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출금 "불가피" 해명에…"죽여도 시원찮을 인간도 인권"

중앙일보

입력 2021.01.13 12:54

업데이트 2021.01.13 14:08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에 대해 “불가피했다”는 법무부의 해명을 두고 법조계에서는 “형사절차의 정의를 필요에 따라 어기는 건 비문명국에서나 하는 짓”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법무부, “급박하고도 불가피한 사정”해명
부장검사 “내 불법은 관행, 니 불법은 범죄?”
부장판사 “미친 짓…엄중한 수사 이뤄져야”

지난 2019년 3월 태국으로 떠나려다 출국이 제지된 김학의 전 차관이 인천공항을 빠져나와 귀가하고 있다. [JTBC 캡처]

지난 2019년 3월 태국으로 떠나려다 출국이 제지된 김학의 전 차관이 인천공항을 빠져나와 귀가하고 있다. [JTBC 캡처]

법무부는 지난 12일 입장문을 통해 “당시는 중대한 혐의를 받고 있던 전직 고위 공무원이 심야에 국외 도피를 목전에 둔 급박하고도 불가피한 사정을 고려할 필요가 있었다”고 밝혔다.

수사권이 없음에도 가짜 내사번호를 써서 김 전 차관을 출국 금지한 것으로 드러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 소속 이규원 검사에 대해서도 법무부는 “이규원 검사는 당시 ‘서울동부지검 검사 직무대리’ 발령을 받은 ‘수사기관’”이라며 “내사 및 내사 번호 부여, 긴급출국금지 요청 권한이 있다”고 설명했다.

현직 부장검사 “관행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그러자 검찰 내에서 법무부 주장에 대한 반박이 나왔다. 정유미 부천지청 인권감독관(부장검사)은 12일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검사들은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수사활동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게 판단한다”며 “그 인권이 설령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인간들의 인권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라고 썼다.

그는 ‘임시번호 뒤 정식번호는 수사 관행’이라는 주장에 대해 “도대체 어떤 인간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씨부리는 것인지 궁금해 미치겠다”며 “적어도 내가 검찰에 몸담고 있던 20년간에는 그런 관행 같은 건 있지도 않고, 그런 짓을 했다가 적발되면 검사 생명 끝장난다”고 했다.

지난 2019년 11월 22일 뇌물 및 성접대 혐의와 관련한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마중 나온 한 여성의 보호를 받으며 귀가하고 있다. 뉴스1

지난 2019년 11월 22일 뇌물 및 성접대 혐의와 관련한 1심 선고공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마중 나온 한 여성의 보호를 받으며 귀가하고 있다. 뉴스1

정 부장검사는 2015년 당시 부산지검에서 근무하던 한 검사의 ‘고소장 위조 사건’을 언급하기도 했다. 장 부장검사는 “고소장 표지 한장을 분실했는데 마침 반복된 고소 건이라 같은 내용의 다른 고소장 표지를 복사해 붙인 게 들통나 사직했다”고 했다. 이어 “근데 공문서를 조작해서 출국금지를 해놓고 관행이라 우긴다”며 “내 불법은 관행이고 니 불법은 범죄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아~나, 관행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다”고 지적했다.

한 검찰 간부는 중앙일보에 “악인이라고해서 형사절차적 정의를 마음대로 어겨도 된다고 하면 비문명국”이라며 “절차적 정의는 선택적으로 허용되나. 형사절차의 정의를 필요에 따라서는 어기라고 부추기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적법'이란 법무부 해명도 출입국법령을 정면으로 위배"

다른 검찰 관계자는 "이규원 검사의 원소속은 대전지검으로 수사권이 없는 과거사진상조사단 파견신분이었고 진상조사단 사무실이 위치한 서울동부지검에 '과거사진상조사 업무에 한정'해 검사 직무대리로 발령한 것이었다"며 "검사가 수사기관이어서 마음대로 내사사건과 사건번호를 생성해 출금 요청을 할 수 있다는 법무부 해명은 출입국관리법령에 정면 위배되는 엉터리 해명"이라고도 지적했다.

실제 출입국관리법 시행령(대통령령)상 긴급 출금 절차는 검사(수사기관)가 아니라 "'수사기관의 장'은 긴급출국금지 요청 사유와 출국금지 예정기간 등을 적은 긴급출국금지 요청서와 함께 ① (사형·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형 해당하는 형사 피의자라는) 긴급 출금 대상자에 해당한다는 사실과 ② 긴급한 필요 등 긴급 출금이 필요한 사유를 적은 서류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검사는 3월 22일 자정을 넘겨 3월 23일 오전 0시 8분 대검 진상조사단(서울동부지검 직무대리) 명의로 인천공항에 접수한 긴급 출금 요청서는 출금 요청 권한이 있는 서울동부지검장의 직인 등 결재도 없고, 김 전 차관이 긴급 출금 대상자에 해당하는지 소명 자료도 없었고, 긴급 출금 사유를 적은 서류도 없었다.

출입국심사과 직원이 같은 해 5월 검찰 조사에서 "이 검사의 긴급 출금 요청서는 기관 명의는 진상조사단, 2013년 서울중앙지검 사건번호가 적혀 있는 데다가 수사기관장인 관인도 빠져 있고 양식도 봐왔던 법무부의 통상 양식과도 달랐다"고 진술할 정도였다.

현직 판사도 “미친 짓…사법 시스템에 대한 공격”

현직 부장판사도 비판에 가세했다. 김태규 부산지법 부장판사는 1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법절차와 야만, 그리고 선택’이란 글을 썼다. 그는 “적법절차가 지켜지지 않으면 법치주의란 있을 수 없다”며 “그것은 마치 종이배로 대양(大洋)을 건너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또 “아무리 실체적 진실이 중요해도, 아무리 형사처벌의 필요성이 절박해도 적법절차 원칙을 무시하고 사법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검사가 조작된 출금서류로 출국을 막았다’는 기사를 보는 순간 머릿속에 명멸(明滅)하는 한 단어는 ‘미친 짓’이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불법 출금에 대해) 공정하게 구성된 수사 주체에 의한 엄중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여전히 진실이 아니기를 바란다. 이것은 몇몇 검사의 일탈이 아니고 대한민국 사법시스템에 대한 본질적 공격”이라고 강조했다.

김 부장판사는 “여기서 한발만 더 나가면 기한 지난, 대상이 바뀐, 서명이 없는 그런 영장으로 체포되고, 구속하고, 압수하게 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나쁜 놈 잡는데 ‘그깟 서류나 영장이 뭔 대수냐, 고문이라도 못할까’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것은 그냥 야만 속에서 살겠다는 자백”이라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 권경애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불가피해도 권력 행사에 불법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법치주의 원칙”이라고 썼다. 권 변호사는 “천하의 연쇄살인 혐의자도 영장주의가 적용되며 위법수집증거로는 처벌할 수 없는 게 법치주의”라며 법무부의 ‘불가피한 사정’ 주장을 에둘러 비판했다.
박사라ㆍ정유진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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