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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50만~80만번 펜질, 세월의 흔적까지 담아낸 펜화의 대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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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김영택

김영택

‘0.05㎜ 펜의 구도자’ ‘한국 펜화계의 대부’로 불린 김영택(사진) 화백이 13일 오후 지병으로 별세했다. 76세.

김영택 펜화가 #세계적 그래픽 디자이너 오른 뒤 #나이 오십에 0.03~0.05㎜ 펜화 시작 #전국 돌며 문화재 정밀 고증·재현 #투병 중 준비한 전시회 20일 개막

김 화백은 서양의 필기구인 철펜으로 우리 전통 건축물을 복원하는 데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의 손끝에서 펜화는 당당한 예술 장르로 꽃 피었다. 화업 30년을 결산하는 개인전 개막을 일주일 앞두고 눈을 감아 안타까움을 더한다.

펜화를 예술장르로 꽃 피운 김영택 화백의 주요 작품들. 사진은 숭례문. 화업 30년을 맞아 준비하던 ‘김영택 펜화전’은 예정대로 오는 20일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개막한다. 인천시는 연수구 종합문화단지에 ‘김영택 펜화미술관’을 조성한다. [중앙포토]

펜화를 예술장르로 꽃 피운 김영택 화백의 주요 작품들. 사진은 숭례문. 화업 30년을 맞아 준비하던 ‘김영택 펜화전’은 예정대로 오는 20일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개막한다. 인천시는 연수구 종합문화단지에 ‘김영택 펜화미술관’을 조성한다. [중앙포토]

김 화백은 1945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뛰어나 중학생 때 장난삼아 그린 지폐 그림을 보고 주위 사람들이 진짜로 착각하기도 했다.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숭실대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쳤다. 산업디자이너로 활발한 활동할 때는 삼성 카메라 SF250 등을 디자인했다. 국제상표센터가 세계 정상급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주는 ‘디자인 앰배서더’ 칭호를 받았다.

94년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 건축물을 세밀하게 묘사한 펜화를 접한 뒤 펜화가로 전업을 결심했다. 그때 나이 오십이었다. 펜화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사포로 간 0.03~0.05㎜ 굵기의 펜촉으로 50만~80만 번을 그어야 작품 하나가 나온다. 작업 과정이 고단해 자기 절제와 집념이 없이는 버티지 못한다.

펜화를 예술장르로 꽃 피운 김영택 화백의 주요 작품들. 사진은 경주 황룡사. 화업 30년을 맞아 준비하던 ‘김영택 펜화전’은 예정대로 오는 20일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개막한다. 인천시는 연수구 종합문화단지에 ‘김영택 펜화미술관’을 조성한다. [중앙포토]

펜화를 예술장르로 꽃 피운 김영택 화백의 주요 작품들. 사진은 경주 황룡사. 화업 30년을 맞아 준비하던 ‘김영택 펜화전’은 예정대로 오는 20일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개막한다. 인천시는 연수구 종합문화단지에 ‘김영택 펜화미술관’을 조성한다. [중앙포토]

김 화백은 우리 문화재의 원형 되살리기에 천착했다. 현재 모습만이 아니라 사료를 뒤져가며 유실되거나 손실된 부분까지 온전하게 되살렸다. 화재로 소실됐던 숭례문의 1910년대 전경을 비롯해 광화문, 금강산 신계사, 양산 통도사, 해인사 일주문, 경주 황룡사 9층 목탑 등 3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일본 나라(奈良)의 호류사(法隆寺),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 터키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 같은 세계문화유산도 작품으로 남겼다. 문화재청은 광화문 네거리에 있는 사적 171호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전’을 김 화백의 펜화 작품을 바탕으로 복원할 예정이다.

2001~2012년 본지에 ‘펜화기행’을 비롯해 다섯 가지 제목으로 꼬박 10년을 연재했다. 어깨 통증으로 중간에 1년간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는 엄격했지만 후학들에게는 너그러워 누구에게나 아낌없이 자신의 노하우를 전했다. 한국펜화가협회 회장을 맡아 펜화의 저변을 넓혀왔다.

펜화를 예술장르로 꽃 피운 김영택 화백의 주요 작품들. 사진은 로마 콜로세움. 화업 30년을 맞아 준비하던 ‘김영택 펜화전’은 예정대로 오는 20일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개막한다. 인천시는 연수구 종합문화단지에 ‘김영택 펜화미술관’을 조성한다. [중앙포토]

펜화를 예술장르로 꽃 피운 김영택 화백의 주요 작품들. 사진은 로마 콜로세움. 화업 30년을 맞아 준비하던 ‘김영택 펜화전’은 예정대로 오는 20일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개막한다. 인천시는 연수구 종합문화단지에 ‘김영택 펜화미술관’을 조성한다. [중앙포토]

자신만의 화풍인 ‘김영택 화법’을 창안했다. 맨눈으로 피사체를 직접 보며 느끼는 비례와 임팩트를 고려해 묘사하는 방법이다. 그는 “사람의 눈은 부분을 보면서 멀리 있는 것도 당겨서 본다”며 “정교하면서도 그림의 미학을 살려 현장감을 표현하는 데 주력한다”고 말했다.

김 화백은 2019년 5월 개인전을 열며 본지와 인터뷰하는 자리에서 암 투병 사실을 밝혔다. 그는 “3개월 전에 대장암 말기(4기) 진단을 받았다”며 “그간 펜화를 그리며 경험한 무아지경의 순간들, 펜화와 함께 한 삶 자체가 내겐 축복이었기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항암 치료를 하며 준비해온 고인의 전시회 ‘김영택 펜화전’은 예정대로 오는 20일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개막해 다음 달 15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가나문화재단(이사장 김형국)이 주관하고 문화유산국민신탁(이사장 김종규)이 후원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청계천 수표교 복원화’ ‘종묘정전’ ‘프랑스 노르망디 몽생미셸’ 등 고인의 펜화 원화 40여 점이 공개된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종란씨와 아들 김한열(하나사인몰 대표), 김준범(필코리아)씨가 있다. 빈소는 인천 청기와장례식장, 발인은 15일 오전.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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