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 또 '최초' 기록…여성 신도 위해 교회법 개정

중앙일보

입력 2021.01.12 16:20

독일 출신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 속 교황의 모습. [사진 영화사 백두대간]

독일 출신 거장 빔 벤더스 감독이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 교황: 맨 오브 히스 워드’ 속 교황의 모습. [사진 영화사 백두대간]

여성과 무슬림의 발을 씻겨주고 성 소수자를 끌어안은 최초의 교황. 호화 관저 대신 다른 성직자들과 게스트 하우스에서 생활하고, 고급 리무진 아닌 소형차를 선택한 최초의 성자(聖者). 프란치스코(85) 교황 이야기다. 그에게 붙는 ‘최초’라는 수식어는 이 밖에도 ‘남미 출신’ ‘예수회 출신’으로 다양하다. 그리고 지난 11일(현지시간), 하나를 더 추가했다. 미사에서 여성 역시 공식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교회법을 수정하면서다.

이로써 프란치스코 교황은 미사에서 여성의 역할을 인정한 최초의 교황이 됐다.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11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번 교회법 개정으로 여성 역시 성경 봉독과 성찬식 나눠 주기 등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진 남성 신도들만 수행 가능했던 역할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의 한 교도소를 찾아 재소자의 발을 씻겨준 뒤 입을 맞추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마의 한 교도소를 찾아 재소자의 발을 씻겨준 뒤 입을 맞추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미 많은 국가에서 여성들은 미사 봉사에 참여해왔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는 ‘자격을 갖춘 남자 평신도’만 독서자(성경 봉독을 맡은 자) 등으로 활동할 수 있다고 규정한 ‘교회법 230조 1항’을 그대로 두었다. 성차별에 해당할 수 있는 이 조항을 처음 바로잡은 이가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교황은 공표 문서에서 “여성들이 교회에 쏟은 귀중한 공헌을 인정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교황청은 “여성이 사제나 부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미사를 집전하거나 강론, 세례성사 등은 안 된다는 것이다. 2016년 ‘여성 부제’를 허용할지 검토하는 위원회가 만들어지고 ‘여성 사제’를 둘러싼 토론을 해왔지만, 아직 확대해석하긴 이르다는 메시지다.

프란치스코 교황(왼쪽)과 사상 첫 교황청 외무부 2차관 프란체스카 디 지오반니 [실비아 로지아니 트위터]

프란치스코 교황(왼쪽)과 사상 첫 교황청 외무부 2차관 프란체스카 디 지오반니 [실비아 로지아니 트위터]

그럼에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한 2013년 이후, 가톨릭 내 여성의 지위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지난해엔 교황청 관료 조직의 심장부로 꼽히는 국무원 중 제2 외무차관 자리에 이탈리아 출신 여성 프란체스카 디 지오반니(67)가 임명됐다. 국무원은 국무부·외무부·외교인사부 등 3개 부처로 구성되어 있으며 교황의 직무를 측근에서 보좌하는 기구다. 이런 국무원의 차관 이상 고위급에 여성이 임명된 건 역사상 처음이었다.

2019년 세계적으로 성폭력 고발 운동인 ‘미투(#MeToo)’ 열풍이 불 때, 프란치스코 교황은 과거 가톨릭 사제들이 수녀들에게 성폭력을 가한 사실을 공개적으로 처음 인정했다. 또 전임인 베네딕토 16세 시절, 성폭력 문제로 한 여성 수도회를 해산시켰던 사실도 공개했다. 그는 “여성 학대는 심각한 문제”라며 “여성이 ‘이류시민’이라는 잘못된 인식에서 문제가 시작된다”고 지적했다.

프란치스코(왼쪽) 교황과 이슬람의 영도자 아흐메드 알 타예브가 만난 모습. 두 사람은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똑같은 권리와 의무와 품위를 지닌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선언을 발표했다. 중앙포토

프란치스코(왼쪽) 교황과 이슬람의 영도자 아흐메드 알 타예브가 만난 모습. 두 사람은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똑같은 권리와 의무와 품위를 지닌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선언을 발표했다. 중앙포토

프란치스코 교황은 민감한 문제에 있어서도 강단 있게 소신을 피력해왔다. 그가 세상에 던진 또 다른 화두는 성 소수자 문제다. 2013년 즉위 직후 그가 남긴 “동성애자가 선한 의지를 갖고 신을 찾는다면 과연 그를 심판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세계적으로 큰 파장을 낳았다. 가톨릭에선 동성애를 ‘죄’로 규정했지만, 그는 “그들도 결국 하나님의 자녀”라며 교회가 이들을 비참하게 해선 안 된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공개된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에서도 “동성애자들도 가정을 이룰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2017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람보르기니로부터 약 2억6000만원 상당의 ‘우라칸’을 선물받았다. 교황이 서명한 이 차는 경매에 부쳐졌고, 수익금은 이슬람국가(IS)가 파괴한 이라크의 기독교 사회 재건을 위해 사용됐다.[AP= 연합뉴스]

2017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람보르기니로부터 약 2억6000만원 상당의 ‘우라칸’을 선물받았다. 교황이 서명한 이 차는 경매에 부쳐졌고, 수익금은 이슬람국가(IS)가 파괴한 이라크의 기독교 사회 재건을 위해 사용됐다.[AP= 연합뉴스]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이탈리아 출신 철도노동자 가정의 5남매 중 한 명으로 태어났다. 22세에 예수회에 입문해 수도사의 길에 들어섰고, 2013년 다섯 차례의 콘클라베(교황을 선출하는 추기경단의 선거회의) 투표 끝에 교황으로 선출됐다. 2014년 미국 경제지 포천(Fortune)지가 꼽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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