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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인간형 로봇 휴보가 120~150㎝인 이유, 인간과 친해지기 위해서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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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준호 KAIST 석좌교수와 휴보2. [카이스트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오준호 KAIST 석좌교수와 휴보2. [카이스트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시에 인간을 대신해 로봇이 투입됩니다. 로봇의 발걸음은 해일·산불 등 각종 재난 상황에서도 성큼성큼 거침없죠. 인간의 신체와 유사한 모습을 갖춰 그 행동을 그대로 모방할 수 있는 인간형 로봇, ‘휴머노이드(Humanoid)’ 이야기입니다. 휴머노이드는 ‘인간(Human)’과 ‘~와 같은 것(oid)’의 합성어로, ‘사람 같은 것’이란 뜻이에요. 인간의 지능·행동·감각·상호작용 등을 모방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죠. 2000년 일본 혼다(Honda)가 이족 보행 로봇 ‘아시모(ASIMO)’를 개발하며 본격적으로 휴머노이드 연구가 시작됐어요. 아시모는 약 30개의 호출 신호를 알아듣고 사람의 얼굴·음성을 인식할 수 있죠. 평지뿐 아니라 계단·경사면에서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어 당시 휴머노이드 시장의 획기적 발전을 이끌었어요.

[카이스트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카이스트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한국에서도 2004년 12월 휴머노이드 ‘휴보(HUBO)’가 탄생했습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기계공학과 오준호 교수팀이 개발한 인간형 로봇으로 키 120cm에 몸무게 55kg, 1분에 65걸음(시속 1.25㎞)을 걸을 수 있는 능력을 갖췄죠. ▶휴보1 ▶알버트 휴보 ▶휴보2 ▶DRC-휴보 등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팀 카이스트(Team KAIST)’는 지난 2015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세계 재난로봇 경진대회 ‘DARPA 로봇공학 챌린지(DRC)’에서 ‘DRC-휴보 플러스(+)’로 출전해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습니다. 미국(12개팀)·일본(5개팀)·독일(2개팀) 등 로봇 선진국을 포함한 총 24개 팀을 모두 물리쳤죠. 휴보를 최초로 세상에 내놓은 뒤 11년만의 성과였습니다.

KAIST 기계공학과 오준호 교수팀이 2004년 첫선을 보인 휴보1과 나란히 섰다. [카이스트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KAIST 기계공학과 오준호 교수팀이 2004년 첫선을 보인 휴보1과 나란히 섰다. [카이스트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팀 카이스트의 중심에는 ‘휴보 아빠’ 오준호 KAIST 석좌교수가 있었어요. 2001년부터 연구비 지원 없이 학생들과 연구에 몰두했고, 점심시간도 20분으로 줄여가며 휴보를 만들었죠. DRC에서 우승하긴 했지만, 휴보 연구는 현재진행형이에요. 국내 최초를 넘어 세계 최고의 로봇을 만들기 위해 KAIST 휴보랩(인간형 로봇연구소)은 쉴 틈 없이 돌아가죠. 벤처기업 레인보우로보틱스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도 활동하며 토종 로봇 기업의 탄생을 목표로 땀 흘리고 있는 오 교수를 김률희·김수안 학생기자가 만났습니다.

김률희(왼쪽)·김수안 학생기자가 ‘휴보 아빠’ 오준호(가운데) KAIST 석좌교수와 만났다.

김률희(왼쪽)·김수안 학생기자가 ‘휴보 아빠’ 오준호(가운데) KAIST 석좌교수와 만났다.

률희 휴보를 만든 계기가 궁금해요.

원래 로봇에 관심이 많아 연구를 계속해 왔어요. 인간형 로봇을 만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는데, 일본에서 아시모라는 휴머노이드를 발명한 걸 보고 굉장히 놀랐죠. 로봇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저런 로봇도 만들 수 있구나’ 싶었어요. 도전 정신이 들더라고요. 인간을 대신하기도 하고, 인간과 협력하는 로봇을 만든다는 게 참 재미있고 가치 있는 일이잖아요. 우리나라도 기술과 인재를 충분히 갖추고 있는데 휴머노이드에 도전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죠. 그 당시 일본이 기술적으로 가장 앞서가긴 했지만, 노력하면 그 이상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률희 일본은 아시모를 만드는 데 15년이 걸렸다고 해요. 휴보는 11년 만에 인간형 로봇으로 발전했는데, 그 비결은 무엇인가요.

그만큼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이죠. 서비스·산업·제조 등 로봇의 형태와 쓰임새는 다양하지만, 로봇을 구성하는 기술은 비슷해요. 다만 광범위한 기술 요소를 잘 연결해 하나의 결과물, 즉 작품으로 만드는 게 어렵죠. 과학자들은 이 과정을 ‘(기술을) 총합해서 시스템으로 만든다’고 표현합니다. 우리 팀은 로봇 기술 하나하나에 대한 경험이 있었어요. 이 경험을 모아 작품으로 만드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였죠. 휴보를 시스템화하는 데 아시모보다 적은 시간이 걸린 이유는 준비와 공부가 잘돼 있었기 때문이에요.
휴보1에서 개량을 거듭해 탄생한 휴보2. 빠른 이동과 날렵한 움직임을 위해 무게를 44㎏으로 대폭 줄였다. [카이스트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휴보1에서 개량을 거듭해 탄생한 휴보2. 빠른 이동과 날렵한 움직임을 위해 무게를 44㎏으로 대폭 줄였다. [카이스트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수안 재난로봇 경진대회에서 우승한 휴보로 발전하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었나요.

로봇에 완성형이란 없어요. 완벽하게 만든 줄 알았는데 실패하고, 보완해서 완성했다고 생각하지만 또 실패하는 과정의 반복이죠. 그 과정을 시행착오라 합니다. 반복되는 실패와 실험을 통해 조금씩 나아갔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한 번에 발전할 수는 없습니다. 실패를 보완하며 연구해 온 과정이 유효했죠.

수안 연구를 그만두고 싶은 때는 없었나요.

이상하게도 그만두고 싶은 적은 없었어요. 로봇 연구란 게 항상 어렵거든요. 그런데 10번 어렵다가도 1번 발전하면 기쁘더라고요. 발전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즐겁고 재밌었죠. 아무리 힘든 고비가 닥쳐도 포기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항상 극복해왔기 때문에 내성이 생겼달까요. 이번에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반복하며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DARPA 로봇공학 챌린지(DRC)’에서 우승한 DRC-휴보 플러스가 작업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사다리를 올라가고 자동차를 운동하는 등 민첩하고 정교한 작업이 가능하다. [카이스트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DARPA 로봇공학 챌린지(DRC)’에서 우승한 DRC-휴보 플러스가 작업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사다리를 올라가고 자동차를 운동하는 등 민첩하고 정교한 작업이 가능하다. [카이스트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률희 DRC-휴보 플러스의 키를 125cm에서 168cm까지 키운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간형 로봇은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첫째, 사람과 친해질 수 있는 느낌, 즉 인간 친화적이어야 하고요. 둘째, 실제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너무 작게 만들면 사람이 보기엔 귀여울 수 있지만 업무 수행력이 떨어지고, 너무 크게 만들면 무섭고 위화감이 들죠. 그래서 인간의 시선에 맞게 120~150㎝ 크기로 설계됩니다. 여러분 키와 비슷하죠. 사람과 눈높이도 맞고 친근하면서 장난감처럼 느껴지지 않는 적당한 크기예요. 단, 재난대응을 목적으로 하는 DRC-휴보의 경우 사람과 직접 상호작용하는 로봇은 아니기 때문에 조금 크게 만들었어요. 실제로 보면 약간 무서울 수 있답니다.

률희 55㎏이라는 휴보의 무게도 인간형 로봇의 특성을 고려한 것인가요.

55㎏이 정확한 숫자는 아니에요. 원래 휴보의 무게는 65㎏ 정도인데요. 사람도 옷을 입고 몸무게를 재면 더 나가기도 하고, 공복에 재면 덜 나가기도 하듯 휴보도 배터리를 넣고 쟀을 때, 본체만 쟀을 때 무게가 모두 다르죠. 배터리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고요. 휴보2의 경우 가볍게 만드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44㎏까지 무게를 줄였어요. 가벼우면 같은 힘을 냈을 때 더 빨리 움직일 수 있거든요. 사람으로 치면 다이어트를 굉장히 많이 한 거죠. 살 뺄 때 신체 한 부위만 감량할 수는 없잖아요. 전체적으로 체중을 줄이듯 휴보2도 전체 무게에서 30%를 줄였죠.

수안 전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휴머노이드는 무엇인가요.

현재 가장 성능이 뛰어난 건 미국 보스턴 다이나믹스의 아틀라스라는 휴머노이드입니다. 장애물을 뛰어넘고 백 텀블링하고 심지어 춤도 추는 아주 놀라운 로봇이죠. 미국에서 큰 지원을 받아 집중 연구 중이에요. 휴보가 재난로봇 경진대회에서 우승할 당시 이런 로봇들을 제치고 1등을 하긴 했지만, 그 시험에서 문제를 잘 푼 것이지 가장 성능이 뛰어나다고는 말할 수 없어요. 현재 아틀라스 이상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일정한 틀이 주어진 대회의 문제를 잘 푸는 것만이 아니라, 로봇의 절대적인 성능 자체를 향상해야 해요.  

수안 센서 등 로봇 핵심기술을 국산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던데요.

우리나라가 과학 기술 발전에 있어 진정한 의미의 기술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기술 자립을 이뤄야 해요. 이를 위해서는 기초과학과 순수과학 두 가지 분야의 발전이 꼭 필요한데요. 이게 참 쉽지 않습니다. 결과가 눈에 보이면 연구 동기 부여가 되는데, 잘 보이지 않을 때는 무작정 노력하고 연구하기도 힘들잖아요.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연구가 그래요.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으니까 빨리 포기하곤 합니다. 사람으로 치면 근육·관절에 해당하는 게 로봇 구동기인데, 아직까진 로봇 선진국에서 만들어진 기술을 활용하고 있죠. 이 부분을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진정한 우리 기술이라 말할 수 없어요. 토종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충분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꾸준히 하면 발전할 수 있다는 게 보이거든요. 아직 부족하지만 보완해나갈 수 있다고 믿어요.
지난 2017년 12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선 휴보. 휴보는 약 20m를 이동해 다음 주자에게 성화를 넘겼다. [카이스트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지난 2017년 12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선 휴보. 휴보는 약 20m를 이동해 다음 주자에게 성화를 넘겼다. [카이스트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카이스트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카이스트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률희 로봇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지금 여러분보다 더 어린 나이,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호기심이 많았어요. 자전거만 봐도 분해해보고 싶을 정도로 기계·장치에 대한 관심이 컸죠.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과학자라는 꿈을 키웠습니다. 로봇뿐 아니라 별·자연 현상·화학 약품·실험 등 과학에 대한 거면 뭐든 재미있었어요. 이렇게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다 보니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겠더라고요. 대학교에 진학하며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로봇까지 연구하게 됐죠. 여러분도 꿈을 넓게 가지세요. 로봇을 좋아한다고 로봇만 파고, 생물에 관심 있다고 생명공학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수학·역사·영어 등 주변 과목에도 관심을 기울이는 거죠. 공부하다 보면 점점 생각이 넓어지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일 거예요.

수안 교수님처럼 로봇 공학자가 되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한가요.

로봇뿐 아니라 어떤 분야든 다 똑같아요. 목표·의지·확신 세 가지를 기억하세요. 내가 이걸 하겠다는 목표와 의지가 뚜렷하고, 이렇게 하면 되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확신은 허황한 확신이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되겠다는 과학적 확신을 말해요. 여러분이 싫어하는 이야기일 수 있는데, 과학적 확신을 가지려면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웃음). 풍부한 경험·공부·연습이 필요하죠. 이런 것들이 풍부할수록 더 높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어요. 이 모든 과정이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소중 친구들, 2021년에는 자신만의 목표·의지·확신을 가지고 소중한 꿈에 한 발자국 더 가까워지길 바라요.

글=박소윤 기자 park.soyoon@joongang.co.kr, 사진=임익순(오픈스튜디오)·카이스트 휴머노이드로봇연구센터, 동행취재=김률희(서울 성동초 5)·김수안(서울 잠신중 1)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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