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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무조건 아이를 낳으라고 하기 전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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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호 31면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대한민국 주민등록인구가 줄었다고 한다. 출생하는 아기들의 수가 사망자보다 적었는데, 작년 출생아는 역대 최소였다고 한다. 인구의 감소는 내수, 재정, 연금 등 국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니, 장기적으로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급히 여러 방향으로 저출산 대책을 수립하라는 목소리가 드높다.

사상 처음 주민등록인구 줄어 #미혼모·조손 가정 편견과 차별 #‘정인이 사건’처럼 보호도 미흡 #아이 낳겠다 생각 들 수 있겠나

다만 여기서 한국은 이민 등 외부 유입으로 인해 인구를 증가하거나 유지시킬 생각은 없어 보이는데 이는 현실적인 정서가 반영된 시각일 것이다. 아직 한국사회는 다른 인종 또는 다른 민족 출신의 사람을 대거 ‘한국인’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고 그럴 마음도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고사하고, 다른 나라 출신인 사람을 동등하게 취급하지 못하고 차별하는 경우도 종종 본다. 때로는 한국인이라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은 대접을 하기도 한다. 이주 노동자는 기본적으로 한국 측 수요에 의해, 즉 일손이 필요하기 때문에 받아들인다. 그럼에도 그들에 대한 처우는 형편없는데, 최근 엄동설한에 난방시설이 고장 난 비닐하우스에서 잠을 자다가 사망한 캄보디아인 이주 노동자 사례는 노동권 보장이니 인권 침해까지 갈 것도 없이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법조차 이주 노동자에게는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았다.

말하자면 한국 사회가 주로 고려하는 저출산 대책이란 결국 한국인 여성이 아이를 많이 낳게 하는 것이다. 한국의 합계출산율, 즉 가임기 여성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의 수는 2년 연속 0.9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OECD 국가 중 제일 낮은 수치다. 다시 말해서 다른 OECD 국가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에 비해 한국 여성은 아이를 그리 낳고 싶어하지 않거나 또는 낳고 싶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낳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 여성이 대체 어떤 점들 때문에 아이 낳기를 꺼리는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좀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우선 한국 사회의 경우 ‘정상 가족’ 안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것을 당연시한다. 성인 남녀가 혼인 신고를 하고 적법한 부부를 형성하여 아이를 낳는 것만을 ‘정상’적인 형태로 보고 있으니 그렇지 않은 경우 아이나 부모가 살기란 고단하다. 미혼모나 매우 드물지만 미혼부 가족, 조손 가족이나 동거 가족에 대한 편견이나 차별이 없다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일례로 한국에서 취직을 하면서 결혼하지 않았으되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아이 양육을 위한 배려 및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당연하거나 쉽게 들리는가. 하지만 한국 외 많은 OECD 국가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이다.

선데이칼럼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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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상대를 만나 결혼에 성공하는 것도 아이를 갖고 낳는 일에 성공하는 것도 쉽지 않다. 난임 문제 역시 만만치 않다. 어쨌거나 여기까지는 왔다고 치고, 아이를 양육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든다. 한국 사회에서 돈벌이를 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아이를 낳고 공적인 부조에 의지해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가능하려나 의문이다. 더구나 자녀 양육에 대한 기준이 높고 끊임없이 서로 비교하는 사회 아닌가.

또한 아이를 양육하는 데는 시간은 물론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 역시 참으로 많이 든다. 양육을 보조해줄 수 있는 인력이 없는 경우 양육에 수반되는 피로도는 매우 높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동안 신고된 아동학대는 4만 건이 넘는다. 이중 가정에서 발생한 것이 79.5%를 차지한다고 하니 신고하지 않거나 못하고 넘어간 가정 내 아동학대는 훨씬 많을 것이다. 아이를 사랑으로 키우고 보호해야 마땅할 가정에서 이렇게나 아이들을 학대한다는 사실에 경악하거나 아이를 학대하는 부모 개인의 인성을 탓하고 싶은 심정도 이해가 가지만, 아이를 양육하는 일은 여러 가지로 힘든 일이며 사회적 지원과 때로는 교육과 관리·감독 역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사회 전체의 스트레스가 매우 높고 외부로부터의 관여도 쉽지 않았으니 2020년 가정에서 학대받은 아이들의 숫자는 더욱 늘었을 가능성이 높다.

역시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2019년 학대로 인해 사망한 아이들은 42명이라고 한다. 한국 사회를 슬픔과 죄책감에 빠지게 하고 분노로 들끓게 한 ‘정인이’ 말고도 학대 끝에 2020년에 죽은 아이들이 적어도 수십 명이 더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전 사회가 아이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라는 듯이 말하고 아이를 낳으라고 외쳐대면서도 정작 태어난 아이들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해 죽음에 이른다.

여기까지만 해도 아이를 갖고 낳을 결심을 하기에 의기소침해질 터인데, 최근까지 보건복지부와 서울시의 임신육아종합포털에 게시돼 있던 내용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임신 막바지 가뜩이나 몸이 무거울 임신부에게 출산을 위해 가정을 비우기 전에 “요리에 서툰” 남편과 남아 있는 가족의 생활이 불편하지 않게 아주 소소한 것까지 챙겨야 하며 출산 이후에는 살을 뺄 준비를 하라는 내용이 ‘생활수칙’이라고 버젓이 적혀 있었다. 사회가 이런 시각으로 여성의 결혼과 출산을 보고 있다면, 여성들이 선뜻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생길 리가 만무하지 않겠는가.

김세정 SSW 프래그마틱 솔루션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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