불시위에 참여한 한때 현 정부 지지자였다는 점에서 진보 논객들에 비견되기도 했다.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다. 5일 만난 그는 “세계에 있는 모든 문제, 자기가 발견한 문제를 보편적 높이까지 승화시키는 게 철학이고 인문학”이라며 “조금 더 민주화된 사회, 자유로운 사회로 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컸는데 박근혜 정부와 똑같이 되는 걸 보고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덜 알려졌지만 문 대통령에 대한 비판 글은 2017년 8월부터였는데, 인사 5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걸 보고서였다. 그는 “문 대통령도 한 말을 지키지 않는달지, 상황에 따라 말을 다르게 적용한달지 하는 언어의 불일치성이 정권의 특성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2018년 말부터는 촛불 혁명이 더는 혁명이 아니라고 했고 지난해 말엔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최진석 서강대 명예 교수는 생각을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5일 서울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성정이 진중하지 못해서 그럴 수 있다”며 웃었다. 김경록 기자

최진석 서강대 명예 교수는 생각을 말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다. 5일 서울 사무실에서 만났을 때 “성정이 진중하지 못해서 그럴 수 있다”며 웃었다. 김경록 기자

결국 거짓말 때문인가.
“그렇다. 말이 신뢰를 잃으면 정치가 신뢰를 잃는 것이고 삶에서 신뢰를 잃는 것이다. 삶에서 신뢰를 잃는 현상이 염치·수치심을 모르는 것이다. 말의 신뢰가 무너지는 걸 보고 큰일 났다 싶었다. 염치를 모르니 말을 해놓고 지키지 않고도 당당하다. 조국 수호와 검찰개혁을 일치시킨다든지 검찰 장악을 검찰개혁이라고 부른다든지. 말이 길을 잃었다. 말이 길을 잃으면 정치가 길을 잃는다.”
집권세력은 여전히 촛불 혁명을 말한다.
“정치적 기반이니까 잃고 싶지 않을 것이다. 혁명으로서 촛불은 이미 실패했다.”
현 집권 세력의 가장 큰 문제를 무엇이라고 보나.
“대통령이 대통령이란 인식보다 진영의 대표자란 인식, 대한민국의 군 통수권자란 인식보다 민족의 지도자란 인식을 한다. 무엇보다도, 국가·정치·민주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사례를 든다면.
“김원봉에게는 서훈하려 하지만 서해 수호의 날에 대통령이 참석을 안 하는 문제랄지, 국군의 날 행사를 무력 과시의 날로 인식하지 않고 뜬금없이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을 기리는 모양의 행사(※밤중에 치러진 70주년 행사로 반전 가요 또는 장송곡으로 쓰이는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불렸다)로 바꿔 한달지…. 국가의 근본적인 어젠다는 부국강병이다. 납세자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강병이 없으면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부국이 안 되면 강병을 못한다. 우리는 좋은 통치자는 무기를 들면 안 된다고 여긴다. 광화문의 세종대왕도 칼이 없이 책만 본다. 국가에 대한 인식이 철저하면 통치자는 무기를 들고 있어야 한다. 왜 헌법에서 대통령을 군 통수권자로 규정하는지 알아야 한다.”
진영의 대표자란 의미는.
“우리나라는 한 국가, 두 국민으로 나뉜 지 오래다. 대통령이 한 국민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데 한쪽하고만 한다. 진영의 대표자란 인식이 강해서 반대세력을 제거하거나 소멸시켜야 할 대상으로 삼아버린다. 상징적으로 나타난 게 대통령비서실장이 반대세력을 ‘살인자’라고 부른 거다. 선거를 통해 대통령으로 권력을 잡은 다음엔 국가경영자로 변신해야 하는데 끝까지 정당·진영 대표로 남아 있다. 그래서 국가경영에 실패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민주화 세력이 집권했는데 민주주의의 후퇴를 걱정한다.
“민주화를 했다고 자처하는 세력이다. 사유의 수준이 높지 않아서다.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삶을 결정하는 시선의 높이가 자유나 민주를 느낄 정도로 높지 않으면 민주·자유보다는 현상적인 권력이 더 중요하게 보인다. 지적 성장이 잘 안 이뤄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을 두고 ‘갤럭시 S10을 들고 80년대 초반을 산다’고 한 적이 있다.
“그렇다. 인간은 건너가는 존재다. 지적으로 잘 성장하면 질문을 하고, 지적으로 성장하지 않으면 대답만 한다. 대답에 익숙하면 멈추고, 질문에 익숙하면 건너간다. 우리는 대답에 익숙해 있다. 이념가들은 한번 의지한 이념을 믿고 수호하는 데 빠져 있다. 건너가는 걸 변화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변절로 생각한다. 진실하게 산다는 도덕적 확신과 자아도취에 빠져 자신들의 멈춘 의식으로 나라를 멈추게 하고 있음을 자각하지 못한다.”
이들 스스론 도덕적이라고 주장한다.
“도덕에 대한 믿음이 강해서 도덕주의가 되면 도덕은 사라진다. 정치도 자기 이념이 지나치게 강하면 권력 놀이에 빠져 정치 자체를 죽인다. 근본적으론 각성·반성·생각하는 능력이 사라진 거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된다.”
이들은 진보적인가.
“우리나라에서 진보가 없어진 지 이미 오래다. 환경·인권은 어디서나 진보의 어젠다다. 북한 인권에 대해선 한마디도 못 한다. 환경을 논하는 시민단체들이 박근혜 대통령 때 태도와 문 대통령 때 태도가 다르다. 진보 어젠다가 진영의 어젠다로 전락하였다. 진보를 자처하던 시민단체들도 사실은 다 특정 정파의 하부조직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 페미니즘도 진보적 어젠다 중 하나인데 진보를 자처하던 서울시장·부산시장이 성추행과 관련됐다. 정치적으로 우리에겐 낡은 좌파와 낡은 우파만 있다. 좌파도 우파도 사실은 자신만의 어젠다로 나뉘지 않고 진영적 권력 놀이의 하부 개념이 된 지 오래다.”

그는 일련의 과거사 논쟁에도 참전했다. ‘우리는 왜 과거에 갇히나’(2019년 7월), ‘친일과 대한민국’(2020년 9월), 그리고 최근 ‘나는 5·18을 왜곡한다’는 시를 통해 5·18역사왜곡처벌법을 강하게 비판한 게 그 예다. 하나같이 예민한 주제들이다. 호남 출신인 그에게 5·18은 더군다나였다. “내가 미쳤나 보다”라며 압박감을 드러내면서도 그는 과거에 매몰된 한국 사회를 질타했다.

과거가 정치적 무기가 되고 있다. 우린 왜 과거에 갇혀 있나.
“우리 사회는 질문은 거의 없고 대답이 팽배하다. 대답에서는 이미 있는 지식과 이론의 원래 모습 그대로 뱉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원래 모습이 시제론 과거다. 결국, 대답은 과거를 따지는 일이 된다. 그래서 대답에 익숙하도록 훈련된 인재들이 채우는 사회의 거의 모든 문제가 과거 논쟁으로 바뀐다. 과거를 한 점 오점 없이 해결해야 진실한 삶을 사는 느낌이 들도록 훈련된 것이다. 이런 풍토에서 과거 해결보다는 미래부터 열자고 하면 사이비로 치부된다. 하지만 과거를 살면 패배하고 미래를 살면 승리한다. 과거 문제는 미래의 완성도로만 해결된다. 미래는 안중 없이 과거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계속 과거에 갇혀 있다. 적폐청산하면서 적폐가 되어가는 것이다.”
산업화가 정부 수립과 건국을 넘어서고 민주화가 산업화를 넘어선 걸 가리키나.
“그렇다. 건국 세력이 산업화 세력에 의해 도태되고 산업화 세력이 민주화 세력에 의해 도태됐다. 민주화 세력이 민주화 다음 세력에 의해 도태되어야 하는데 민주화 세력이 도태되지 않고, 다시 말해서 변화하지 않고 민주화 시대의 성공 기억으로만 사회를 꽉 붙들고 있으며 스스로 ‘완장’으로 전락했다.” 
여권이든 야권이든 미래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다른 사람이 한 생각의 결과를 받아들여 살며 이 정도에 도달했다. 중진국 상위레벨이다. 이제는 생각하는 삶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에게 이 이상은 없다. 그런데 여전히 익숙한 방식과 틀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일만 하고 있다. 여야가 마찬가지다. 우리가 정치를 얘기할 때 항상 정치인이나 대통령의 책임만 물으려 한다. 하지만 책임은 그들을 만든 유권자들에게도 있다. 나에게도 있다. 국민이 허용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생각 없는 국민이 생각 없는 정치의 토양이다. 생각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산다.”

그는 이전 글과 말에서 민주화 다음인 ‘선도 국가’로 나아갈 수 있을지에 회의했다. 이번엔 희망을 말했다. “이 상황이 국민에게 많은 걸 계몽시켰다고 본다. 민주화 세력의 한계도 분명히 봤다. 그런 것이 우리를 다음 단계로 발전시킬 수 있는 동력이 되지 않겠나.”

최진석 교수가 던져온 질문들
“1년 반 보내고 난 지금, 촛불은 이제 혁명이 아니다. 이제는 말과 진실이 뒤틀려가는 것을 똑바로 보는 것이 오히려 혁명의 한 행위다.” (2018년 12월 ‘촛불과 혁명’)

“대한민국의 슬픔은 어느 진영도 ‘미래’를 말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2019년 7월 ‘우리는 왜 과거에 갇히나’)

“모순을 품은 채 나라를 세워야 했던 슬픈 백성들끼리 서로 너무 비난하지 말자. (중략) 그 시절 당시 모순의 냄새도 맡아본 적 없는 75년 후의 후손들은 너무 가혹하지 말자.” (2020년 9월 ‘친일과 대한민국’)

“나는 5·18을 지키러 5·18을 폄훼한다.” (2020년 12월 ‘5·18을 왜곡한다’ 시)

고정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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