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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주빈 징역40년 선고 뒤엔…이윤택·장자연 파헤쳤던 그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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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조문영(53)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전문관. 조 전문관은 '박사방' 사건 전체 수사기간 동안 휴대전화 포렌식, 계좌추적, 성착취물 채증자료 분석 등을 통한 중요 증거자료의 체계적인 구축한 공로로 2020년 '올해의 수사관'에 선정됐다. [사진 조문영]

조문영(53)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 전문관. 조 전문관은 '박사방' 사건 전체 수사기간 동안 휴대전화 포렌식, 계좌추적, 성착취물 채증자료 분석 등을 통한 중요 증거자료의 체계적인 구축한 공로로 2020년 '올해의 수사관'에 선정됐다. [사진 조문영]

텔레그램 성 착취방 ‘박사방’의 운영자 조주빈(25)은 지난해 11월 26일 1심에서 징역 40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공범에게도 징역 7~15년의 무거운 형량이 적용됐다. 이들이 무거운 형을 받게 된 결정적 이유는 법원이 성범죄 사건에 처음으로 ‘범죄단체 조직죄’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 죄가 적용되면 단체의 수괴와 공범들은 최대 무기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

올해의 수사관 조문영 전문관 인터뷰 #박사방 텔레그램 전수 분석 #범죄단체 실체 증명해내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여조부) 소속 검사와 수사관이 수많은 증거 기록을 밤낮으로 분석해 박사방이 범죄 단체의 성격을 가졌음을 증명한 결과다. 조문영(53) 서울중앙지검 여조부 전문관은 그중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해냈다. 그는 휴대전화 포렌식, 계좌 추적, 성 착취물 채증자료 분석 등을 통해 박사방 관련 증거 자료를 체계적으로 구축했다. 이런 공로로 지난해 ‘올해의 수사관’에 선정됐다. 올해의 수사관은 최근 1년간 직무수행 실적이 탁월한 수사관을 뽑아 포상하는 제도다. 매년 6명 정도를 선정한다. 지난 10일 e메일과 전화로 박사방 사건 추적 과정을 들었다.

분석한 증거의 양이 상당했다고 들었다.
경찰에서 송치한 기록만 1만3268쪽, 책으로 23권 분량에 달했다. 이와 별도로 피해자 기록도 16권 분량이 있었다. 특히 텔레그램 박사방 대화방은 PDF 형태로 2GB 분량이나 됐다. 몇 페이지 분량이라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4명의 수사관이 육안으로 일일이 분석해 과학수사지원단이 분석할 수 있는 엑셀 파일 형태로 정리했다.
이 작업이 왜 중요했나.
지난해 6월 22일 조주빈 등을 범죄단체조직죄 등의 혐의로 기소하기 전까지 한 달여간 새벽까지 대화방 분석 작업에 매달렸다. 수많은 대화 내용 속에서 특별한 내용을 추리고, 많이 등장하는 닉네임을 뽑아 대화 내용과 대화 참여 횟수 등을 정리했다. 대화방을 분석하면서 이들의 공동 목적과 역할 분담, 내부 규율, 조직 결속력 강화책 등이 있음을 찾아냈다. 결국 텔레그램 박사방이 성 착취물 제작·유포라는 범죄를 목적으로 하는 일정한 구조와 체계를 갖춘 결합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유료방인 ‘하드코어방’도 분석해 성 착취물의 실시간 제작 정황 등을 찾아냈다. 또 여러 박사방에 흩어져 있는 피해자들을 특정하고 분류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중요한 입증 자료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가 밝혀낸 '박사방' 조직도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가 밝혀낸 '박사방' 조직도

증거 분석을 통해 본 피해 상황은 어땠나.
한눈에 봐도 협박 때문에 억지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영상, 무릎을 꿇고 울면서 비는 영상, 정상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혐오스럽거나 비도덕적인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장면 등을 봤다. 분석을 위해 반복적으로 이런 영상을 보는 게 매우 힘들었다. 
기록에 담긴 피해자 신상 정보를 모두 가렸다.
박사방 피의자에 대한 재판이 시작되자 변호인들의 증거 기록 복사 신청이 쇄도했다. 각 피의자의 기록은 각 30~40권이다. 기록마다 피해자의 사진과 이름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포함됐다. 피해자의 신원 보호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한정된 시간에 기록 양이 많아 여조부 수사관과 실무관 전체가 동원돼 피해자 사진과 이름을 A4 용지와 검은색 종이테이프로 가렸다. 텔레그램 대화 속의 이름은 크기가 너무 작아 0.2㎝ 이하 크기로 붙이기까지 했다. 이를 통해 피해자들의 신상 정보 유출로 인한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박사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이 지난해 3월 25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박사방 사건'의 주범 조주빈이 지난해 3월 25일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주요 피의자에게 중형이 선고됐다.
무기징역을 구형하긴 했지만, 법원의 판단에 저희도 놀랐다. 범죄 조직의 형태를 법원이 더 다양하게 인정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한 것 같아 보람이 있었다.
재발 방지를 위해 어떤 게 필요한가.
메신저 또는 온라인 플랫폼 운영사가 성 착취물 유포·확산 범죄를 예방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 이 사건의 범죄단체 처벌 사례가 피해자의 인격을 파괴하는 집단적 성 착취 범행의 재발 방지와 유사한 범죄의 엄중 처벌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
더 하고 싶은 말은.
올해의 수사관 같은 영광스러운 상을 타게 된 것은 전적으로 중앙지검 여조부 소속 검사, 수사관, 실무관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2018년부터 지금까지 중앙지검 여조부에서 근무하면서 연극 연출가 이윤택 미투 사건, 고(故) 장자연씨 재수사 사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아동학대 및 가정 폭력 사건 등을 담당했다. 지난해 7월에는 그 전문성을 인정받아 중앙지검 여조부 전문관으로 보임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앞으로 여성·아동범죄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더 강화하고 싶다.

강광우 기자 kang.kwang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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