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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팔’ 올해부터 암호화폐 결제, 옐런은 과거 회의적 입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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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호 10면

비트코인 광풍 - 국내외 제도화 실태

비트코인 현장 결제가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는 일본의 한 음식점. 해외 주요국들은 암호화폐 규제 완화와 시장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EPA=연합뉴스]

비트코인 현장 결제가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는 일본의 한 음식점. 해외 주요국들은 암호화폐 규제 완화와 시장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EPA=연합뉴스]

# 1981년생인 대만의 오드리 탕(唐鳳) 디지털담당 장관은 디지털 자산 시장 전문가다. 그는 10대 때 미국 실리콘밸리로 건너가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생태계를 익혔다. 이후 20대에 애플에 자문위원으로 가세,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참여했다. 애플 시절 그는 일하는 시간당 급여를 암호화폐 비트코인 하나(1BTC)로 받겠다고 해서 주위를 놀라게 했다. 수년이 지난 지금 1BTC의 국제 시세는 3만 달러가 넘는다.

미, 작년 은행 수탁 서비스 허용 #시진핑 “블록체인, 혁신 돌파구로” #일본 내 비트코인 결제 26만 곳 #각국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채비 #미 금융당국, 규제 강화할 수도

# 약 3억5000만 명이 쓰는 세계 최대 간편결제 플랫폼인 페이팔은 올해부터 미국 내 2600만여 곳의 온라인 가맹점에서 암호화폐 결제 지원에 나섰다. 페이팔은 올 상반기 중에 해당 서비스 범위를 전 세계로 넓힐 계획이다.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기업 페이스북은 디엠(Diem, 리브라(Libra)에서 개명)이라는 자체 암호화폐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 앞서 2019년 페이스북은 달러나 유로 등 각종 통화와 가치가 연동되는 단일 암호화폐 출시 계획을 밝혔다.

암호화폐로 급여를 받고, 시장에서 자유롭게 물품을 사거나 판다. 초대형 기업도 이를 인정하고 시장에 뛰어든다. 암호화폐를 실체 없는 투자 대상으로 인식하는 한국과는 사뭇 다른 해외 분위기다. 암호화폐 관련 규제를 잇따라 완화한 덕에 이런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평가다. 미국은 지난해 9월 은행감독협의회(CSBS)가 암호화폐 서비스 업계를 대상으로 하는 단일 감독 규정을 내놨다. 미국 전체 주(州)마다 달랐던 감독 규정을 단일화해서 업계의 규제 부담을 최소화한다는 취지다. 이보다 앞선 지난해 7월엔 미 재무부 산하 통화감독청(OCC)이 미국 내 은행 등 금융권의 암호화폐 커스터디(custody, 수탁) 서비스를 허용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새로운 서비스 도입을 위해 동분서주하던 페이팔도 뉴욕주 금융당국이 해당 사업 면허를 허가하면서 순풍에 돛을 달았다. 국내의 한 암호화폐 거래소 관계자는 “미국 암호화폐 시장은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 완화,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로 나날이 성장 중”이라며 “그러면서 다른 나라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예컨대 중국 정부는 투자 시장 과열 분위기가 형성되던 지난 2017년 9월만 해도 자국 내 암호화폐공개(ICO)를 전면 금지하는 등 규제 강화 기조를 유지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9년 10월 공식석상에서 “산업 현장이나 실물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블록체인 기술을 국가 혁신의 핵심 돌파구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이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암호화폐 발행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의 새로운 암호자산법을 빠르게 통과시켜 지난해 1월 시행했다. 이어 지난해 5월 기존 민법의 개정안을 추가로 통과시키면서 올해부터는 법적 상속이 가능한 자산 목록에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가 포함되도록 했다.

암호화폐에 강경하던 중국 정부가 이 처럼 규제 완화 기조로 돌아선 배경은 간단하다.  중국 내 암호화폐 보유자가 그 사이 급증하면서 국부 보호 차원에서도 이를 개인 자산으로 인정할 필요성이 커진 데다, 새로운 글로벌 ICT 패러다임인 블록체인과 디지털 자산을 둘러싼 미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뒤지지 않아야 한다는 내부 공감대가 형성돼서다.

암호화폐 관련 말말말

암호화폐 관련 말말말

일본도 두 나라 못지않게 규제 완화에 적극적이다. 일본 정부는 2017년 자금결제법 개정안을 시행해 암호화폐를 합법적인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고, 세계 최초로 암호화폐거래소 등록제를 도입했다.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편입시켜 시장 자체를 양성화하고, 다양한 산업적 활용 가능성을 모색한다는 취지였다. 이에 힘입어 비트코인 결제가 가능한 일본 내 오프라인 점포 수만 2017년 이미 26만곳이라는 통계(추산치)도 나왔다. 일본 정부는 2019년 법을 다시 개정해 암호화폐를 ‘암호자산’으로 통칭하고, 암호화폐를 이용한 시장의 마진 거래도 초기 예치금의 4배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ICT 산업 트렌드 변화에 보수적이던 유럽 역시 변하고 있다. 미 CNBC 방송은 올해 유럽에서 적어도 한 곳 이상의 은행이 디지털 자산을 보관해주는 시스템을 갖출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다만, 이들이 규제 완화라는 ‘당근’만 앞세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암호화폐 시장을 인정하면서 사회와 경제 전반에 스며들도록 유도는 하되, 속도 조절을 위한 최소한의 규제는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채찍’도 들고 있다. 탈중앙화가 핵심 가치인 민간 암호화폐의 위상이 단번에 기성 법정화폐를 위협할 정도로 높아져서는 곤란하다고 판단해서다. 각국이 속속 도입을 준비 중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도 직접적 규제라 보긴 어렵지만, 민간 암호화폐의 대체재라는 점에서 이런 속도 조절용 카드로 해석되고 있다.

블룸버그는 최근 보도에서 오는 20일 취임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신임 재무장관으로 지명한 사람이 재닛 옐런 전 연준(Fed) 의장임을 고려, 올해부터 미 금융당국이 규제 강화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옐런 전 의장은 과거 “비트코인은 투기적 자산에 불과하며, 안정적인 가치 저장 수단이 아니다”라고 경고하는 등 암호화폐에 대체로 회의적이었다. 미국이 규제 강화로 돌아선다면 다른 나라들도 영향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 제도화에 소극적, 암호화폐 후속 법안 없고 파생상품 거래 못 해

세계 주요 국가가 암호화폐를 제도권으로 편입하면서 관련 시장을 키우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여전히 암호화폐 제도화에 소극적이다. 오는 3월에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이 시행되지만, 이 법은 암호화폐 거래소의 자금세탁 방지에 초점을 맞췄다. 암호화폐 관련 후속 법안이 나와야 하지만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파생상품 등도 없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암호화폐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싸게 사서, 비싸게 팔기’ 뿐이다.

미국의 자산운용사인 밴에크어소시에이츠는 최근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인 ‘밴에크 비트코인 트러스트’ 출시 신청을 했다. 밴에크는 이번에 신청한 ETF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서 거래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는 2017년 말 비트코인 선물을 상장한데 이어 지난해 1월 비트코인 선물에 대한 옵션을 추가로 상장했다. CME의 비트코인 선물 거래량은 상장 이후 10배 넘게 치솟았다. 국제상업거래소(ICE)에서도 비트코인 선물 거래를 출시해 거래를 운영 중이다. 독일은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 상장지수증권(ETN)을 상장하기도 했다.

이 같은 추세에 국내 증권시장에서도 암호화폐 관련 파생거래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암호화폐 관련 파생상품은 암호화폐에 접근이 어려운 기성세대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며 “무엇보다 정식으로 증권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다면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도 안정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 2017년 비트코인 열풍이 불던 당시 최종구 전 금융위원장은 “비트코인을 금융거래로 인정하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제도권 거래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런 마당에 국내에선 암호화폐 거래소 접근도 더 어려워 질 전망이다. 특금법 시행으로 현재 60여 곳에 이르는 거래소 상당수가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특금법이 시행되면 거래소는 은행으로부터 자금세탁 행위의 위험을 평가받고,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획득하는 등 실명 확인 입출금 계정을 발급받아야 한다. 그런데 은행들은 암호화폐 시장을 부정적으로 보기 때문에 계좌 발급을 꺼리고 있다. 은행들이 리스크를 평가하고 계좌를 내줄 때까지 거래소는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금융당국도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책임을 은행에 떠넘기고 있다. 현재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 발급을 받은 거래소는 두나무(업비트)·코빗·빗썸·코인원 등 4곳 정도다. 관련 업계에선 많아야 10여 곳이 살아남을 것으로 내다본다.

특금법에서 오더북(거래장부) 공유를 금지한 것도 거래소 발목을 잡고 있다. 그동안 중소 거래소는 오더북 공유로 거래 유동성을 높여왔다. 오더북 공유를 종료하면 거래소는 거래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재정적 타격이 불가피하다. 황순호 두나무 대외협력팀장은 금융정보분석원의 특금법 시행령 공청회에서 “(오더북) 제휴를 금지하면 투자자들이 외국 거래소로 빠져나가 국내 거래소가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거래소와 투자자들의 해외 엑소더스는 국부의 유출”이라고 비판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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