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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아이 던졌어요" 친모 서툰 한국말에 뒤집어진 순창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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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봉 순창경찰서장이 11일 전북경찰청 기자실에서 '경찰이 아동학대 의심 신고자의 신분을 노출했다'는 지적에 대해 ″다른 어떤 사안보다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정재봉 순창경찰서장이 11일 전북경찰청 기자실에서 '경찰이 아동학대 의심 신고자의 신분을 노출했다'는 지적에 대해 ″다른 어떤 사안보다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김준희 기자

"엄마가 일본인…서툰 한국말로 빚은 오해"

"일본인 친모가 우리말에 서툰 나머지 병원 직원에게 '아빠가 아이를 당겼다'는 것을 '아빠가 아이를 던졌다'고 잘못 표현했습니다."

[사건추적] #전북 순창 공보의, 아동학대 의심한 까닭 #정재봉 순창경찰서장, 기자간담회서 해명

 지난해 11월 전북 순창군의 한 의사가 경찰에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하게 된 것은 일본 국적 친모의 서툰 한국말 때문에 빚어진 오해인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확인됐다. 당초 이 사건은 "경찰이 아동학대 의심 신고자의 신분을 노출했다"는 논란을 빚기도 했다.

 정재봉 순창경찰서장(총경)은 11일 전북경찰청 기자실에서 "해당 사건은 무혐의로 종결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서장은 "친모는 일본인으로 국내에서 5년 거주했다"며 "의사소통은 괜찮은데 여전히 단어 몇 개는 혼동한다"고 전했다.

 당초 순창 사건은 학대 혐의가 없는 것으로 일단락됐지만, 16개월 된 여자아이가 양부모 학대로 숨진 '정인이 사건'이 최근 전국 이슈로 부각되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도대체 순창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신고자 노출…친부 "당신이 뭔데 신고해"

 경찰 등에 따르면 순창군보건의료원 소속 공중보건의 A씨는 지난해 11월 20일 본인이 진찰한 4살 아동에게서 학대 의심 정황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아동의 눈 옆에 계란 만한 혹이 생긴 데다 병원 입구에서 방문자 체온을 재던 직원으로부터 "아이 엄마가 '아빠가 아이를 던졌다'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어서다.

 친부는 신고를 한 A씨에게 사건 당일 수차례 전화로 항의했다. "당신이 뭔데 신고했냐", "나를 왜 나쁜 사람 취급하냐" 등의 폭언과 함께다. 이에 A씨는 동료들에게 "친부의 위협에 공포를 느꼈다"고 호소했다. 이후 "신고를 접수한 파출소 직원의 실수로 내 신원이 친부에게 알려져 협박 전화를 받았다"며 순창경찰서 청문감사실에 해당 경찰관에 대한 조사와 문책을 요구했다.

 사건이 알려지자 "아동학대 의심 신고자에 대한 경찰의 신변 보호와 대응 체계가 허술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아동학대처벌법에 따르면 의료인과 어린이집 교사 등은 직무를 수행하면서 아동학대 범죄를 알게 된 경우나 그 의심이 있는 경우에는 아동보호전문기관 또는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이들 신고 의무자가 아동학대를 신고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1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검찰청 앞에 설치된 정인이 사진을 한 시민이 어루만지고 있다. 이날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는 정인이 양부모 재판을 앞두고 엄벌을 촉구하며 근조화환과 바람개비를 설치했다. 연합뉴스

11일 오전 서울 양천구 남부지방검찰청 앞에 설치된 정인이 사진을 한 시민이 어루만지고 있다. 이날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는 정인이 양부모 재판을 앞두고 엄벌을 촉구하며 근조화환과 바람개비를 설치했다. 연합뉴스

"학대혐의 없어 사건 종결…모니터링 지속"

 이날 기자 간담회를 자청한 정 서장은 "최근 논란이 된 (순창) 사건으로 인해 아동학대 신고 처리에 대한 의문 제기가 있었고, 경찰이 하는 조치에 대해 책임자로서 국민께 설명을 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정 서장 등에 따르면 당시 경찰은 신고 접수 후 관할 파출소 측에서 신고자인 공중보건의를 만나 신고 경위를 들었다. 순창경찰서 여성·청소년 담당 경찰관도 신고자에게 전화해 아동학대로 의심한 경위를 물었다.

 정 서장은 "아동을 직접 만나 확인하고, 아동의 조부모와 친부모를 조사했으나 1차적으로 학대 혐의까지는 확인할 수 없어 그 결과를 신고자(공중보건의)에게 전화 통화와 대면으로 설명했다"며 "전라북도 아동보호전문기관과 함께 재차 학대 여부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으나 혐의를 인정키 어렵다는 최종적인 판단에 이르렀다"고 했다.

 친부모가 진료 직후 "광주에 있는 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 보라"는 A씨 권유는 따르지 않았지만, 집과 가까운 순창 지역 정형외과에 아동을 데려가 진료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정 서장은 "정형외과에 가서도 '이상이 없었다'는 진단을 받고 해열제만 처방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동의 어머니가 '아빠가 아이를 던졌다'고 말하게 된 경위도 조사했으나 우리말에 서툰 나머지 표현을 잘못했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정 서장에 따르면 친모는 경찰 조사에서도 병원 직원에게 한 말과 똑같이 "아빠가 아이를 던졌다"고 말했다. 경찰관이 직접 손동작을 하면서 '이렇게 아이를 잡아서 던졌냐'고 했더니 친모는 '아니다'고 했다. 그래서 재차 '아빠가 던진 거냐, 당긴 거냐'라고 물으니 그제서야 "잡아당겼다는 것을 잘못 표현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해당 아동이 다친 경위도 공개됐다. 조사 결과 아침에 유치원 등교 과정에서 얼굴에 상처가 생겼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어 놓은 상태에서 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떼를 쓰자 친부가 현관 바닥에 주저앉은 아이 팔을 잡아당겨 아이가 엎어졌다. 이 과정에서 현관문을 고정하는 말발굽(도어스토퍼)에 이마를 부딪혀 아이 얼굴에 상처가 났다는 게 정 서장 설명이다.

'신고자 유추' 직원, 시민감찰위 회부

 정 서장은 "감찰 조사 결과 신고 사건 처리 과정에서 신고자의 신분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언급했던 경찰관에게 고의성은 없어 보인다"면서도 "사안이 중대하고 국민적 관심과 우려가 큰 만큼 전북경찰청 시민감찰위원회에 회부해 외부 전문가들로부터 처벌 여부와 수위에 대한 객관적 판단을 구할 방침"이라고 했다.

순창=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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