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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상대에게 말 쏟아내는 것은 결국 칼 휘두르는 것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77)

자기가 그런 말을 한 게 그 사람 탓이라고 변명하거나 회피한다. 그러나 사실은 자기 내면의 그림자가 강해 무의식중에 그에게로 흘러넘치는 것이다. [사진 unsplash]

자기가 그런 말을 한 게 그 사람 탓이라고 변명하거나 회피한다. 그러나 사실은 자기 내면의 그림자가 강해 무의식중에 그에게로 흘러넘치는 것이다. [사진 unsplash]


그의 질문은 날개

때에는 도약하는 날개가 있을까
여린 가슴을 감싼 늑골 같이 뿌리내린
나무도 다시 내려앉고픈 땅이 있어서
씨 뿌릴 때가 되면 날개를 편다

스스로 다락방에 숨겨둔 날개를
찾지 못해 그는 날 수 없었다
안개를 벽돌처럼 쌓고서
미래라는 주소불명의 우편을
오늘에 부쳐버렸다

갈지자로 오르는 계단참에는
뭇 날개의 흔적들이 조각난 채 흩어져 있다
모든 담장의 경계 위
만남과 헤어짐 사이에

하늘의 조각보로 기운 난간에 서서
옷을 벗은 그림자에 자신을 날려 보낸다

질문의 시를 잉태한 침묵만이
날개처럼 그의 어깨에서 펄럭거린다

해설

2020년을 돌아보면 코로나19로 모든 게 침체한 가운데 사회적으로는 말을 함부로 내뱉어 구설에 오른 정치인이 많았다. 또 결정을 내려야 할 알맞은 때와 시기를 놓쳐 변화의 시간을 허송한 탓에 수많은 국민이 이중의 혼란을 겪었다.

환자와 개인 상담을 하다 보면 병의 원인이 심리적 타격에서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사회적 혼란에서 비롯한 정치·경제적 원인보다 부부 문제, 자녀 교육문제,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이 더 직접적이다. 그중 대부분이 상대방 언행에 의한 상처가 큰 원인을 차지하는 것 같다. 특히 남녀 사이에 서로 다름을 인식하지 못해 오는 괴리감이 크게 작용한다. 부부 다툼만이 아니다. 아버지가 딸의 심리를 이해치 못하거나 엄마가 아들의 무뚝뚝함과 반항에 당황하고 상처를 자주 받는다.

가까운 사람과 말을 할 땐 특히 먼저 ‘이 말을 꼭 해야 하나’하고 자문자답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인간은 자기의 어두운 심리적 그림자에 영향을 받아 타인에게 어떤 언행을 투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고는 그 책임을 타인에게 전가한다. 자기가 그런 말을 한 게 그 사람 탓이라고 변명하거나 회피한다. 그러나 사실은 자기 내면의 그림자가 강해 무의식중에 그에게로 흘러넘치는 것이다.

어쩌면 사회적 혼란에서 비롯한 정치·경제적 원인보다 부부 문제, 자녀 교육문제,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이 더 직접적이다. [사진 unsplash]

어쩌면 사회적 혼란에서 비롯한 정치·경제적 원인보다 부부 문제, 자녀 교육문제, 직장에서 상사나 동료 사이에 벌어지는 갈등이 더 직접적이다. [사진 unsplash]

인간의 행동과 심리 패턴을 알아채는 데 신화가 큰 도움을 준다. 특히 남녀 간의 심리적 차이를 배우고 인식하는 데는 그만이다. 신화는 개인이 창조하고 기록한 게 아니다. 집단적 경험과 상상력의 산물이다.

프시케와 에로스의 신화에서 남녀 간의 다름을 뚜렷이 느낄 수 있다. 옛날 한 왕국이 있었다. 세 공주가 태어났는데 셋째 공주 프시케는 아름답고 매혹적이었다. 행동거지도 우아하여 마치 아프로디테 여신이 강림한 것 같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여신 아프로디테는 다산의 상징인 모성의 바다에서 거품으로 탄생했다. 아프로디테는 모든 존재가 다산을 이룰 때까지 쉬지 않고 염문을 뿌리고 다닌다. 질투와 공허 또한 환락의 욕망과 더불어 그녀의 특징이다. 자신의 특성을 몰라주고 자기에게서 벗어나려는 남성에게 분노를 터트리는 여신이다. 그러나 프시케는 인간으로 새벽 하늘에서 떨어지는 이슬이 땅에 닿는 순간 탄생했다. 모성이 바다에서 땅으로 바뀌는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대상에서 예측 가능한 땅으로. 프시케는 순수하고 수려하며 숭고하고 천상적이다. 뭇 남성의 숭배 대상이 되었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구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프시케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해 외로웠다.

두 언니는 결혼했지만 그러지 못하는 막내딸을 위해 부모는 아프로디테 신전에서 신탁을 구했다. 그러자 질투가 난 여신이 잔인한 신탁을 내렸다. 프시케를 산꼭대기에 묶어 놓으면 죽음이 다가와 목숨을 앗아갈 거라는 내용이었다. 부모는 딸의 결혼식을 준비했다. 그러나 그 행렬은 장례식이었다. 사실 모든 신부는 결혼식 날 죽고 새로 태어나는 거다.

아프로디테는 아들 에로스 더러 사랑의 화살을 프시케에게 쏘아 죽음과 사랑에 빠져 다시는 자신에게 대항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그녀는 끊임없이 퇴행하려는 성질이 있었다. 이는 고부 갈등의 근원이다. 에로스는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한다. 그러나 에로스는 프시케를 보는 순간 아름다움에 빠져 실수를 저질렀다. 자신의 화살에 손가락을 베어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프시케를 죽음에서 건져내 부인으로 삼기로 했다. 친구 서풍에 부탁해 산꼭대기에서 궁전으로 가볍게 안아 날랐다.

최악의 상황을 예상했던 프시케는 최상의 아름다움과 극진한 대접에 빠져 에로스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죽음의 정상(클라이맥스) 체험은 나이와 상관없이 찾아온다. 즉 심리적 처녀성이 재탄생하는 체험이다.

에로스는 프시케를 보는 순간 아름다움에 빠져 실수를 저질렀다. 자신의 화살에 손가락을 베어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사진 picryl]

에로스는 프시케를 보는 순간 아름다움에 빠져 실수를 저질렀다. 자신의 화살에 손가락을 베어 그녀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사진 picryl]

남편 에로스는 매일 밤 그녀와 함께 보낸다. 그러나 금기 사항이 있다. 남편을 보지 않겠다는 것과 에로스가 어디를 가든지 묻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낸다. 어떤 이유에서든 여성성인 프시케는 짧게나마 이런 맹목적인 시기를 거친다. 여전히 성숙하지 못한 에로스들은 이런 낙원을 꿈꾼다. 그러나 이런 시기는 짧을수록 좋다.

낙원은 반드시 사라진다. 그곳에는 뱀이 똬리를 트고 있다. 프시케의 낙원에서 깨달음의 길로 이끄는 뱀의 역할을 두 언니가 맡았다. 두 언니는 프시케에게 에로스에 대해 궁금증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남편이 본래 흉측한 구렁이이며 아기가 태어나면 프시케와 아기를 잡아먹을 거라고 꼬드겼다. 등불과 날카로운 칼을 준비했다가 구렁이의 머리를 잘라버리라고 충고했다.

순진한 프시케는 그 말에 따랐다. 등불을 켜고 남편의 얼굴을 보자 남편은 멋진 신이었다. 남편을 믿지 못하고 속였다는 죄책감에 그녀는 자살하려고 하였으나 불똥과 칼 모서리에 찔린 에로스가 놀라 깨어났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사랑이 머물 수 없다오”라며 날아갔다. 사랑을 믿지 못하는 갈지자 행보는 인간이 흔히 저지르는 어리석음이다.

두 언니는 여성의 내부에 숨어있는 불평과 불만의 그림자다. 조만간 여성이 자기 안의 남성성인 아니무스를 발견하고 궁금해할 때가 오는 데 이때 등불과 칼을 지혜롭게 사용해야 한다. 여기서 등불은 사용하되 칼은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등불은 남성의 가치를 밝혀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칼은 타인에게 함부로 휘둘러서는 안 된다. 칼은 개인적인 용도로 써야 한다. 자신의 마음을 식별하는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미성숙한 남성을 밝은 길로 인도하는 데는 등불이 또한 필요하다. 여성이 남성에게 쏟아붓는 말본새가 결국은 칼을 휘두르는 것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육체적 사랑을 뜻하는 에로스는 등에 날개가 달려 있다. 프시케라는 정신적 사랑을 찾아 좌우 균형을 이룰 때 성숙한 사랑으로 거듭 태어날 것이다.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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