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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 속 '내복 아이' 발길 향한 곳...76명 가족 찾아준 편의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충북 청주에 영하 18도의 한파가 불어닥친 지난 8일 오후 7시쯤. 내복 차림의 다섯 살배기 A군이 눈물로 범벅이 된 채 편의점 CU 안에 들어섰다. 야간 근무 중이던 직원 윤모(59)씨는 깜짝 놀라 A군을 카운터 안의 난로 옆으로 데려가 몸을 녹여줬다. 아이에게 집 주소와 부모 연락처를 물었다. 하지만 A군은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집에 엄마랑 아빠가 없었다"며 "엄마를 찾으러 나왔다가 너무 추워 편의점으로 왔다”고 말했다.

윤씨는 곧바로 편의점 계산단말기에 A군의 인상착의 등을 입력했다.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2017년 업계 최초로 길을 잃은 아이, 치매 환자, 지적장애인 등을 경찰과 가족에게 인계하는 실종 예방 신고 시스템 ‘아이 CU’를 도입했다. 윤씨처럼 계산 단말기에 실종인의 이름이나 인상착의 등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인근 경찰서에 실종 신고가 접수된다.

박정권 BGF리테일 커뮤니케이션실장은 11일 “A군을 애타게 찾던 부모는 CU에서 아이를 보호하고 있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와 A군을 품에 안았다”고 전했다. A군은 부모가 주차 때문에 잠깐 집을 비운 사이 잠에서 깨 홀로 나왔던 것으로 파악됐다. A군은 이튿날 부모와 함께 편의점을 다시 방문해 윤씨에게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했다.

지난 8일 오후 5시50분쯤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주택가에서 내복 차림으로 추위에 떨던 4세 여아가 시민의 도움으로 구조돼 편의점으로 들어오고 있다. [편의점 제공 CCTV 영상]

지난 8일 오후 5시50분쯤 서울 강북구 우이동의 한 주택가에서 내복 차림으로 추위에 떨던 4세 여아가 시민의 도움으로 구조돼 편의점으로 들어오고 있다. [편의점 제공 CCTV 영상]

A군이 편의점을 찾았던 8일에 서울 강북구에서도 엄동설한에 내복만 입은 세 살 여아가 CU편의점 앞에서 서성이다가 시민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BGF리테일 관계자는 “공교롭게도 서울과 청주에서 같은 날, 한파로 떨고 있는 아이 두 명이 편의점 근처에서 발견됐다”고 말했다.

편의점은 동네 곳곳에 있고 일부는 24시간 운영돼 주민과 아이들에게 익숙하다. BGF리테일은 이런 점에 착안해 2017년 경찰청과 편의점 기반의 지역사회 안전망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BGF리테일 측은 “전국 CU편의점 점포만 1만5000개이고 교대 포함 근무 인력은 10만 명”이라며 “전국 점포를 활용해 공익 인프라 역할을 시작한 게 실종 예방 신고 시스템 ‘아이 CU’”라고 소개했다. ‘아이 CU’를 통해 지난 3년 동안 76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아동 51명, 치매 노인 16명, 지적장애인 7명 등이다.

BGF리테일은 2018년엔 업계 최초로 아동권리보장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실종 아동 찾기 캠페인’을 벌였다. 캠페인 시작 1년여 만인 지난해 9월 장기 실종 상태였던 강영희(가명)씨가 20년 만에 극적인 가족상봉을 하는 결실로 나타났다. 강씨 가족이 2000년 6월 잃어버린 강씨(실종 당시 4세)를 아동권리보장원에 사례관리대상자로 등록했고, BGF리테일은 전국 1만5000여 CU편의점에 강씨의 사진과 정보를 송출했다. 우연히 집 인근 CU를 방문한 강씨가 셀프 계산대에서 자신의 어릴적 사진을 보고 편의점에 문의하면서 가족을 찾을 수 있었다.

CU 를 방문한 고객들이 계산대 모니터에 송출되고 있는 장기실종아동 정보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사진 BGF리테일

CU 를 방문한 고객들이 계산대 모니터에 송출되고 있는 장기실종아동 정보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사진 BGF리테일

BGF리테일은 지난해부터는 전국 CU편의점에 학대 아동 신고 시스템도 도입했다. 점포 근무자가 아동학대로 의심되는 상황을 발견하면 계산 단말기를 통해 신속하게 경찰에 신고하도록 했다. BGF리테일의 박 실장은 “지난해 인천 라면형제도 낮에 편의점을 자주 들렀다. 편의점은 아이들에게 친근하고 익숙한 장소”라며 “아이가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거나, 눈에 띄는 상처 등이 보이면 경찰에 인상착의 등을 공유하는 식으로 근무자에게 관련 지침을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CU점포 근무자가 아동학대로 의심되는 상황을 발견할 시 계산단말기를 통해 보다 신속하게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아동학대 범죄 신고 기능을 추가했다. 사진 BGF리테일

CU점포 근무자가 아동학대로 의심되는 상황을 발견할 시 계산단말기를 통해 보다 신속하게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아동학대 범죄 신고 기능을 추가했다. 사진 BGF리테일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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