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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위기서 코로나가 살렸다···농촌학교, 학생 몰려 추첨까지

중앙일보

입력

작은학교, 등교·거리두기 모두 유리

 강원 홍천군에 있는 작은 학교인 오안초교 6학년 학생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완치 후 학교로 돌아오는 동생들을 위해 환영 포스터를 만드는 모습. [사진 오안초]

강원 홍천군에 있는 작은 학교인 오안초교 6학년 학생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완치 후 학교로 돌아오는 동생들을 위해 환영 포스터를 만드는 모습. [사진 오안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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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양구군에 사는 윤혜진(36·여)씨는 아들(7)을 읍내에서 10여㎞ 떨어진 양구읍 한전리 한전초교에 입학시키기로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선 농촌의 이른바 '작은학교'가 읍내학교보다 강점이 많다고 판단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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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촌 작은학교는 학생수가 많은 읍내학교보다 등교일수는 많지만 학생수가 적어 거리두기는 훨씬 유리하다는 게 윤씨가 내린 결론이다. 실제 전교생이 550명인 양구초교는 지난해 학년별 등교일수가 102일~112일인 반면, 전교생 35명인 한전초교는 전교생이 137일을 등교했다.

 강원도교육청에 따르면 초등학교는 의무적으로 주 5일 수업을 하고, 연간 190일 이상 수업을 해야 한다. 하지만 코로나19 여파로 대부분의 학교가 등교가 아닌 원격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 수업 차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반면 작은학교는 등교와 원격 수업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어 도시나 읍내 학교들에 비해 수업여건이 우수하다.

 윤씨는 “코로나 상황이 길어지면서 아이가 학교에 입학해서도 며칠이나 등교해 선생님을 만나고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며 “학생이 적어 거리두기가 가능하고, 등교도 더 많이 할 수 있는 작은 학교에 보내기로 마음을 굳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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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양구군 양구읍 한전리에 있는 작은 학교인 한전초교 아이들이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회의를 하는 모습. [사진 한전초]

강원 양구군 양구읍 한전리에 있는 작은 학교인 한전초교 아이들이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 회의를 하는 모습. [사진 한전초]

강원 양구군 양구읍 한전리에 있는 작은 학교인 한전초교 아이들이 지난해 프로젝트를 통해 만든 그림책 4권. [사진 한전초]

강원 양구군 양구읍 한전리에 있는 작은 학교인 한전초교 아이들이 지난해 프로젝트를 통해 만든 그림책 4권. [사진 한전초]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폐교 위기에 놓였던 농촌 학교들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수업차질과 학교 내 코로나19 감염 등을 우려한 학부모들이 학생 수가 적은 작은학교들로 눈길을 돌리고 있어서다. 농촌 학교들은 수업일수가 많고 감염 위험이 낮다는 점 외에도 천혜의 자연여건을 토대로한 이른바 ‘힐링교육’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한전초도 지난해 도시 아이들이 원격수업으로는 할 수 없었던 다양한 프로젝트가 가능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기후난민을 위한 티셔츠를 제작해 기부하는가 하면 그림책도 출판했다. 학생들은 지난해 ‘그림책 속으로 풍덩’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해『토끼와 거북이 다음 이야기』, 『형의 꿈』, 『자신감 모험』, 『나의 구름이 영어비법』 등 총 4권의 책을 제작했다. 이후 출판기념회를 열고 1440권을 양구교육지원청과 양구군청, 보건소 등에 전시·배포했다.

 정준영 한전초 교사는 “코로나 상황에도 작은 학교에서는 다양한 활동이 가능하다 보니 신입생이 지난해 6명에서 올해는 11명으로 늘었다”며 “팬데믹 상황에서는 농촌의 작은학교가 미래형 교육의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원주기업도시 인근인 호저면 산현리 산현초교는 학기 내내 학생들의 전학이 이어졌다. 기업도시에서 8㎞가량 떨어진 학교는 지난해 38명이던 전교생이 올해 49명까지 늘어났다. 코로나19 확산 후 11명의 학생이 인근 도시 등에서 전학을 온데 이어 올해 새로 입학하는 학생도 6명에 이른다.

 이 학교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전교생이 10여명 남짓이어서 폐교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산현초는 올해 학생 수가 늘어나자 학급을 기존 4개에서 6개로 늘리고 학교 건물도 연말까지 새로 짓기로 했다.

학생 늘자 학급 늘리고 건물도 신축 

강원 원주시 호저면 산현리에 있는 작은 학교인 산현초교 학생들 모습. 산현초는 학생들에게 텃밭을 분양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사진 산현초 ]

강원 원주시 호저면 산현리에 있는 작은 학교인 산현초교 학생들 모습. 산현초는 학생들에게 텃밭을 분양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사진 산현초 ]

강원 원주시 호저면 산현리에 있는 작은 학교인 산현초교의 텃밭 모습. 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텃밭을 분양해주고 있다. [사진 산현초]

강원 원주시 호저면 산현리에 있는 작은 학교인 산현초교의 텃밭 모습. 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텃밭을 분양해주고 있다. [사진 산현초]

 백영희 산현초 교감은 “학교 내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가 자연스레 이루어지고 학생 한 명 한 명의 개별화 교육이 가능하니 학부모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강원도 춘천시 서면에 있는 서상초교에도 코로나19 후 전학을 타진하기 위한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하지만 학교 측은 당시 전교생이 60명인 데다 돌봄교실 과밀 문제 등으로 인해 일체 전학생을 받지 않았다. 올해 서상초교는 6학년의 졸업으로 신입생 12명을 뽑는 과정에서 신청자들이 몰려 추첨을 통해 선발해야 했다.

 전교생이 50명인 강원도 홍천군 오안초교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이 학교 6학년 학생들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한 달가량 등교하지 못한 3명의 후배들을 위해 ‘오랜만에 학교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적은 환영 포스터를 걸어 화제가 됐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따뜻한 아이들의 마음을 어른들이 본받아야 한다”는 등의 칭찬 댓글이 이어졌다.

코로나 완치 동생들 환영한 아이들 

강원 홍천군에 있는 작은 학교인 오안초교 6학년 학생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완치 후 학교로 돌아오는 동생들을 위해 환영 포스터를 현관에 붙인 모습. [사진 오안초]

강원 홍천군에 있는 작은 학교인 오안초교 6학년 학생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완치 후 학교로 돌아오는 동생들을 위해 환영 포스터를 현관에 붙인 모습. [사진 오안초]

강원 양구군 양구읍 한전리에 있는 작은 학교인 한전초교 아이들이 지난해 프로젝트를 통해 만든 그림책 4권. [사진 한전초]

강원 양구군 양구읍 한전리에 있는 작은 학교인 한전초교 아이들이 지난해 프로젝트를 통해 만든 그림책 4권. [사진 한전초]

 정부 또한 농촌 작은학교를 응원하는 대열에 동참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지난 4일 정례브리핑에서 “코로나19 회복 후 일상으로 복귀하는 분들을 편견 없이 반겨주는 배려가 우리 사회에 더 확산하길 바란다”며 오안초교 사례를 소개했다. 최고봉 오안초 교사는 “작은학교의 특성상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서로를 알기 때문에 모두를 배려할 수 있는 것”이라며 “코로나19 이후 작은학교의 장점이 알려져 전학생은 늘고 기존 학생 유출은 줄어드는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현재 강원도교육청은 ‘작은 학교희망만들기’ 사업으로 특성화 교육과정 지원, 작은 학교 희망버스 임차비 지원, 꽃님이 택시비(통학 택시) 지원 등을 하고 있다. 또 도심지 학교에서 작은학교로의 전입이 가능하도록 도농 간 공동통학구역 등을 확대해 나갈 방침이다. 지난해 4월 현재 강원도 내 60명 이하의 작은학교는 161곳이며, 학급 수는 917개, 학생 수는 5666명이다.

 정은숙 강원도교육청 부대변인은 “코로나 상황에서도 작은학교들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다 보니 학기 중에도 전학 문의가 많았다”며 “농촌 작은학교들이 내실 있는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양구·원주=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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