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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탄핵만 2번? ···가결 땐 4년 뒤 대선 재도전 길 막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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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로이터=연합뉴스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 [로이터=연합뉴스ㅔ

미국 의회가 사상 초유의 의회 점거에 대한 책임을 물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고 있다. 하원 민주당은 오는 11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을 제출하고 이르면 13일께 본회의 표결을 추진할 계획이다.

하원 민주당, 트럼프 두번째 탄핵 추진 #"대선 뒤집기, 민주주의 완결성 방해" #상원 통과하면 영구적 공직 출마 금지

하원 과반 찬성으로 탄핵안이 가결되면 트럼프는 미국 역사상 두 차례나 하원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첫 대통령이 된다. 지난해 12월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하원에서 탄핵당한 지 13개월 만에 다시 탄핵을 마주하게 됐다.

탄핵소추안 초안을 공동 작성한 테드 리우 하원의원(캘리포니아)은 9일 트위터에서 "우리는 오는 월요일 하원에서 프로 포르마(pro forma· 짧은 임시회의) 회기를 열어 탄핵안을 제안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날 밤까지 의원 190명 이상이 공동 발의자로 참여했다고 전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전날 의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대통령이 즉각, 그리고 자진해서 사임하지 않으면 의회는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히면서 하원 운영위원회에 탄핵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또 의원들에게 대통령 직무 수행 권한 박탈을 허용하는 수정헌법 25조를 발동하기 위한 법안 초안을 마련할 것도 요청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탄핵'과 '직무수행 정지'라는 두 개의 무기로 트럼프 대통령을 끌어내리겠다는 계산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불복 소송을 주도한 루디 줄리아니 변호사와 헌법 전문인 앨런 더쇼위츠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할 것으로 알려졌다고 CNN이 전했다.

①탄핵 사유는?

하원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적용한 탄핵 혐의는 '내란 선동(incitement of insurrection)'이다. 대선 패배 결과를 뒤집기 위해 지지자들에게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를 확정하는 회의가 열리는 의회를 점거하도록 부추겼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 발언과 행보가 대선 절차를 방해해 민주주의 체제의 무결성을 위협하고 평화로운 권력 이양을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2월 19일 트위터에 "1월 6일 워싱턴DC에 큰 시위가 있을 것이다. 거기 있어라. 거칠어질 것"이라고 쓴 것을 시위 선동으로 봤다.

트럼프 지지자 수백 명이 폭도로 변해 의회를 4시간 동안 점거하고, 이 과정에서 경찰과 지지자 5명이 숨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가 크게 이겼다"는 거짓 주장을 하면서 승복하지 않는 데 그치지 않고 지지자들에게 의회로 가서 빼앗긴 승리를 되찾으라고 명령했다고 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의회 점거 2시간 전 연설에서 "우리는 의회로 갈 것이다. 가서 용감한 의원들에게는 용기를 주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격려하지 않을 것"이라며 "약하면 이 나라를 되찾을 수 없다. 힘을 보여줘야 한다. 강해져야 한다"며 사실상 시위대의 의회 난입을 유도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일 브래드 래펜스퍼거 조지아주 국무장관과 통화에서 조지아주 대선 결과를 뒤집을 수 있도록 "1만1799표를 찾아내라"고 위협한 사실도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9일밖에 안 남았지만, 그 사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명령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대통령직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미셸 플러노이 전 국방부 차관은 공영라디오 NPR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주의를 딴 데로 돌리기 위해 해외에서 군사작전을 개시할 경우 국가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②탄핵안 통과 가능성은? 

하원 탄핵안은 하원의원 435명 가운데 절반(218명) 이상 찬성하면 통과된다. 9일 밤까지 민주당 의원 190여명이 탄핵안에 서명했다. 하원 민주당 의석은 222석이다. 탄핵안 가결이 유력하다.

하원에서 탄핵당하면 상원에서 유·무죄 평결을 받게 된다. 상원의원 3분의 2(67명)가 찬성해야 유죄가 된다. 유죄가 되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한다.

아직은 탄핵에 찬성하는 공화당 의원은 소수다. 현재까지 리사 머코우스키 상원의원(알래스카)이 유일하게 탄핵 찬성에 투표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벤 새스 상원의원(내브래스카)은 검토해보겠다고 했고, 팻 투미 상원의원(펜실베이니아)은 "탄핵감 범죄"라고 공감하면서도 표결에 대한 입장은 밝히지 않았다.

상원은 민주당과 공화당이 50석씩 나눠 갖고 있다. 유죄 평결을 끌어내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게 하려면 공화당 의원 17명을 설득해야 한다. 미국 언론은 임기 종료 전 트럼프 대통령을 쫓아내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③그런데 왜 추진하나?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 하원이 탄핵에 성공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미 역사상 처음으로 두 차례 하원에서 탄핵안이 통과된 대통령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만약 상원에서 유죄 평결이 내려지면,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는 공직에 출마할 수 없도록 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 헌법에 따르면 상원은 표결로 트럼프 대통령이 영구적으로 미국의 어떠한 공직도 수행할 수 없도록 자격을 박탈할 수 있다. 즉 트럼프 대통령의 2024년 대선 출마를 막을 수 있다. 대선 출마 자격 박탈은 민주당뿐 아니라 차기를 노리는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탄핵에 매료될 수 있는 요인이라고 온라인매체 복스는 전했다.

폭스뉴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탄핵당해 차기 대선에 출마하지 못하는 상황에 관한 논의가 공화당 의원들 사이에서 오가고 있다고 전했다.

④퇴임한 대통령도 탄핵 가능? 

공화당 의회 1인자인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는 의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바이든 당선인 취임식 이전에 트럼프 탄핵과 관련해 상원이 소집되기 어렵다"고 밝혔다. 상원의원 100명 전원 동의가 있어야 회기를 열 수 있기 때문이다.

미 헌정 사상 고위 관료가 퇴임 후 탄핵당한 사례는 있지만, 역대 대통령 가운데는 없다. 일부 학자들은 퇴임 후에도 탄핵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퇴임이 대통령의 범죄를 다루지 못할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법의 취지라는 것이다.

⑤탄핵, 트럼프에게 꼭 불리한가? 

탄핵이 트럼프를 정치적으로 더 유리한 위치에 놓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공화당 소속 제프 플레이크 전 상원의원은 CNN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 책임론에는 충분히 공감하지만, 민주당이 탄핵을 추진하면 도리어 트럼프에게 '명예 훈장'을 주는 꼴이 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의 기성 정치인들로부터 탄압받는 피해자 이미지를 얻어 지지자를 더욱 결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⑥ 트럼프를 제어할 다른 방법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내각이 절반 이상 동의하면 수정헌법 25조에 따른 대통령의 직무를 정지할 수 있다. 지난 7일 펠로시 하원의장과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가 펜스 부통령이 행동에 나설 것을 주문했으나, 펜스 부통령은 동의하지 않았다고 측근들이 전했다.

하지만 이틀 새 분위기가 바뀌었다. 펜스 부통령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수정헌법 25조 적용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CNN이 보도했다. 다만, 이 조항은 대통령의 피격·수술 등 업무 불능 상태에 놓인 경우를 상정한 규정이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적용 가능한지 법적 논란이 될 수 있다.

찬성론자들은 이 조항이 신체적 뿐만 아니라 정신적 업무 불능도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반대론자들은 법 적용 범위를 너무 넓히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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