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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손흥민 원더골 중계했다면 뭐라 했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5년 만에 만난 송재익 캐스터(오른쪽)와 신문선 해설위원. 두 사람은 맛깔나고 날카로운 중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우상조 기자

15년 만에 만난 송재익 캐스터(오른쪽)와 신문선 해설위원. 두 사람은 맛깔나고 날카로운 중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우상조 기자

“신 박사, 여전하네. 우리 본 지 10년 넘었지? 쌍둥이는 잘 살고?”(송재익 캐스터)
“송 선배도 그대로네. 2006년이 마지막이었죠, 애들은 장가 갔죠.”(신문선 해설위원)

15년 만에 재회한 '후지산 콤비' #축구 중계의 전설 송재익·신문선 #개성·인기로 50%대 시청률 자랑 #오프사이드 이슈, 아쉽게 갈라서

15년 만에 재회한 송재익(79) 캐스터와 신문선(63) 위원이 반갑게 주먹인사를 나눴다. 둘은 ‘후지산 콤비’로 불린다. 1997년 9월 28일, 일본 도쿄국립경기장에서 1998 프랑스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한·일전이 열렸다. 이른바 ‘도쿄대첩’이다. 후반 41분 이민성의 역전골이 터지자, 송 캐스터가 “후지산이 무너지고 있습니다”라고 외쳤다. MBC의 경기 중계방송 시청률은 56.9%, 경이적이었다. 둘은 1998 ,2002, 2006년 월드컵에서 입담을 뽐냈다.

송 캐스터는 지난해 프로축구 K리그2 중계방송을 끝으로, 50년간 잡았던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최근에는 유재석이 진행하는 한 예능에 출연해 화제가 됐다. 과거 신 위원과 중계방송하던 영상도 유튜브에 소환됐다. 두 사람을 11일 서울 순화동 중앙일보에서 만났다.

2002년 당시 신문선 해설위원과 송재익 캐스터. [중앙포토]

2002년 당시 신문선 해설위원과 송재익 캐스터. [중앙포토]

-못 본 지 15년 됐나.
신문선(이하 신): 2006년 독일 월드컵 한국-스위스전 해설 도중 ‘오프사이드 판정’ 발언이 논란에 휩싸였다. 여론이 나빠 밤 기차로 이동하던 중 인사도 못 하고 중도 귀국했다. 그 당시 ‘방송에 마침표를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둘 다 개성이 강했지만 사이는 나쁘지 않았다.
송재익(이하 송): 지난달 은퇴 소식을 들은 신 위원이 장문의 메시지를 보내왔다. 10여년 만에 전화를 걸어 긴 시간 통화했다.
(송 캐스터는 신 위원이 보낸 메시지를 보여줬다. ‘존경합니다. 그 긴 시간 마이크와 더불어 산 방송인으로 철저한 자기 관리와 오디오 유지. 입을 맞추며 축구를 예찬했던 시간과 추억은 영원할 겁니다. 기회되면 입을 맞춰 ‘골이에요’를 외치며 중계의 대미를 장식하고 싶었지만. 그래도 우리 중계를 최고로 인정하는 팬들도 있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축구와 복싱 중계의 대명사로 그 명성은 길이 남을 겁니다.’)

-'후지산' 얘기는 지금도 회자된다.
송: 역전골이 터지자, 일본 관중이 배추밭에 뜨거운 물을 끼얹은 것처럼 폭삭 주저앉았다. 일본 자존심을 건드리고 싶었다. 일왕을 건드릴 수 없으니 그 다음으로 후지산이 떠올랐다.

-1997, 98년 당시 인기는 대단했다.
송: 우리 둘의 하이라이트는 3개다. 1997년 프랑스월드컵 예선, 그 중에서도 특히 도쿄대첩, 그리고 1998년 월드컵 본선 멕시코전이다. 우리 시청률 47%일 때, 다른 방송사는 17, 5%였다.

-인기의 이유가 뭘까.
신: 방송 3사가 동일한 국제신호를 받았다. 오프닝에서 시청자 마음을 빼앗아야 했다. 옛날 캐스터와 달리 송 선배는 스포츠를 세상사에 빗대 표현하는 언어의 마술사였다. 조재진의 헤딩골을 ‘보신각 종 치듯’, 2002 월드컵 한국-미국의 꽉찬 관중석을 ‘6만3000송이 장미’로 표현했다. 둘이서 축구를 90분짜리 드라마로 승화시켰다.

15년 만에 만난 송재익 캐스터(오른쪽)와 신문선 해설위원. 두 사람은 맛깔나고 날카로운 중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우상조 기자

15년 만에 만난 송재익 캐스터(오른쪽)와 신문선 해설위원. 두 사람은 맛깔나고 날카로운 중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우상조 기자

-송 캐스터가 지난해 K리그2 중계한 거 봤나.
신: 목소리가 여전히 쌩쌩했다. 안양FC와 부천FC가 졸전을 펼치자 ‘옆동네라고 동네축구 하면 안 된다’고 하더라. 내가 옆에 있었다면 ‘동네축구 하면 관중이 오겠나. 운동장에 함성보다 공 차는 소리가 더 크다’고 맞받았을 거다.
송: 토트넘 손흥민의 70m 드리블 원더골을 중계한다면 뭐라고 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무래도 중계석에서 해야 ‘도쿄대첩’ 감동이 나올 텐데. 내가 ‘손흥민 골이기 전에, 대한민국 골’이라고 하면, 신 위원이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아니라 월드클래스에요’라고 했을 거다.

-신 위원의 ‘디딤발’, 송 캐스터의 ‘키 1m80㎝, 어느 고등학교’ 코멘트에 호불호가 갈린다.

신: 만담 같다는 지적도 받았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2006년 월드컵 한국-스위스전 당시 프라이 골을 온사이드라고 말했다가 엄청나게 욕을 먹었다. 돌이켜보면 2018년 러시아 월드컵 한국-독일전 김영권 골과 비슷하다.
송: 비판은 겸허히 받아들인다. 1990년대에는 (다양한 정보를 찾아볼) 스마트폰이 없었다. 키는 중요한 정보였다. 현장을 오래 떠났더니 많이 바뀌었더라. 우리 땐 크로스가 센터링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취재해서 다양한 정보를 전하려고 했다.

왕년의 중계 콤비 송재익(오른쪽) 캐스터와 신문선 해설위원. 우상조 기자

왕년의 중계 콤비 송재익(오른쪽) 캐스터와 신문선 해설위원. 우상조 기자

-유튜브를 통해 과거 두사람 해설이 소환됐다.
신: 옛날 삼양라면 추억하듯, 중장년층이 1998년 이임생의 붕대투혼, 2002년 월드컵의 감동을 찾아보는 것 같다. 경험하지 못한 젊은 친구들도 세대를 초월한 감동을 느끼는 것 같고.
송: 지난해 축구장에 갔더니 아이들이 사진 찍자고 하더라. ‘2002년에 몇 살이었니’ 묻자 ‘태어나기 전이요. 아빠가 유명한 사람이라고 찍어오랬어요’라고 하더라.(웃음)

-송 캐스터는 완전히 은퇴하셨나.
송: 지방중계를 마치고 밤운전하다보니 횡사할까 무섭더라. 하지만 완전히 ‘세이 굿바이’는 아니다. 나중에라도 한국 축구에 작은 힘이 될 수 있다면야.
신: 송해 선생님이 전국노래자랑을 지키고 계신데, 송 선배는 ‘축구계 송해’다. 만약 팬들이 우리 콤비를 그리워한다면, 둘이서 ‘아~ 골이에요’를 외칠 수도 있지 않을까.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시작했다. 신 위원은 “형님은 왼쪽에 서세요. 캐스터는 왼쪽, 해설자는 오른쪽이니”라고 말했다. 모두 웃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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