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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수익 1000만원 보장” SNS 통해 불법 다단계 판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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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9호 14면

#대구에 사는 김모(26·여성)씨는 지난해 9월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피부관리를 하면서 뷰티 모델 체험을 제안하는 내용이었다. SNS 광고를 통해 수익도 낼 수 있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코로나19)탓에 직장에서 권고사직 상황에 놓인 김씨는 수익이란 말에 귀가 솔깃했다. 유명 인플루언서가 받는 SNS 협찬광고와 크게 다르지 않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일주일에 8~9시간씩 온라인 교육에 참여했지만 정작 제품에 관한 설명은 없었고 지속적인 구매 권유만 있었다. 김씨는 마지못해 10만원 상당의 화장품 1세트를 구매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40~50만 원대의 피부미용 기기도 구매 압박이 시작됐다. 심지어 신용카드를 신규 개설해 할부로 구매하란 제의도 있었다. 두 달 동안 업체 관계자들에게 시달리던 김씨는 “돈을 벌기는커녕 내 돈만 들어가 뒤늦게 알아보니 다단계 업체였다”며 “판매원으로까지 가입했었으면 정식 사업자가 돼 자칫 실업급여도 받지 못할 뻔 했다”고 말했다.

코로나 위기 틈타 2030 유혹 #유튜브·인스타그램 채널 활용 #체험기 리뷰, 취향저격 마케팅 #채팅방·동호회 개설 통해 접근 #방법 더 교묘해져 피해자 급증 #단속 힘들고 구제 대책 제자리

코로나19로 생계가 어려워진 사람들이 늘자 이들을 끌어들이려는 다단계업체들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확산세를 막기 위해 업체의 집합 활동이 금지되자 SNS 등 온라인 마케팅 수법이 그 공백을 채우고 있다. 주로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 등 SNS 사용에 익숙한 20·30세대가 다단계업체의 유혹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불법 다단계

불법 다단계

대학 재수생 임모(20·여)씨는 지난해 8월 올해 대학 입시를 중단하고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찾던 중 SNS에서 ‘큰 투자 없이 월 1000만원 벌 수 있다’란 연락을 받았다. 다단계 판매원이 내건 광고였다. 업체를 찾아간 임씨는 각종 온·오프라인 교육 후 정식 판매원으로 등록 신청했다. 자격 실적을 채우기 위해 170만원 상당의 화장품과 다이어트 식품도 구매했다. 임씨는 “고가의 제품이다 보니 또래 친구들에게 판매하기 쉽지 않아 실적을 채우기 현실적으로 어려웠고 제품 기능도 기대 이하였다”며 결국 지난해 12월 초 업체를 빠져나왔다.

다단계업체의 온라인 마케팅 방법은 나날이 교묘해지고 있다. 이들은 유튜브 채널을 집중적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편다. 20~30대의 유튜브 콘텐츠 소비가 늘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업체가 만들어내는 콘텐츠도 쏟아지고 있다. ‘다단계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제품)’ ‘다단계 물건 한 달 사용해보니’ 등 각종 리뷰를 내걸며 다단계업체 제품의 기능성을 강조한다. 건강과 뷰티에 관심 많은 젊은 층의 구매 욕구와 회원 유치를 위해서다. 투자 설명회와 유사한 ‘보상플랜’ 콘텐츠도 이들을 유혹하는 무기다. 대부분 1만회 안팎으로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인스타그램은 1:1 맞춤 접근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다단계 판매원들의 핵심 홍보 채널 중 하나다. 인스타그램을 활발히 이용하는 20~30대층을 대상으로 각종 무료체험 이벤트를 열어 관심을 끈다. 메시지를 이용해 공부 비법이나 부업을 제안하기도 한다. 공략 대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취향 저격’ 마케팅을 펼치는 것이다. 단체 오픈채팅방을 통한 각종 소모임, 동호회 개설도 활발하다. 업체 판매원끼리 활동 모임이나 각종 스포츠 동호회를 만들어 해당 분야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이다. 재수생 임씨는 “공통 관심사를 계기로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유기견 봉사활동을 만든 적 있다”며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대면 모임은 실천하지 못했지만 모임 하나 만들 때 판매원 2~3명이 바람잡이 역할을 한다”고 했다.

임은경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은 “온라인 플랫폼은 네트워크 마케팅을 추구하는 다단계업체에 뛰어놀라고 판을 깔아준 것이나 마찬가지”이라며 “마케팅 행위 자체를 막을 순 없지만, 현재 다단계 영업 방식이 과도해 초반에 제대로 된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마케팅 방식은 현행 방문판매법 제23조에 따라 거짓이나 과장된 사실을 알리거나 기만적 방법을 사용하여 상대방과의 거래를 유도하는 사례로 금지행위에 속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해당 규정으로 처벌이나 행정 조치를 받는 업체는 극히 드물다.

정양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다단계판매를 포함해 특수판매업 마케팅은 표시광고법 위반 사례가 많지만 관리·감독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가 모든 광고물을 일일이 모니터링하며 시정 권고 내리기 쉽지 않다”고 했다. 피해 사례가 늘고 있지만 구제는 어려운 현실이다. 실제 10만여 명 넘게 가입한 다단계 피해 커뮤니티에는 공정위에 등록된 업체와 미등록업체 구분 없이 쏟아지는 마케팅으로 피해 사례를 호소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최근 직장인 김모(26)씨는 뷰티 제품 모델을 제안하는 SNS 메시지를 받았다. 그러나 모델 대신 제품 구매 권유가 이어졌다. 다단계업체의 유인책이었던 셈이다. 김현동 기자

최근 직장인 김모(26)씨는 뷰티 제품 모델을 제안하는 SNS 메시지를 받았다. 그러나 모델 대신 제품 구매 권유가 이어졌다. 다단계업체의 유인책이었던 셈이다. 김현동 기자

경기도 이천에 사는 직장인 이모(38) 씨는 사행성을 조장하는 업체의 마케팅에 지난해 10월 한 다단계업체를 국민신문고에 신고했다. 하지만 관할 기관이 살펴보겠다는 말뿐 이렇다 할 개선은 이뤄지지 않자 참다못해 두 번째 민원 접수를 준비하고 있다. 공정위 특수거래과 관계자는 “판매원등록수첩을 통해 회사 운영방침, 실적수당 등을 명확히 기재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으나 실제 서면 자료를 제대로 전달받고 있는지 일일이 알기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시 소비자 보호팀 관계자도 “회사 운영 방식 안에서 발생하는 판매원의 영업 전략 등은 사실상 행정기관의 규제 범위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단속에 한계가 있다”고 했다. 방문판매법이 규정한 소비자 권익 보호가 제품 환불 규정에만 지나치게 쏠려있다는 지적도 있다. 후원방문판매 등 사실상 다단계 수당 구조를 갖춘 특수판매업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운영 방식이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실질적인 피해자 보호 및 구제 대책은 제자리걸음이다. 또 최종 소비자이자 판매원으로 등록된 경우 법적으로 ‘사업자’에 속하기 때문에 소비자 보호 규정에서 제외된다.

곽관훈 선문대 법학과 교수는 “방문판매법을 처음 제정할 때는 변칙적 유통방식이란 이유로 제품에 초점 맞췄다”며 “하지만 현재는 시장이 안정화 됐기 때문에 제품 자체보다는 제품에 접근하게끔 하는 마케팅 방식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리점 사업 형태 ‘후원방판’ 등 유사 다단계도 많아

우리나라에서 다단계판매업을 사업 운영하기 위해서 사업자는 현행 방문판매법에 따라 공정거래위원회나 관할 지자체에 사업 등록을 해야 한다. 자본금 3억원 이상을 갖춰야 하며 10억원 이상 규모의 소비자피해보상보험 가입이 필수다. 또 판매원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후원 수당, 즉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가 지급되는지 관련 규정도 마련해 제출해야 한다. 등록된 업체는 사실상 ‘합법’ 업체로 분류돼 공정위의 관리·감독을 받게 된다. 공정위의 다단계판매업 사업자 등록현황을 살펴보면, 지난해 기준 다단계판매 업체는 130개, 회사에 등록된 판매원은 약 834만 명에 이른다.

최근에는 ‘대리점 사업’ 형태인 후원방문판매업이 빠르게 성장하는 추세다. 다단계는 3단계 이상 걸쳐 판매 가입이 이뤄지지만 후원방문판매는 자신과 그 직하위 판매원의 실적에 대해서만 실적 수당이 지급된다. 실적수당 지급 구조의 차이만 있을 뿐 사실상 다단계 영업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다단계판매업과 달리 실적수당 지급비율 제한과 개별상품 가격 상한 제한, 소비자피해 보상보험계약 등 체결 의무 등이 면제다. 김홍석 선문대 법학과 교수는 “다단계판매업에 비해 후원방문판매와 같은 유사 다단계판매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며 “이를 악용하는 업체를 근절하기 위해서라도 방문판매법이 시대에 맞춰 개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제도권 밖에 있는 미등록 된 불법 다단계판매업체다. 판매원들을 대상으로 유사수신행위, 제품 강매, 집합 강요 등 각종 불법 행위가 벌어진다. 2011년 이른바 ‘거마 대학생’ 사건은 대표적인 대학생 불법 다단계 사건으로 꼽힌다. 당시 서울 송파구 거여·마천 지구 일대에 대학생 5000여명이 단체로 합숙하면서 수천만 원치 제품 구매를 강요받아 빚더미에 앉은 바 있었다. 이후 공정위와 각 지자체가 불법 다단계 업체 집중 단속반을 신설해 ‘불법 다단계와의 전쟁’을 치른 바 있다. 이에 앞서 2008년 ‘조희팔’ 사건은 2004년부터 5년여 동안 4~5만여 명의 투자자를 모아 돈을 가로챈 희대의 불법 금융 다단계 사건으로 불린다. 검찰은 2016년에서야 조희팔 핵심 관계자들을 검거해 재판에 넘긴 바 있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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