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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토 300명” 앙금 컸다···김종인, 연일 안철수 때리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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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왼쪽)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중앙포토]

김종인(왼쪽)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중앙포토]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여의도에서 손꼽히는 전략가다. 여야를 넘나들며 비상대책위에 참여해 선거 승리를 이끌었다. 민주정의당에서 더불어민주당에 이르기까지 비례대표(전국구)로만 국회의원을 5번 했다. 일각에선 그를 삼국지의 제갈량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이 최근엔 유독 당내 여론이나 지지층의 바람과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국민의힘이나 야권 지지층에선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승리를 위해 여론조사 선두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야권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요구가 강하다. 당내에서도 공개적으로 “단일화는 국민의 명령이다.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정진석 공천관리위원장)란 주장이 나온다.

안 대표도 13일 기자들에게 “서울시장 선거에서 승리해서 정권교체의 교두보를 확보해 달라는 게 야권 지지자들의 지상 명령”이라며 “이러한 요구를 무시·거부한다면 야권 지지자들이 등을 돌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서로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나중에, 최후에 단일 후보가 선출되더라도 모든 지지자들의 지지를 받을 수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 안철수 후보 간의) 3자 구도에서도 승리를 확신한다”고 강조한다. 더군다나 지난 6일 안 대표의 요청으로 양자 회동을 한 뒤에는 “앞으로 만날 일 없다”며 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 사석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는 정치권 인사는 “대화의 절반 이상을 안 대표 비판에 할애하더라”고 전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왜 그럴까. 국민의힘 안팎에선 크게 다섯 가지 이유를 꼽는다.

①지지율의 가변성 

김 위원장은 지난 11일 당 비상대책위 회의에서 “지금 여론조사 지지율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가변적이고 인지도 조사에 가깝다. 최종 투표 결과와는 다를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안 대표를 단일화의 상수(常數)로 놓으며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주장하는 중진 의원들을 겨냥해 “콩가루 집안이 된다”고 격노하면서 내놓은 설명이었다.

이튿날인 지난 12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그는 안 대표의 높은 지지율에 대해 “민주당 (지지하는) 사람들도 일부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국민의힘 비대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안 대표의 현재 지지율을 인지도와 민주당 지지자의 역선택이 합해진 숫자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1995년 서울시장 선거 때 여론조사 선두였던 무소속 박찬종 후보가 결국 3자 구도의 본선에서는 민주당 조순 후보에게 졌던 사례를 김 위원장은 염두에 두고 있다.

②뿌리깊은 불신

김 위원장은 안 대표를 ‘믿지 못할 사람’으로 치부한다고 한다. 안 대표가 기존 정치권에 대한 국민의 염증을 등에 업고 한창 몸값을 높이던 2011년 김 위원장은 안 대표의 멘토(조언자)로 통했다. 김 위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김 위원장은 안 대표가 이듬해인 2012년 4월 총선에 출마하는 게 옳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안 대표는 2011년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행을 원했고, 그러다 박원순 당시 후보에 ‘양보’를 했다. 김 위원장은 이를 양보가 아닌 ‘포기’라고 봤고,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멀어졌다고 한다. 특히 당시 안 대표가 “멘토가 300명”이라는 발언을 했을 때 김 위원장과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등 조언자들이 느낀 섭섭함은 매우 컸다고 한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김 위원장은 안 대표가 국민의힘과의 단일화 경쟁에서 지더라도 어떻게든 독자 출마를 하려고 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③이해관계의 상충

김 위원장과 안 대표의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한다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안 대표가 어떤 방식으로 승리를 하든 그건 김 위원장의 공로가 아닌 걸로 된다”며 “김 위원장으로선 다른 후보가 기호 2번을 달고 나가 승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평소 ‘훈육(訓育) 정치’ 스타일을 보여왔다는 점도 주목할 부분이다. 지난해 9월 당내에서 서울·부산시장 선거에 초선 차출론이 나왔던 것도 신선한 이미지의 전문가를 중시하는 김 위원장의 선호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새로운 인물을 키워 당선시켜야 김 위원장의 성과가 되기도 한다.

이런 스타일은 2016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였을 때 당내 반발을 불렀다. 당시 총선 비례대표 후보자 공천을 놓고 잡음이 일자 조국 서울대 교수는 “당원과 지지자는 훈육이나 훈도(訓導)의 대상이 아니다”고 반발했다.

④성동격서(聲東擊西)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윤석열 검찰총장과 관련해 “내가 보기에 (윤 총장은) 별의 순간이 지금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바꿔 말하면 안 대표는 ‘별의 순간’이 지나갔다는 주장이다. 말 그대로 지금은 ‘최고의 스타’가 아니라는 평가다.

김 위원장이 안 대표를 끊임없이 때리는 이유를 윤 총장의 급부상에서 찾는 시선도 있다. 4·7 보궐선거 전후로 새 판이 짜여지고 7월에 검찰총장 임기가 끝나면 윤 총장은 자신의 진로를 선택하게 된다. 그 때 국민의힘을 행선지로 선택할 수 있도록 일종의 정지작업을 하고 있다는 관점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임현동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 [임현동 기자]

김 위원장은 지난 11일 비대위 회의에서 “국민들은 윤 총장을 대선 주자급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고, 최근 사석에선 “다음 대선에선 돌연변이가 당선될 것”이란 얘기도 했다고 한다. 그가 말한 ‘돌연변이’란 표현을 두고 “여권에서 발탁된 윤 총장이 야권 후보로 당선될 가능성, 또는 아예 새로운 인물을 언급했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윤 총장 부친인 윤기중 연세대 명예교수와 김 위원장의 친분도 회자되고 있다. “안 대표를 향해 소리치고 있지만 역으로 윤 총장을 띄우려는 성동격서 전략”이란 얘기가 그래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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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극적효과

정치권에선 국민의힘과 안 대표의 야권 단일화가 결국에는 성사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국민의힘 재선 의원은 “선장은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협상 전 유리한 국면을 만들기 위해 블러핑(허풍 전략)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당내 전략통인 김재원 전 의원도 지난 12일 페이스북에 “김 위원장은 3자 대결 구도에서도 승리할 것이라 장담한다. 전략가는 때때로 가능하지 않은 것을 가능한 것으로 얘기해야 한다”고 썼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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