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강주안의 시선

코로나19 감염소가 된 동부구치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강주안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강주안 논설위원

교도소 수형자는 전과나 생활 태도 등에 따라 네 가지 등급으로 분류한다. 가장 양호한 S1 등급은 시설 내에서 상대적 자유를 누리는 반면, S4급은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처음 수감될 땐 대개 S2나 S3급을 받는다. 별문제가 없으면 2급, 전과가 많거나 죄질이 나쁘면 3급이다. 수형 자세에 따라 등급은 오르내린다.

독거실·혼거실 섞은 치명적 구조 #DJ가 교정직 힘 실어줬지만 약화 #남탓 멈추고 교도소 확충 나서야

또 다른 구분이 있다. 혼자 지내는 독거실과 여러 명이 함께 지내는 혼거실 수용자다. 형집행법 14조는 ‘수용자는 독거수용한다’고 규정한다. 독거실 부족 등 예외의 경우에 한해 혼거하도록 했으나 현실은 다인실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독거실은 이명박·박근혜 같은 전직 대통령이 쓰기도 하지만 대개는 골치 아픈 수용자가 들어간다. 한 교도소 직원은 “독거실 20명을 관리하는 게 혼거실 100명을 다루기보다 힘들다”고 설명한다. 교도관 한 명이 많게는 100명 넘는 수용자를 감시하는 근무 형태다. 운동이나 접견을 하려고 수시로 수용실 밖으로 나오기 때문에 긴장을 늦추면 봉변을 당한다. 2004년 대전교도소에서 철제 둔기를 숨긴 수용자가 교도관의 머리와 목을 내리쳐 살해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수용자를 빈틈없이 관리하려면 독거실과 혼거실을 반드시 분리해야 한다고 교도소 직원들은 말한다. 양쪽에 차별화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이유다. 2017년 문을 연 서울동부구치소에 이런 기본적인 사항이라도 반영했다면 이번 코로나19 감염 사태가 이렇게까지 악화되진 않았으리라는 주장이 나온다. 신축 구치소인데도 같은 층에 1인실과 다인실을 섞어놓는 바람에 사태 초기에 확진자와 밀접접촉자를 분리하기 어려웠다는 얘기다.

동부구치소 사진=동부구치소

동부구치소 사진=동부구치소

동부구치소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간 주범이 법무부와 서울시 그리고 방역 당국의 어설픈 대처라는 진단엔 이론이 없다. 사망자가 나오고 여성수용자가 첫 감염되는 와중에도 세 기관은 상대를 손가락질하기 바쁘다. 보다 심각한 건 근본 처방이 안 나오면 교도소 집단 감염을 막기 어렵다는 점이다. 핵심은 과밀 수용이다. 교도소 정원보다 훨씬 많은 인원을 빽빽이 밀어 넣는 관행은 인권 차원에서 비난을 받아왔다. 이젠 재소자와 직원이 서로에게 바이러스를 옮기고 가족과 외부인에까지 퍼뜨리는 집단감염의 원인이 됐다. 구치소 직원들은 전염을 우려해 비번인 날도 귀가를 못 하고 잘 곳을 찾아 떠돈다.

〈YONHAP PHOTO-3496〉 동부구치소, 일부 수용자 이감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다수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30일 일부 수용자 이감을 위해 수용자들을 태운 버스가 출발하고 있다. 2020.12.30   jjaeck9@yna.co.kr/2020-12-30 14:12:08/ 〈저작권자 ⓒ 1980-202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YONHAP PHOTO-3496〉 동부구치소, 일부 수용자 이감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다수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서울 송파구 동부구치소에서 30일 일부 수용자 이감을 위해 수용자들을 태운 버스가 출발하고 있다. 2020.12.30 jjaeck9@yna.co.kr/2020-12-30 14:12:08/ 〈저작권자 ⓒ 1980-202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사람의 공간 영역엔 친밀한 거리(0~0.5m), 개인적 거리(0.5~1.2m), 사회적 거리(1.2~3.6m), 공적 거리(3.6m 이상)가 있다고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분석했다. 친밀한 사이가 아닌 한 사회적 거리가 유지돼야 심리적 안정이 가능하다. 여기에 비춰보면 수용기관 현실은 심각하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 과밀수용에 대한 위헌 결정을 하면서 “1인당 적어도 2.58㎡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으나 지난 5년을 허송했다. 교정본부에 대한 법무부의 무관심을 원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동부구치소 건립은 노무현 정부 시절 구상이 나왔고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궤도에 올라 문재인 정부 들어 문을 열었다. 이 과정에서 ‘독거실과 혼거실을 다른 층으로 분리해달라’는 교정 당국의 의견은 무시됐다. 한 전직 교도소장은 “교정은 전문 분야인데도 정작 교도소 구조 결정 등에 권한이 없다. 수용자와 교도관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들이 시설 구조를 결정한 결과가 동부구치소의 모습”이라고 꼬집는다.

한 정부 관계자는 “법무부 조직에서 교정본부는 검사가 아닌, 교정직 공무원이 책임자를 맡다 보니 힘이 없다”고 했다. 법무부의 다른 분야처럼 교정 부문 역시 정부 수립 이후 검사가 교정국장을 맡아왔다. 김대중 정부가 이를 교정직 공무원으로 바꿨다. 한 검찰 관계자는 “오랜 수감 생활을 했던 DJ가 고마웠던 교도관들에 대한 배려로 책임자를 검사에서 교정직으로 바꿨다는 게 정설”이라고 말한다. 이런 보답이 오히려 교정업무를 관심 밖으로 밀어낸 건 아이러니다.

〈YONHAP PHOTO-2032〉 DJ 수감 시절 면회 온 이희호 여사   (서울=연합뉴스) 김대중평화센터가 12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생전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은 1981년 두 아들과 함께 청주교도소에서 고 김 전 대통령을 면회한 이 여사 모습. 2019.6.12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2019-06-12 11:23:56/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YONHAP PHOTO-2032〉 DJ 수감 시절 면회 온 이희호 여사 (서울=연합뉴스) 김대중평화센터가 12일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생전 모습을 공개했다. 사진은 1981년 두 아들과 함께 청주교도소에서 고 김 전 대통령을 면회한 이 여사 모습. 2019.6.12 [김대중평화센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2019-06-12 11:23:56/ 〈저작권자 ⓒ 1980-2019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정부와 서울시의 무능한 엇박자는 어떻든 봉합될 것이다. 이미 1200명 정도가 감염됐으니 더 나빠질 여지도 없다. 그러나 교정시설 밀집 해소와 독거실 층 분리 같은 근본 대책을 방치하면 비극은 언제든 재현된다. “죄질에 따라 각각의 방역 대책을 시행해야 하는 교도소는 일반 시설보다 몇배는 어렵더라”고 한 방역전문가(박향 광주광역시 국장)의 경험담을 새겨듣고, 교정 전문가와 함께 당장 설계도를 그려라. 욕을 먹더라도 교정시설 확충에 나서야 한다. 과밀 해소를 주문한 헌재의 시한이 2년 남았다. 서울 성동구치소를 동부구치소로 옮기는 데만 13년 걸린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강주안 논설위원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