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중국에서 가장 가슴을 졸이고 있는 사람은 누굴까. 마윈(馬云)이 아닐까 싶다. 중국에서 ‘살아있는 재물신’으로 불리던 그가 이젠 ‘큰길 지나는 쥐(過街老鼠)’ 취급을 받고 있다. 여기저기서 “때려잡아라”는 외침이 들린다.
‘출국 금지설’ ‘실종설’ 등과 같은 흉흉한 소문도 퍼진다. 마윈의 소셜미디어 계정은 지난해 10월 이후 '멈춤' 상태다. 중국 굴기를 대표하는 마윈이 어떻게 이 지경까지 이르렀나. 경종이 울린 건 지난해 11월 2일이다.
마윈과 알리바바 산하 핀테크 기업인 앤트그룹(螞蟻集團)의 징셴둥(井賢棟) 회장 등이 중국의 금융감독관리 4대 부처와 약담(約談)을 하게 됐다. 약담은 약속해 대화를 갖는 것인데 실제론 불려가 야단을 맞는 일이다.
약담의 결과는 끔찍했다. 세계 최대의 기업공개(IPO)로 주목을 받던 앤트그룹의 상장이 좌초됐다. 알리바바 주가는 폭락했고 마윈 재산은 이후 두 달 동안 120억 달러(약 13조원)가 증발했다.
왜 이렇게 됐나. 처음엔 그 원인으로 지난해 10월 24일 상하이에서 열린 와이탄(外灘) 금융서밋이 지목됐다. 이제까지의 성공에 도취한 것일까. 마윈은 “중국 국영은행이 전당포 영업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중국의 금융 시스템을 질타했다.
마윈에 앞서 등장해 ‘금융 안정’을 강조하는 발언을 했던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측근 왕치산(王岐山) 국가 부주석의 얼굴에 먹칠하는 순간이었다. 앤트그룹 상장이 정지되자 “마윈이 괘씸죄에 걸렸다”는 소문이 돌게 된 배경이다.
한데 최근 중국 당국의 조치를 보면 상황이 단순한 불경죄 처벌 수준이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중순의 정치국 회의, 그리고 하순의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반독점 강화와 자본의 무질서한 확장 방지”가 강조됐다.
누가 봐도 마윈의 알리바바와 앤트그룹을 겨냥했음을 알 수 있다. 시 주석이 주재하는 지도부 회의에서 알리바바에 대한 단속이 국가의 시책으로 결정됐음을 보여준다.
지난달 14일 알리바바는 당국에 알리지 않고 인수합병을 해 반독점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50만 위안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또 ‘이선일(二選一)’로 불리는 양자택일 강요 문제와 관련해서도 반독점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게 알려졌다.
양자택일 강요란 알리바바가 타오바오(淘寶) 등 자사 플랫폼에 입점한 업체들에 대해 경쟁사인 징둥(京東) 등에 입점하지 못하게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가 하면 앤트그룹은 지난달 28일 본업인 전자결제 업무에만 충실하라는 중국 금융당국의 통보를 받았다. 그동안 앤트그룹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던 소액 대출 등 전통적 금융산업 영역은 넘보지 말라는 지시와 함께다.
잇따른 처벌이 가해지며 마윈의 알리바바 제국이 무너지고 있다는 말이 돌 정도다. 그리고 이런 된서리를 맞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는 괘씸죄를 넘어 마윈의 알리바바가 중국 공산당의 중국 지배를 위협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금융 리스크가 거론된다. 앤트그룹은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소액 대출을 하는데 그 돈은 은행에서 가져온다. 대출 리스크는 은행이 지고 앤트그룹은 위험 없이 중개 수수료를 챙긴다. 이미 5억 명에 대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중국인민은행 금융안정국장 쑨톈치(孫天琦)는 “무면허 운전과 같다”며 비난을 퍼붓는다. 앤트그룹의 문제는 단순히 금융 리스크에 그치지 않는다. 알리바바 왕국은 8억 8000만 명의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갖고 있다.
알리바바는 본업인 전자상거래에서 시작해 전자결제, 물류, 외식배달, 클라우드,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인공지능(AI), 반도체, 여행, 스마트시티 관리 등 이미 중국인의 일상 모든 곳을 파고든 상태다.
특히 알리바바에 차곡차곡 쌓인 엄청난 빅데이터는 가공할 힘이다. 중국인이 무얼 먹고 어떤 옷을 사며 어디에 사는지 등 중국인의 일상을 통제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파워를 구축한 것이다.
중국인의 일거수일투족 통제를 바라는 공산당 입장에선 이보다 더한 경쟁 상대가 없다. 더 놀랄 일은 알리바바가 그 힘을 자각하고 휘두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 알리바바 부총재 장판(蔣凡)의 스캔들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장판의 사생활 추문이 터졌을 때 알리바바가 30% 지분을 가진 시나닷컴이 개입해 순식간에 장판과 관련된 모든 부정적인 관련 보도를 웨이보(微博, 중국판 트위터)에서 내렸다. 자신이 장악한 미디어 힘으로 자신의 추문을 덮었다.
중국 공산당 선전부 부부장이자 인터넷판공실 주임인 쉬린(徐麟)은 최근 “여론 공작의 주도권을 굳건하게 장악해 당의 영도 약화를 방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알리바바가 자본의 힘으로 미디어를 장악해 여론 조종에 나서는 걸 막아야 한다는 경고였다.
중국이 개혁개방 정책을 채택한 이후 중국에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구별이 모호해진 건 사실이다. 마윈의 알리바바 사태는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라는 걸 일깨워준다. 자본의 팽창이 공산당 지배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되면 가차 없이 칼을 빼 들어 쳐내는 체제 임을 다시 상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