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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가족] 국내선 병명도 없던 간질성 폐 질환 치료에 이정표 세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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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 탐방 건국대병원 김영환 교수

김영환 교수는 환자의 거주 환경과 직업, 취미생활 등을 고려한 다각적 접근법으로 호흡기 질환의 원인을 찾아내고 치료한다. 김동하 객원기자

김영환 교수는 환자의 거주 환경과 직업, 취미생활 등을 고려한 다각적 접근법으로 호흡기 질환의 원인을 찾아내고 치료한다. 김동하 객원기자

폐는 하루 24시간 365일 쉬지 않고 일하며 수많은 유기물·무기물을 흡입한다. 이 과정에서 생기는 200여 가지 이상의 질환을 일컫는 질병이 ‘간질성 폐 질환’이다. 간질은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이 일어나는 폐포(허파꽈리)와 폐포 사이를 말한다. 다양한 원인 물질마다 질병명이 붙는데, 원인이 밝혀진 것만큼이나 밝혀지지 않은 것도 많다. 이 중 원인을 알 수 없이 폐가 굳어간다는 뜻의 ‘특발성 폐섬유증’은 폐암만큼이나 치명적인 난치성 희귀 질환이다.

호흡기·알레르기 질환 권위자 #통합적 접근으로 병 원인 규명 #폐섬유증은 진행 억제에 초점

 건국대병원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김영환 교수는 국내 간질성 폐 질환과 폐섬유증 치료의 권위자다. 지난 30여 년간 서울대 암병원 폐암센터장과 대한폐암학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며 난치성 폐 질환의 불모지였던 치료 환경에 이정표를 제시했다. 김 교수는 “폐 질환은 서서히 숨이 막히다가 사망에 이를 수 있어 환자의 공포심이 큰 질환”이라며 “원인이 너무나 다양해 병인을 밝히지 못하고 있는 질환이 여전히 많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간질성 폐 질환과 폐섬유증에 관심을 갖게 된 건 2000년대 초반이다. 당시 김 교수는 폐암의 조기 진단과 치료에서 다학제적 접근을 강조하며 국내 대한폐암학회 창립을 주도했다. 김 교수는 “폐암학회를 발족해 폐암 치료 환경에 대해 어느 정도 기틀을 잡아놓고 나니 호흡기 질환 분야에서 마이너에 속했던 간질성 폐 질환과 폐섬유증에 관심이 갔다”며 “환자 수가 적고 질병에 대한 관심이 적어 산소호흡기를 달고 죽어가는 환자가 많았던 때였다”고 회상했다.

병인 모르던 질환 밝혀내 환자 살려

호흡기 질환에는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환자의 거주 환경, 직업, 취미생활 같은 요인이 질병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다. 김 교수는 “혈액검사나 X선·CT(컴퓨터단층촬영) 결과로 진단하는 병이 많지만 호흡기 질환 중에는 검사해도 병의 원인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꽤 있다”며 “외국에는 치료 사례들이 그나마 있는데 국내에서는 처음 보는 질환도 많았다”고 말했다.

 소외되기 쉬웠던 희귀 질환 치료의 난제를 푸는 데 주저하지 않고 환자 치료에 집요함을 보였던 김 교수의 기질은 국내 폐 질환 치료의 저변을 넓히는 원동력이 됐다. 그가 국내에서 밝혀낸 폐 질환이 여럿 있다. 대표적인 것이 ‘미만성 범세기관지염’이다. 말초의 세기관지에 염증이 생기기 시작해 상행으로 퍼지는 병이다. 김 교수는 “천식처럼 보이는 질환인데 기관지 확장증이 심하고 약도 잘 안 들어 환자가 오랫동안 고생하다 사망하는 병이었다”며 “1990년대엔 국내에 병명도 없었는데 치료를 위해 수많은 케이스를 보다가 일본에서 비슷한 환자를 모아 병을 정의한 걸 찾아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국내에서 미만성 범세기관지염 환자의 사례를 수백 케이스 이상 찾아 국제학술지에 발표하고 국내 호흡기 의사들에게 알렸다. 일본 외 국가에서 처음으로 보고하는 미만성 범세기관지염이었다. 김 교수는 “특정한 항생제를 저용량으로 6개월~2년을 쓰면 완치되는 질환이었다”며 “산소호흡기를 달던 사람들이 멀쩡해져서 퇴원했는데 굉장히 인상 깊었다”고 말했다.

 ‘여름형 과민성 폐렴’도 김 교수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케이스 리포트를 발표한 질환이다. 여름철 고온다습한 기후 속에서 곰팡이 항원에 민감한 사람들이 걸리는 간질성 폐 질환이다. 김 교수는 “다다미 생활을 하는 일본에서 잘 발생하는 질환이었는데 제주도에서 올라온 환자의 임상 증상과 매우 비슷했다”며 “이 질환을 처음 규명하고 치료한 일본 구마모토의대 의료진에게 환자의 사례를 보내 샘플링과 혈청 검사를 한 결과, 일본 외 지역에서 처음으로 해당 질환이 있음을 규명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간질성 폐 질환인 ‘폐포단백증’도 김 교수가 국내에서 처음 치료한 질환이다. 폐포는 공기가 들어가 있는 공간인데, 여기에 단백성 물질이 차면서 숨 쉬기가 힘들어진다. 김 교수는 “진단은 어렵지 않지만 보고된 사례 없이 교과서에서만 보던 질환이었다”며 “폐를 씻어서 단백질을 빼는 전폐세척술이 교과서에 치료법으로 나와 있어 흉부외과 동료와 함께 폐 세척을 위한 기구를 만들었다. 한쪽 폐는 기계 호흡을 시키고 또 다른 쪽엔 생리식염수를 충분히 주입했다가 빼내는 걸 반복해 폐 세척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간질성 폐 질환 중에서도 폐섬유증은 폐암과 함께 치료가 어려운 대표적인 폐 질환으로 꼽힌다. 폐에 반복적인 미세 손상 이후 손상된 세포가 재생하는 과정에서 섬유화되는 것이다. 원인을 모르는데 점점 굳어가는 병을 특발성 폐섬유증이라 한다.

한번 섬유화된 폐는 되돌리기 어렵다. 완치가 힘들기 때문에 진행을 늦추는 것이 치료 목표다. 김 교수는 “다행히

7년 전부터 특발성 폐섬유증에 치료제가 나오면서 진단 후 4~5년 생존하던 환자가 지금은 7~8년까지도 생존한다”며 “불치병이었는데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의료진도 관심이 커지고 환자도 적극적으로 치료에 의지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 듀크대서 폐 이식 시스템 공부

이런 폐섬유증 치료의 최후 수단은 폐 이식이다. 김 교수는 2011년에 세계적으로 폐 이식을 가장 활발히 하던 미국 듀크대학에서 연수하며 시스템을 배워와 서울대병원 폐이식팀을 이끌었다. 김 교수는 “폐 이식을 하는 가장 많은 질환이 폐섬유증인데 지금도 5년 생존율이 50~60%에 불과한 어려운 수술”이라며 “폐 이식 전후 환자의 상태를 최적으로 끌어올리고 다학제로 접근하는 방식을 시스템화하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폐는 희귀 질환이 많은 장기다. 하지만 최근 다양한 신약이 나오면서 관리할 수 있는 질환으로 변화한 것들이 적지 않다. 2006년 발족한 대한 결핵 및 호흡기 학회 산하의 간질성 폐 질환 연구회는 전국적으로 환자의 등록 자료를 만들고 실태를 분석하고 있다. 김 교수는 국내 간질성 폐 질환 전문가들과 함께 학술 잡지를 1년에 두 번 발간하며 치료 환경 개선을 주도하고 있다. 김 교수는 “어떤 간질성 폐 질환의 경우 환자가 예전엔 10년밖에 생존하지 못했는데 최근엔 질환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약을 통해 몇십 년씩 생존하기도 한다”며 “건국대병원에서 특발성 폐섬유증을 비롯한 희귀 난치성 폐 질환의 진료를 활성화하기 위해 희귀질환센터를 개소하고 진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영환 교수가 풀어주는 폐결절·폐암 궁금증

“폐결절은 암과 무관한 경우 많고, 말기 폐암도 치료법 다양해요” 

건강검진에서 폐결절이 나왔는데 혹과 같은 뜻인가.
“폐결절은 폐에 생기는 혹 중 크기가 좀 작은 것을 말한다. 보통 3㎝를 기준으로 이보다 크면 혹, 작으면 결절이라고 한다. 고립성 폐결절이라는 건 전체 폐에 단 하나만 있는 것이고 숫자가 많으면 다발성이라고 한다.”
암으로 발전할 수 있나.
“결절의 대부분은 염증을 앓은 흔적이다. 암이 아닌 결절이 훨씬 더 많다. 결절일 경우에는 X선, 단순 흉부 촬영, 더 자세히는 흉부 CT(컴퓨터단층촬영)검사를 하기도 하는데 암 확률이 높지는 않다. CT 촬영에서 발견되는 결절 중에 암으로 확진되는 경우는 3% 미만이다. 그래서 비흡연자에게서도 많이 나타난다.”
수술로 떼야 하나.
“흉부 CT 결과를 보고 결절의 크기·모양, 흡연력, 직업력, 암 진행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그런 다음 결절의 크기나 모양이 암일 확률이 높으면 조직검사를 하고, 암이 강력히 의심되면 수술해서 뗀다. 형태 등으로 암일 확률이 있으나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는 2~3개월 후에 추적 검사를 한다. 모양·크기가 암이 아닐 확률이 높은 것은 추적 검사를 6개월~1년 후에 한다. 우리나라는 폐결절 원인이 결핵인 경우도 많다. 이럴 땐 결핵 치료를 한다. 곰팡이가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항진균제를 쓴다. 혹 자체가 양성종양인 경우는 그냥 둬도 된다.”
초기 폐암을 증상으로 알 수 있나.
초기 폐암은 증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증상이 있어서 오는 환자는 대개 3~4기다. 3·4기인데 증상이 없는 경우도 꽤 많다. 따라서 조기 검진을 위해서는 폐암 발병 위험이 높은 30갑년 이상의 흡연력을 가진 사람의 경우 1년에 한 번 저선량 CT를 찍는 것이 좋다.
폐암 환자는 좋은 공기 맡으며 고기 안 먹는 게 건강에 이롭나.
“담배를 끊는 게 제일 중요하다. 물론 좋은 공기가 도움되긴 하나 폐암 진단을 받았다고 공기 좋은 곳을 꼭 찾아가야 하는 건 아니다. 고기를 피할 필요도 없다. 암 치료 과정을 견디기 위해서는 뭐든 잘 먹는 게 도움된다. 영양을 잘 섭취해야 한다.”
말기 폐암은 치료가 불가능한가.
“얼마 전까지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기여도 방사선 치료나 항암 치료를 같이하면 완치 가능성이 있다. 최근에는 4기 폐암 환자에게도 효과가 좋은 치료제들이 있어서 일상생활에 지장 없이 몇 년간 사는 분도 많다. 비흡연자 여성 폐암의 경우 표적치료제가, 흡연자 폐암에는 면역항암제가 개발돼 효과가 있기도 하다. 새로운 약제가 많이 나와 있으니 희망을 잃지 마시기 바란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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