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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ICJ 제소에 또 경제보복? "제 발등 찍는다" 반대 여론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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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서울중앙지법의 위안부 피해자 배상 판결과 관련해 여러 대응 방안을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상은 9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전화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국제법에 위배되는,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비정상적 상황이 발생했다"면서 "모든 선택을 염두에 두고 의연하게 대응하겠다"며 관련 조치에 나설 것을 시사했다.

아사히 "ICJ, 일본 정부 유력 카드" #한국 불응하면 소송 자체 성립 안돼 #경제 보복 나섰다 '발등 찍기' 우려도 #"한국 움직임 등 당분간 추이 지켜볼 것"

2019년 11월 23일 일본 나고야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상(오른쪽)이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지지통신 제공]

2019년 11월 23일 일본 나고야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과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상(오른쪽)이 회담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지지통신 제공]

가장 먼저 언급되는 조치는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다. 아사히 신문은 10일 일본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일본 정부가 유엔 최고법정인 ICU에 이 문제를 제소하는 방침을 유력한 선택지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ICJ 제소가 유력 방안으로 떠오른 건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한국 법원 판결에 반발하는 근거는 '한 국가의 법원이 타국을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관습법상의 '주권면제'(국가면제) 원칙이다.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에 배상 판결을 내린 것은 이 원칙에 위배된다는 게 일본 정부의 주장이다.

반면 서울중앙지법은 국가가 조직적으로 저지른 반인도범죄인 위안부 피해는 국제법규상 상위에 있는 ‘강행 규범’을 위반한 것이라 주권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ICJ 제소 땐 위안부 다시 이슈될 것" 신중론도

2004년 이탈리아 대법원은 한국 법원과 같은 논리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강제 노역을 했던 루이키 페리니가 독일 정부를 상대로 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독일 정부에 배상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일명 '페리니 사건'이다.

이후 독일 정부는 이 사안이 주권면제 원칙을 위반한다며 ICJ에 제소했고, ICJ는 최종적으로 독일의 손을 들어줬다. 일본 정부는 이를 근거로 위안부 판결이 ICJ 소송으로 진행될 경우 같은 결론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 소송대리인 김강원 변호사가 8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위안부 피해 할머니 소송대리인 김강원 변호사가 8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일본이 이 문제를 ICJ에 제소한다 해도 한국 정부가 이에 불응할 경우 소송 자체가 무효화된다. 한국은 상대국이 ICJ에 소송을 제기하면 이를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ICJ의 '강제(의무적) 관할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일본은 1958년 강제 관할권을 수락했다.

이와는 다른 이유로 ICJ 제소에 대한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은 10일 "ICJ에서 다툴 경우 주권면제를 인정받을 수 있지만, 위안부 문제가 다시 (국제적) 쟁점으로 떠오를 우려가 있다"며 이 방안의 실효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정부 내에서 나온다고 전했다.

"여론 크게 동요하면 보복 조치 나설 수도" 

일본이 지난 2018년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 때처럼 경제적 보복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두 자릿수에 이르는 (보복) 옵션을 검토 중"이라면서 ▶한국 정부 등이 소유한 일본 내 자산압류 ▶한국산 제품 수입 관세 인상 ▶한국인 입국 비자 발급 제한 등을 언급하다 결국 '반도체 산업 핵심 원료의 수출 규제'라는 조치를 꺼내 들었다.

특히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가 취임 4개월 만에 지지율이 급락하며 위기를 맞은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보복 카드를 활용해 지지층 결집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수도권에 긴급사태가 선포된 8일, 한 시민이 불이 꺼진 가나가와현 요코하마 상점가를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수도권에 긴급사태가 선포된 8일, 한 시민이 불이 꺼진 가나가와현 요코하마 상점가를 지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고려할 것은 일본 내 상황이다. 일본은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 급증으로 도쿄 등 수도권에 긴급사태가 선포된 상태다. 스가 총리로서는 코로나19를 수습하는 게 '제1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로 일본 경제가 주저앉은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보복 조치로 일본 경제에 부담이 가해질 경우, 또 하나의 악수가 될 수도 있다.

일본 정치에 정통한 한 외교소식통은 "일본 정부로서는 일단 한국의 움직임과 여론의 추이를 동시에 지켜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정부 내에서 가능한 방안들을 검토하고 있다가 만약 한국에 대응 조치를 취하라는 여론이 높아지면 이 중 하나를 꺼내 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아사히 신문도 일본 정부가 ICJ 제소를 염두에 두고는 있지만, 우선 원고 측의 일본 정부 자산 압류 추진 상황 등 향후 소송 추이를 지켜볼 것으로 전망했다. 모테기 외무상은 한국의 대응을 촉구하기 위해 조만간 다시 강경화 외무장관과 전화 회담을 할 예정이라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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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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