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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중 『은둔기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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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은둔기계

은둔기계

사회의 지배적 여론과 정동으로부터 집요하게 탈주하는 것, 과잉 연결된 관계들을 해체하는 것, 인간들의 세계를 떠나 비인간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 과열된 자본주의적 삶의 형식을 벗어나는 것,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새로운 가능세계를 발명하는 것, 이것이 21세기의 새로운 은둔의 실천이다.

김홍중 『은둔기계』

말도, 욕망도, 연결도, 소비도 많은 ‘과잉의 시대’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인 김홍중은 ‘은둔’을 이 시대를 헤쳐가는 삶의 방법으로 제안한다. “사회적인 것, 지배적인 것, 패권적인 것으로부터의 필사적 탈주” “사적 삶의 추구가 아니라 지구적  공(公)과 연결되는 현장의 구축”으로서의 ‘은둔’이다.

예컨대 ‘과도한 연결, 과도한 생산, 과도한 학습, 과도한 경쟁 등에서 벗어나 덜 움직이고, 덜 먹고, 덜 쓰고, 덜 존재하기’. 나아가 ‘인간의 인간성에 자기제한을 가하고, 인간성이 누려온 특권을 내려놓기’. 김 교수는 “COVID-19가 은둔을 라이프스타일의 하나로 정립시켜가고 있다”고 썼다.

“극단적인 것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빠르게 범용한 것이 되어간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역사 속에서 가장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는 것들은 평범하고, 중간적이고, 평상적인 것들이다.” “전진이 아니라 물러남의 방식으로 세계에 참여하는 법, 이것은 세계도피가 아니라 다른 방식의 세계구성이다.” “고독은 혼자 있는 자의 심정이 아니라 욕망하지 않는 것과의 연결을 끊은 자가 확보한 자유다.” 이런 단상들을 모은 산문집이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