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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큐어논과 대깨문, 트럼프·文 숭배자는 닮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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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미국 극우세력의 의회 난동 현장에 등장한 태극기. 그 사진을 보고 조국 전 장관이 SNS에 짤막한 글을 올렸다. “태극기 부대원도 참가한 것인가.” 태극기를 든 사내의 정체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글은 한국의 태극기 부대가 워싱턴까지 원정 가서 난동을 부렸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암시를 조작하는 기법이다.

[진중권의 퍼스펙티브] #민주당은 악마요, 트럼프는 구세주로 믿는 미국의 큐어논 #국민의힘은 악마요, 문재인은 구세주로 여기는 대깨문과 유사 #위력으로 시스템 공격하는 광적 지지층에 의존해 정권 이끌어가 #바이든, 법무부 고위직에 “나에 대한 충성말라”며 탈진실에 종언 #현실감 잃은 문재인, “권력기관 개혁은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일”

트럼피즘의 본질은 탈진실

미국의 트럼프주의자와 한국의 태극기 부대 사이에는 실제로 유사성이 있다. 사고와 행동의 극단성이 그것이다. 음모론적 사유에 익숙한 것 역시 두 집단의 공통성이다. 미국의 극우가 지난 대선이 부정선거라고 믿는다면, 한국의 태극기 부대는 지난 4·15 총선에 광범위한 개표조작이 있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이 유사성은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선거 조작설은 어차피 선거 때마다 나오는 얘기다. 선거결과에 불복하고 싶은 심리는 어느 쪽이나 마찬가지. 한쪽에 김어준이 있으면, 다른 쪽엔 민경욱이 있다. 어차피 음모론자들은 어느 사회에나 일정 분량 존재하니, 이게 딱히 새로운 현상이라 할 수 없다.

지난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워싱턴 의사당 건물을 습격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6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지지자들이 워싱턴 의사당 건물을 습격했다. [로이터=연합뉴스]

트럼프 현상의 독특성은 음모론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공식화’(公式化)에 있다. 즉 공인이 공적인 자리에서 음모론을 내세우면, 그저 오락거리로 머물던 그 이야기가 중앙으로 진출해 아예 공적 사실로 대접받는 ‘탈진실’(post-truth)의 상황이 벌어진다. 이 점에서 트럼프 현상을 대표하는 것은 태극기 부대가 아니다.

한국에서 트럼프 현상에 대응하는 것은 민주당 정권이다. 야당에서는 태극기 부대의 개표조작 음모론과 공적으로는 선을 긋는다. 반면 민주당에서는 통치에 각종 ‘음모론’을 두루 활용한다. 그 음모론은 지지자들이 만든 게 아니다. 아예 공당에서 공식적으로 제작해 유포한 것이다. 여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트럼피즘

검찰의 ‘대통령 탄핵’ 음모론을 유포한 것은 전직 법무부 장관. 현직 장관은 이를 근거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하고 검찰총장 징계까지 추진했다. 이 검찰 쿠데타설은 민주당 의원들 사이에서는 공인된 사실로 통용된다. 정경심 교수가 유죄판결을 받자 그들은 새로 “사법 쿠데타”(김두관 의원) 음모론까지 지어냈다.

차기 주자들도 가세했다. 이낙연 대표는 “사법의 정치화” 운운하며 사법 쿠데타론에 힘을 실었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룰라 얘기를 불러낸다. 사회가 온통 정부 전복을 노리는 세력으로 가득 차 있다는 망상. 현실에서 그 대응물을 찾을 수 없으니 한국에 브라질 상황을 오버랩시켜 그 망상에 현실감을 주려는 것이다.

이처럼 트럼프와 문재인 정권은 ‘탈진실’의 전략을 구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다만 미국에선 대통령이 그 일을 하고 여당이 끌려다닌다면, 한국에선 당정청의 강성들이 그 일을 하고 대통령이 끌려다닌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아마도 악역을 해야 할 자리에는 좀처럼 얼굴을 내밀지 않는 대통령의 이미지 관리술과 관계가 있을 게다.

이 모든 음모론은 열성적 지지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미국에 큐어논이 있다면 한국에는 ‘대깨문’이 있다. 큐어논이 민주당은 악마요 트럼프는 구세주로 믿는다면, 대깨문은 국민의힘은 악마요 문재인은 구세주로 생각한다. 이들 광적인 지지층에 의존해 정권을 이끌어 나가는 것도 두 정부가 공유하는 특징이다.

음모론으로 시스템을 공격하라

극단적인 세력은 어느 진영에나 있다. 문제는 그 집단과 공당이 어떤 관계를 맺느냐는 것이다. 가령 국민의힘은 이제는 태극기 부대와 거리를 두려 한다. 반면 민주당은 극렬 지지층을 외려 통치의 도구로 적극 활용한다. 애초에 당의 시스템 자체가 권리당원제를 통해 강성 지지층과 화학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그 결합은 여당 정치인들의 신체에 아예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얼마 전 추미애 법무장관은 국회에 나와 19년 전에 1년간 검사 생활을 한 이의 책을 읽었다. 그 전에 전임 장관도 민정수석 시절 청와대 수보회의에 『일본회의』라는 책을 들고 나타난 적이 있다. 강성 지지층에게 공격해야 할 적이 누구인지 지목해 준 것이다.

극렬 지지층은 제 편의 잘못은 무조건 감싸고, 제 편의 거짓은 무조건 믿어주려 한다. 트럼프가 대선 불복을 선언한 것도 강성 지지층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역으로 큐어논과 프라우드 보이스의 의사당 난동 역시 일국의 대통령이 그 행위의 정당성을 ‘공인’해 줬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큐어논이 워싱턴의 의사당에 난입한 것이나 문 팬덤이 서초동 검찰청사 앞으로 몰려간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현상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권력의 지시 혹은 묵인 아래 다중의 위력으로 국가의 시스템을 공격하기는 마찬가지다. 문 대통령은 팬덤의 패악질을 ‘양념’이라며 공식적으로 승인해 준 바 있다.

실재계를 대체하는 상상계

상황이 고통스러울 때 대중은 이해하기 힘든 ‘원인’ 대신에 눈에 뵈는 ‘범인’을 찾게 된다. 그 범인만 제거하면 모든 문제가 풀릴 거라는 믿음. 트럼프는 그 환상을 위해 당선됐다. 취임 즉시 그는 범인들과 전쟁을 시작했다. 이민자를 막으려고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고, 미국경제를 위협하는 중국과는 무역전쟁에 들어갔다.

지도자가 이성과 상식을 초월할수록 대중은 열광한다. 그들의 눈에는 그 ‘매드 맨’이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내는 초인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좌절한 대중은 대화를 강조하는 낡은 ‘자유주의’를 버리고 지도자의 통찰과 독단에 기초한 ‘결단주의’(Dezisionismus) 정치를 고대한다. 이때 정책은 구호로 대체된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범인은 검찰·언론·법원 등의 ‘적폐세력’과 일본을 편드는 ‘토착왜구’. 이들만 척결하면 사회의 모든 고통이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서민들이 코로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상황에서도 정권은 오직 검찰개혁에 매달리고, 대깨문은 전세에서 월세로 쫓겨나면서도 문프에 대한 지지를 놓지 못하는 것이다.

법률과 절차를 무시할수록 지지층은 열광한다. 그것은 “국민의 명령”이다. 그러라고 뽑아주고 그러라고 의석을 몰아준 것이다. 법무부의 ‘매드 우먼’이 지지자들 눈에는 결단의 영웅으로 보인다. 검찰독재에서 국민을 해방시키는 추다르크의 역사적 사명 앞에서 구치소 재소자들의 목숨 따위는 하찮은 에피소드일 뿐이다.

바이든과 문재인의 법무부

재선 실패라는 현실 앞에서도 트럼프는 문제의 상상적 해결을 꾀했다. 부정선거 음모론을 꺼내든 것이다. 하지만 상상계로 실재계를 대체할 수는 없는 일. 미국의 법원은 그의 개표중단 소송을 줄줄이 기각했다. 의회가 바이든의 당선을 공식 승인하려 하자 좌절한 지지자들은 국회의사당을 공격하고 나섰다.

여기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검찰총장을 쫓아내려고 당정청은 문제의 상상적 해결을 꾀했다. 검찰총장의 죄를 창작해 그를 징계하려 한 것이다. 하지만 법원에서는 잇따라 이들의 상상계를 파괴하는 판결을 내렸다. 분노한 민주당은 사법부를 공격하고 나섰다. 재판부 탄핵청원에 지지자 45만이 참여했다.

미국에서 탈진실은 종언을 고했다. 바이든은 법무부 고위직 지명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나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다. 당신은 대통령이나 부통령의 변호사가 아니다. 당신의 충성은 나에 대한 것이 아니다.” 정의는 법률·헌법·국민의 몫이라며 그는 트럼프가 훼손한 법무부의 독립성을 회복하겠다고 약속했다.

이것이 민주주의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는 법무부 장관이 권력의 망나니 노릇을 한다. ‘수명자’라는 군사용어까지 동원해 검찰총장을 억지로 제 ‘부하’로 만들고는 대통령에게 충성하라고 강요한다. 거부하니 쿠데타 음모론과 권언유착의 공작정치로 허위 누명을 뒤집어씌운다. 여기서 탈진실의 상황은 아직 진행중이다.

대통령은 올 신년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공정의 힘을 믿으며 그 가치를 바로 세워가고 있습니다. 권력기관 개혁은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일입니다. 법질서가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공정하게 적용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상계 안에 갇혀 완전히 현실감을 잃어버리신 것이다.

‘공정의 힘’을 믿어서 조국을 옹호하고, ‘견제와 균형’을 이루려고 검찰총장과 감사원장에게 코드를 맞추라 요구하고, ‘법 질서’를 세우려고 재판부 탄핵을 외치나? 국민은 아비규환의 실재계에 두고 대통령 혼자 어디 살기 좋은 나라로 피정을 떠나셨나 보다. 대통령과 국민이 하나의 세계를 공유하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