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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V 1000개 뒤져서야 잡았다...경찰의 금은방 5분 싹쓸이

중앙일보

입력

순식간에 장식장 깨고 귀금속 챙겨 도주

광주 남부경찰서는 금은방에 침입해 귀금속을 훔친 광주 서부경찰서 소속 A 경위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7일 밝혔다. 사진은 A 경위가 귀금속을 훔치는 모습이 촬영된 금은방 CCTV 영상. 연합뉴스

광주 남부경찰서는 금은방에 침입해 귀금속을 훔친 광주 서부경찰서 소속 A 경위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7일 밝혔다. 사진은 A 경위가 귀금속을 훔치는 모습이 촬영된 금은방 CCTV 영상. 연합뉴스

지난달 18일 오전 4시께 광주광역시 남구의 한 금은방. 마스크를 착용한 채 모자를 깊게 눌러 쓴 한 남성이 쇠 막대를 휘두르며 귀금속이 진열된 유리 장식장을 부숴나갔다. 이후 그는 순식간에 장식장 안에 든 귀금속을 챙기더니 번호판을 가린 차량을 타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가 금은방에 들어가서 귀금속을 훔쳐 나오는 데 까지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사건추적] #금은방 턴 광주 서부경찰서 소속 경찰관 #범행 인정하며 “거액의 빚져서 절도 행각” #

 경찰은 범행 후 20여 일 동안 수사를 벌였으나 이렇다할 용의자를 특정하지 못했다. 워낙 짧은시간에 치밀하게 범행이 이뤄진 데다 현장엔 범인을 특정할 만한 단서가 남아있지 않아서다.

 미궁에 빠지는 듯했던 범행은 약 1000개의 폐쇄회로TV(CCTV) 영상을 쉴 새 없이 돌려 본 경찰에게 꼬리가 밟혔다. 경찰이 CCTV 분석을 통해 용의자의 도주로를 역추적한 결과 범인은 현직 서부경찰서 간부인 A 경위로 드러났다.

채무 시달리다 금은방 털이 전락

지난달 18일 귀금속 절도 사건이 벌어진 광주광역시 남구의 한 금은방. 광주 서부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이곳에서 2500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 독자]

지난달 18일 귀금속 절도 사건이 벌어진 광주광역시 남구의 한 금은방. 광주 서부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이곳에서 2500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 독자]

 광주 남부경찰서는 7일 2500만원 상당의 귀금속을 훔친 혐의(특수절도)로 A 경위를 붙잡아 조사 중이다. A 경위가 검거된 직후 “범죄자를 잡는 경찰이 금은방을 털었다”는 소식과 함께 “A 경위가 거액의 빚을 지고 있었다”는 말이 경찰 안팎으로 퍼졌다.

 A 경위가 경찰에 붙잡힌 뒤 자신의 범행을 순순히 인정하고 범행 이유도 “거액의 빚 때문”이라고 털어놨지만, 채무를 지게 된 이유를 놓고서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A 경위가 도박 등 불법적인 경로로 거액의 빚을 졌다는 의혹까지 나온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A 경위가 도박 등으로 거액의 빚을 진 정황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면서도 “추가 조사 과정에서 관련 혐의가 확인된다면 별도의 수사 착수 여부는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경찰 수사’ 경험 살린 치밀한 범행

지난달 18일 2500만원 상당의 귀금속 절도 사건이 일어난 광주광역시 남구의 한 금은방. 광주 서부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이곳에서 귀금속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 독자]

지난달 18일 2500만원 상당의 귀금속 절도 사건이 일어난 광주광역시 남구의 한 금은방. 광주 서부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이곳에서 귀금속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사진 독자]

 A 경위의 범행은 치밀하면서도 대범했다. 우선 그는 경찰이 범죄를 수사할 때 가장 먼저 확보하는 CCTV에 신분이 노출되는 것을 막으려고 차량의 번호판을 가린 뒤 범행했다. 얼굴은 마스크를 쓴 채 모자를 깊숙이 눌러 써 가렸다.

 그는 금은방에 들어갈 때는 준비해 간 공구로 순식간에 금은방 셔터 자물쇠를 부쉈다. 금은방에 들어가서는 귀금속이 보관된 유리 진열장을 산산조각내는 방법을 썼다. 셔터와 유리 진열장이 부서질 때 울리는 경보음을 듣고 출동한 사설 경비업체가 도착하기 전에 귀금속을 챙겨 달아나는 수법이었다.

 A 경위가 귀금속을 훔친 직후 범행 현장에는 미처 챙기지 못한 귀금속이 상당수 남아 있었다. A 경위가 많은 귀금속을 훔치기보다 신속하게 범행 현장을 빠져나가는 데 우선순위를 뒀기 때문이다.

경찰 1000개 CCTV 분석해 추적

광주 남부경찰서는 금은방에 침입해 귀금속을 훔친 광주 서부경찰서 소속 A 경위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7일 밝혔다. 사진은 A 경위가 귀금속을 훔치는 모습이 촬영된 금은방 CCTV 영상. 연합뉴스

광주 남부경찰서는 금은방에 침입해 귀금속을 훔친 광주 서부경찰서 소속 A 경위를 긴급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7일 밝혔다. 사진은 A 경위가 귀금속을 훔치는 모습이 촬영된 금은방 CCTV 영상. 연합뉴스

 A 경위가 범행 직후 광주의 자택이 아닌 전남지역으로 차를 몰아간 것도 경찰 수사에 혼선을 줬다. 차량 번호판을 가리긴 했지만, 경찰이 CCTV를 계속 확인해 나가면 덜미를 잡힐 수 있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결국 경찰은 1000여 개의 CCTV를 일일이 확인한 끝에 시골 쪽으로 향한 A 경위의 도주로를 특정할 수 있었다.

 범행 후 훔친 귀금속을 자신만 아는 장소에 보관한 것도 용의주도한 면모다. A 경위는 귀금속을 곧장 장물로 팔아넘기지 않고 숨김으로써 경찰의 의심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결국 장물을 팔기 전에 검거됨으로써 경찰은 피해물품을 모두 회수할 수 있었다.

 A 경위는 범행을 저지르기 하루 전부터 당일까지 이틀간 연차를 사용했다. 범행 이튿날에는 자신의 근무지에 정상적으로 출근해 동료들의 의심을 피했다.

새해 벽두 경찰이 절도…“조직 혼란”

 새해부터 불거진 동료 경찰의 절도 행각에 경찰 내부는 술렁이고 있다. 광주 경찰은 지난해 경무관급 경찰서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와중에 가진 술자리에서 여성 종업원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는 등 각종 비위가 끊이지 않았다.

 지난달 7일에는 광주 북부경찰서 경찰관이 4~5m 옹벽 아래로 뛰어내리면서 음주단속 현장을 달아났다가 이튿날이 돼서야 경찰에 자진 출석하기도 했다. 또 광주 동부경찰서 재직 당시 사건 무마를 대가로 금품을 받아 재판에 넘겨진 경위급 경찰관이 지난달 파면됐다.

 광주경찰 관계자는 “새해부터는 기강해이를 바로잡기 위해 내부 쇄신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왔는데 불미스런 사건이 또다시 불거져 조직이 안팎으로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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