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선 흙이 자석에 붙는다, 사월마을 122명 '악몽의 1년'

중앙일보

입력 2021.01.12 05:00

 사월마을에서 채취한 흙에서 나온 쇳가루가 자석에 붙어 있는 모습. 심석용 기자

사월마을에서 채취한 흙에서 나온 쇳가루가 자석에 붙어 있는 모습. 심석용 기자

지난 11일 오전 11시쯤 인천 서구 왕길동 사월마을에 들어서자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연신 기침이 났다.
경치가 좋아 길가던 나그네가 사흘을 머물러 ‘사월마을’이 됐다는 미확인 유래는 이젠 말그대로 옛말이 됐다. 이 마을은 2019년 11월 19일 환경부로부터 주거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거주민 보다 많은 공장 

총 52세대, 122명이 거주하는 마을엔 거주민 수보다 많은 공장이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제조업체 122곳, 폐기물 처리업체 16곳 등 공장 160여개가 가동 중이다. 마을 옆에는 서울과 경기도에서 배출되는 생활 쓰레기를 수도권 매립지로 운반하는 도로인 드림파크로가 있다. 주민들은 마을 인근에 순환 골재 등 폐기물 처리업체 등이 들어오면서 쇳가루와 비산먼지 피해가 심해졌다고 주장한다.

이 마을의 흙은 자석에 붙는다. 마을 내 담장 밑에서 흙을 채취해 흰 종이에 올린 뒤 자석을 갖다 댔더니 금세 흙에서 분리된 쇳가루가 자석을 따라 움직였다. 종이 위 흙에 자석을 직접 갖다 대니 흙 한 움큼이 붙었다.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이모씨(28)는 “쇳가루와 먼지 때문에 목이 아픈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며 “심한 아토피로 인해 양팔과 다리 얼굴엔 항상 흉터가 있다”고 말했다. 20년간 거주한 권순복(74·여)씨는“여름에 밖에 빨래를 널면 새까맣게 변했다”며 “갑상선 수술도 한 터라 매일 약을 잔뜩 먹어야 버틸 수 있다”고 했다.

1년 지났지만, 환경 개선은 아직 

이 마을에서 채취한 흙에서 나온 쇳가루가 자석의 움직임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심석용 기자

이 마을에서 채취한 흙에서 나온 쇳가루가 자석의 움직임을 따라 이동하고 있다. 심석용 기자

주거 부적합 판정 1년이 넘었지만, 사월마을엔 큰 변화가 없다. ‘사월마을 건강영향조사 사후관리 용역’을 맡은 가천대 길병원 연구팀에 따르면 최근 사월마을 마을 회관·주택·사업장 등에서 3일에 걸쳐 초미세먼지(PM 2.5) 농도를 측정한 결과 모두 일평균 대기 환경 기준치(35㎍/㎥)를 초과했다. 같은 날짜의 서구 검단동 주거지역 초미세먼지 수치보다 크게 높았다. 주민 35명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진행한 혈액, 흉부 CT, 복부초음파, 폐 기능, 골밀도, 심전도 등 조사에서도 이상 소견이 다수 확인됐다. 앞서 환경부는 사월마을 전체 52세대 중 37세대(71%)가 주거하기에 부적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난 2019년 밝혔다. 발표 이후 인천시는 서구와 함께 사월마을 대책 전담팀(TF)을 구성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하지만,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사월마을 미세먼지 측정 결과 [인천시 서구]

사월마을 미세먼지 측정 결과 [인천시 서구]

이주 →개발 →이주로 바뀐 주민 입장

사월마을.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사월마을.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환경부 발표 이후 사월마을 주민들은 집단 이주를 요구해왔다. 그러나 지난해 이주가 아닌 개발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장선자 사월마을 환경비상대책위원장은 “주민 집단 이주를 기다렸으나 지지부진해 지친 상태”라며 “주민 90% 동의를 받아서 개발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제출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개발 관련 계획이 무산되면서 주민들은 다시 집단 이주로 가닥을 잡는 분위기다. 마을 대표 김종수씨는 “사월마을은 개발도 안 되고 계속 피해를 받고 있다. 다시 집단 이주로 방향을 선회했다”며 “인천시는 코로나19를 핑계로 대책 제시 등 없이 1년간 방치해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천시는 외부 기관에 의뢰한 ‘수도권매립지 주변 자연부락 환경개선 대책 수립 용역’ 결과를 토대로 사월마을의 환경 개선 대책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오정한 인본환경법률연구원 원장은 “사월마을 개발은 인천시가 주민 수보다 많은 업체의 영업손실보상, 교통수단 부족 문제 등을 해결하기 전엔 쉽지 않다”며 “원래대로 주거 부적합으로 인한 집단이주에 맞춰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인천=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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