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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디지털 화폐 경쟁에 기관까지 가세, 비트코인 뜀박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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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호 09면

비트코인 광풍 - 비트코인 급등 왜

그야말로 폭발적이다. 지난해 9월 1만 달러였던 가격이 넉달 새 280% 올랐고, 시가총액은 7184억 달러(약 784조8520억원, 8일 기준)로 불어 나스닥 시가총액 5위인 테슬라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오를 만큼 오른 듯 보이지만 많은 전문가는 여전히 상승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비트코인 얘기다. 한낱 신기루에 그칠 것 같았던 비트코인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대응에서 비롯된 각국의 통화 팽창과 디지털 생태계 확장에 힘입어 대안 통화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넉달 새 280% 뛰어 테슬라 시총 수준 #달러 가치 급락에 디지털 통화 탄력 #JP모건, 10만 달러까지 상승 전망 #미 기업들, 증세 대비 절세용 투자 #“무지 탓 폭등” “버블” 경계론 여전 #탈세 등에 악용 땐 거래 봉쇄 우려도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업비트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은 1BTC당 4484만원(8일 기준), 바이낸스 기준으론 3만8500달러다. 유독 국내에서만 가격이 높은 ‘김치 프리미엄’은 없는 편이다. 비트코인은 2018년 82% 하락, 2019년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정체의 터널을 지난 지난해 4분기부터 연일 최고가를 갈아치우고 있다. 2017년 급등 후 급락 때와 달리 가격 기반도 탄탄하다. 인플레이션 헷징, 디지털 경제의 확산 등을 노린 기관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어서다. 헤지펀드인 튜더인베스트먼트의 창업자 폴 튜더 존스와 헤지펀드 매니저 스탠리 드러켄밀러, 미국 보험사 매스뮤추얼 등이 지난해 비트코인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 일부 사모펀드와 회계·세무법인 등도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절세 등 목적으로 2019년부터 비트코인을 꾸준히 담아왔다.

특히 현재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시장을 떠돌고 있는 유동성은 전례가 없을 정도 막대하다. 세인트루이스연방은행경제통계(FRED)에 따르면 미국의 광의통화(M2)는 지난해 12월 19조1970억 달러(약 2경905조원)로 같은 해 1월(15조4233억 달러) 대비 24.46% 늘었다. 연간 기준 역대 최대 증가율이다. 코로나19 사태로 타격을 받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돈을 풀어서다. 그런데도 지난해 세계 경제성장률은 -4.3%(세계은행 추산)에 그칠 것으로 보이는 등 실물 경기는 활력을 잃었다. 그러다 보니 돈이 주식·채권·금 등 투자자산으로만 맴돌고 있다.

바이든의 대통령 당선도 비트코인 시세에 영향을 미쳤다. 바이든 당선인은 법인세를 7% 올리고, 대주주 주식 양도세도 39.6%로 높이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미국 기업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 정책으로 확보한 바이백 자금을 자사주 매입에 사용해 주가를 부양해왔지만 앞으로는 이런 방식이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기업들이 절세 수단으로 비트코인을 주목하고 있다.

미국 통화감독청(OCC)이 지난해 7월 암호화폐를 비롯한 디지털 자산의 수탁 서비스를 허가한 영향도 뭉칫돈이 비트코인으로 흐르는 도화선이 됐다.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씨티·웰스파고·골드만삭스 등은 물론 영국·독일의 글로벌 금융회사들이 암호화폐 수탁업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국민·NH농협·신한은행 등이 수탁 서비스에 나섰다.

페이팔을 비롯해 카카오·라인 등 국내외 대기업들이 참여한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가동하기 시작하며 블록체인 생태계가 자리를 잡을 것이란 기대감도 호재로 작용했다. 페이스북은 기존 리브라의 이름을 디엠으로 바꾸고 올해 안에 ‘스테이블 코인(보통 1코인=1달러의 가치를 갖도록 변동성을 최소화한 암호화폐)’을 발행할 계획이다.

미·중을 중심으로 중앙은행발 디지털 화폐(CBDC) 경쟁이 벌어진 것도 비트코인에 긍정적 요인이다. 중립 통화로서 비트코인의 입지가 더욱 공고해질 수 있어서다. 중국은 미국의 달러 패권에 도전하며 디지털 화폐 발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도 대응에 나섰다. 미 재무부 통화금융청(OCC)은 5일(현지시간), 은행들이 ‘퍼블릭 블록체인(누구나 참여 가능한 개방형 블록체인 네트워크)’을 활용하는 한편, 달러 스테이블 코인을 결제에 쓸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승인했다.

이런 변화는 달러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중심의 금융통화시스템이 약화된 결과물이기도 하다. 미 연준이 막대한 돈을 풀면서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의 가치(달러인덱스)는 지난해 3월 103.6에서 89.79(8일 기준)로 급락했다. 실물 경제는 부진한데, 자산가치가 천정부지 치솟는 금융·실물 간 괴리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 은행의 초과 지급준비금은 지난해 9월 2조8546억 달러(약 3108조원)로 불어나며 자금중개 기능을 사실상 잃었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미래금융연구센터 센터장은 “암호화폐가 득세하는 것은 현재의 금융 시스템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뜻”이라며 “정부·중앙은행이 화폐 발행을 독점하던 시대에서 이제 개인·은행·중개인들과 별도 금융 거래를 하는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돌아가자 JP모건·바이낸스 등은 중기 비트코인 시세를 10만 달러 수준으로 보고 있다.

이와 달리 엘리엇 파동이론 등 기술적 분석에 기반을 둔 투자자들은 비트코인 가격이 꼭지에 다다랐다고 주장한다. 2017년 급등기와 2018~19년 하락기를 거쳐 2020년 상승으로 이어진 그래프를 보면 하락 압력이 거셀 것이라는 분석이다. 비트코인 가격 급등은 투자자들의 비정상적 쏠림의 결과물이며, 영토·제도의 구속력은 피할 수 없어 가격 상승이 제한적일 거란 지적도 있다. 로젠버그 리서치의 데이비드 로젠버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1일(현지시간) CNBC에 출연해 “사람들의 무지 때문에 비트코인이 폭등했다”며 “차트가 단기간에 포물선을 그리는 것은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주장했다.

제도 리스크도 있다. 암호화폐는 자산으로서 증권·화폐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며, 탈세·범죄자금 등에 쓰일 가능성이 있어 정책에 따라 좌지우지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비트코인이 테러 자금이나 탈세 등에 악용되면, 제도적으로 거래를 원천 봉쇄하거나 추징할 수도 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달 23일 암호화폐 시가총액 3위 리플을 두고 “화폐가 아닌 증권이다. 적절한 공시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창업자를 고소하자 리플 가격이 60% 넘게 폭락했다. 2019년 3월에도 중국이 암호화폐 사업을 단속하며 비트코인 가격은 3000달러대로 폭락했다. 미·중의 정책 경쟁 속에 비트코인 거품이 꺼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암호화폐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지난해 11월 야후파이낸스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은 가격은 USDT(비트파이넥스가 발행하고 달러와 연동되는 암호화폐)의 조작과 고래에 의해 결정된다. 비합리적 버블”이라며 “CBDC가 발행되면 암호화폐 등 민간 디지털 결제 시스템을 밀어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대표·테마 지수, 암호화폐 전략적 투자에 활용할 만

암호화폐를 비롯한 디지털 자산은 24시간 내내 거래되고 시세의 등락폭이 큰 반면, 계량적인 분석 지표는 많지 않은 편이다. 이 때문에 주식이나 펀드, 금·달러 등에 투자할 때보다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 다만 개인 투자자들이 기초 자료로 참고할 만한 국내 지표가 몇 가지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는 전문 데이터 분석 인력을 활용해 만든 ‘시장 대표 지수(Market Index)’ ‘테마 지수(Theme Index)’ ‘전략 지수(Strategic Index)’ 등 이른바 암호화폐 3대 지수를 제공하고 있다. 시장 대표 지수(UBMI)는 ‘개별 암호화폐 시세x유동 물량x시가총액에서 해당 암호화폐의 비중’ 공식으로 산출한다. 거래량과 시가총액에 가중치를 둬서 특정 암호화폐의 상장 폐지나 신규 상장 등 갑작스러운 변수로 지수가 왜곡되는 것을 최소화한다. 비트코인 같은 대중적인 암호화폐를 중심으로 전반적인 시장 흐름을 살필 수 있다.

테마 지수는 특정 이슈로 화제가 된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경우 참고할 수 있다. 예컨대 지난해 9월 테마 지수에 14번째로 추가된 ‘디파이(De-Fi, 탈중앙화한 금융 시스템) 지수’는 코스모스 네트워크 기반 플랫폼 카바(KAVA)나 트론 기반 스테이블 코인 저스트(JST) 등 실시간 산출되는 디파이 관련 디지털 자산의 시장 가치 변화를 보여준다. 전략 지수는 모멘텀(momentum, 시세 변화의 가속도를 측정해 추가 등락폭을 예측)이나 로우볼(low volatility, 시세 변동성이 클 때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종목에 투자) 등 좀 더 전략적인 투자를 원하는 경우 활용할 수 있다. 모멘텀·로우볼 등 전략에서 기간별로 수익률이 높았던 종목 다섯 개씩을 보여준다.

김대현 두나무 데이터밸류팀장은 “최근 비트코인 가격 재급등으로 디지털 자산에 관심이 커져 새로 투자에 뛰어드는 개인이 늘었지만 시장 상황을 더 명확히 알 수 있는 투자지표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미래를 막연히 예측하기보다 디지털 자산 시장 전반의 흐름과 방향성을 보여주는 각종 데이터·인덱스 분석에 관심을 갖고 투자에 참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은 ‘알트코인 지수(BTAI)’를 제공한다. 비트코인을 제외한 나머지 암호화폐 시세를 종합해 산출한다. 역발상으로 비트코인의 대중성이 디지털 자산 전반의 가치 판단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는 투자자라면 참고할 만하다.

다만 이런 시세 기반의 지표만으로는 불충분하며, 디지털 자산 관련 좀 더 근본적인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항선 한국블록체인기업진흥협회 부회장은 “민간의 공시 서비스도 있지만 신뢰성을 100% 갖추기란 쉽지 않다”며 “금융당국이 전자공시시스템(DART) 같은 의무 공시 제도를 디지털 자산 시장에도 도입해 운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블록체인기업진흥협회는 오는 3월 시행될 특금법(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에 이 같은 내용을 반영해줄 것을 지난해 말 금융당국에 건의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김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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