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위안부 할머니 또다른 2차 소송, 이틀 전 돌연 선고 연기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저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이 90이 넘도록 이렇게 판사님 앞에서 호소해야 합니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마지막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지난해 11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마지막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93) 할머니가 지난해 11월 11일 서울중앙지법 558호에서 열린 6차 변론 때 재판부를 향해 외친 말이다. 해당 재판은 이 할머니의 변론을 끝으로 이달 13일 최종 선고만 남겨둔 상황이었다. 선고를 이틀 앞둔 11일 재판부가 돌연 선고 공판을 두 달 뒤로 연기했다. 추가 심리 필요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주권면제론 국제법 깬 첫 국내 판례에 파장 #13일 선고→3월 24일 변론재개 이후 연기

추가 소송 선고…이틀 앞두고 돌연 연기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민성철 부장판사)는 이날 고(故) 곽예남ㆍ김복동 할머니와 이용수ㆍ길원옥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등 2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 대해 변론 재개를 결정했다. 그러면서 오는 3월 24일을 변론기일로 지정한 뒤 선고기일을 따로 정하지는 않았다. 법원 관계자는 “추가 심리가 필요한 사항에 관해서 추후 재판부의 석명권 행사를 통해 당사자에게 알리고 변론을 준비하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변호인 측은 “(원고 중 한 명인) 이용수 할머니는 13일 선고기일을 위해 대구에서 서울로 가는 차편도 알아보셨다”며 “6번에 걸쳐 충분히 심리했는데 별다른 설명 없이 이틀 전에 변론 재개를 하겠다는 재판부의 결정이 아쉬운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주 재판에서 낸 판결의 의미를 잘 살릴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라며 “재판부에서도 헌법과 국제인권법에 기반을 둔 판결을 가급적이면 신속하게 내줬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지난 8일 주권면제론 깬 첫 판결 여파 때문? 

선고가 미뤄진 건 앞서 법원이 지난 8일 별도로 고 배춘희 할머니 등 피해자 12명이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일본 정부에 1억원씩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을 한 여파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정곤)는 당시 반인도적 범죄에 관해선 주권(또는 국가)면제론을 적용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헌법 27조(재판청구권)와 유엔 ‘세계인권선언’을 근거로 “재판받을 권리는 다른 실체적 기본권과 더불어 충분히 보호되고 보장받아야 할 기본권”이라며 “기본권의 보장을 위한 실효적 권리인 재판받을 권리를 제한함에 있어서는 지극히 신중하여야 한다”고 했다.

이 판결은 국내에선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재판할 수 없다'는 주권면제 원칙을 깬 첫 판결로 법원 안팎으로 파장이 클 수 밖에 없었다. 그간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는 국제관습법인 주권면제론을 근거로 미국·일본 등 다른 나라 정부를 상대로 한 소송을 인정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8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법률 대리인 김강원 변호사. 뉴스 1

8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법률 대리인 김강원 변호사. 뉴스 1

한국 법원의 첫 판단 이후 한·일관계에 끼칠 악영향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실제로 일본 외무성은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를 초치해 이번 판결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로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이에 이창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8일 판결 이후 CNN 등 외신에서 해당 재판을 다룰 만큼 여론의 파장이 컸다”며 “(이런 점을 고려한) 사법부가 이번 판결을 앞두고 고심해 재판을 연기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日정부 상대 2차 소송, 8일 재판과 유사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의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손해배상 소송도 기본적인 구조는 ‘8일 재판’과 비슷하다. 최대 쟁점은 한국 법원이 ‘주권면제(국가면제)’론’의 예외를 인정할지 여부다. 일본 정부는 이 소송에서도 주권 국가는 다른 나라 법정에 서지 않는다는 국제법상 주권면제론을 내세워 소송에 불응해왔다. 일본 외무성이 소장 송달을 거부하자 한국 법원은 공시송달 방식으로 재판을 열고 6차례 변론을 진행했다. 일본은 무대응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소송 참여자가 다르다는 점이다. 이 재판은 위안부 생존 피해자 11명과 숨진 피해자 5명 유족 등 21명이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 맺은 ‘한·일 위안부 합의’ 1주년을 맞아 2016년 12월 28일에 소송을 접수하면서 시작됐다.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국에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두 번째 소송이다. 소송에는 이용수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 등이 참여했다. 이 중 한 명이 소송을 취하해 소송인단은 현재 20명이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oo@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