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주정완의 시선

2021년에 태어날 귀한 아기들에게

중앙일보

입력 2021.01.08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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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주정완 경제에디터

주정완 경제에디터

아기들아, 안녕. 신축년 소띠해인 올해 새 생명을 얻을 너희들은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들이구나.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아기들도 포함해 귀중한 생명의 탄생을 미리 진심으로 축하한다. 너희들에겐 밝고 희망찬 소식만 들려주고 싶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엔 마음 한 편이 무거워지는구나.

코로나 여파에 신생아 역대 최저
다문화 사회 이행, 더 빨라질 듯
나랏빚 마구 떠넘긴 건 사과해야

그래도 좋은 소식부터 전해줄게. 너희들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어떤 세대보다도 오래 살게 될 거야. 기대수명(평균 생존연수)으로 말하면 84세 무렵까지 살 수 있다는구나. 너희들이 자라면서 건강관리를 잘하고 의학이 더 발달하면 100세 이상 사는 경우도 많겠지. 남자보다는 여자가 더 오래(평균 6년) 산다고 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일본을 제외하면 우리나라만큼 여자의 기대수명이 긴 나라도 별로 없단다.

한 해 태어나는 아기 수로 보면 너희들은 6·25 전쟁 이후로 가장 적어질 것 같구나. 지난해 신생아 수가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20만 명대로 떨어졌다고 난리를 쳤는데, 올해는 더 줄어들 거라고 하거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란 몹쓸 병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우리 사회를 괴롭히고 있어서야. 그래서 젊은 세대 중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사람들이 많아졌어. 가뜩이나 저출산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지. ‘밀레니엄 베이비’ 열풍으로 희망에 부풀었던 2000년(신생아 64만 명)이 어느새 까마득한 옛날얘기 같구나.

앞 세대가 겪었던 치열한 입시 경쟁은 너희들이 자라면서 많이 달라질 거야. 앞으로 학생 수가 급격하게 줄어들 수밖에 없거든. 너희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2028년이 중요한 고비가 되겠구나. 전국의 초등학생 수가 200만 명 밑으로 떨어지는 첫해가 될 거야. 너희들이 대학에 들어갈 2040년이면 대학생 수가 현재의 반 토막이 될 거라고 해. 그때가 되기 전에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해 문 닫는 대학도 제법 많을 거야. 그렇더라도 주요 명문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 경쟁이 완전히 사라질 것 같진 않아.

너희들에게 미리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고 싶은 부분이 있단다. 기성세대인 우리가 너희들에게 정말 큰 죄를 지었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들에게까지 엄청난 빚더미를 떠넘겼으니 말이야. 올해 나랏빚은 956조원이나 된단다. 최근 2년간 무려 255조원이나 불어난 규모야. 이런 식이면 나랏빚이 1000조원을 넘어서는 것도 순식간이겠지. 너희들이 어른이 되면 막대한 나랏빚의 원금은 고사하고 이자만 갚는 것도 힘들어할지 모르겠구나. 너희들이 30대 초반이 되는 2050년 무렵에는 국민연금 기금이 한 푼도 남지 않고 고갈될 예정이야. 나라의 빈 곳간을 세금으로 채워 넣는 것은 고스란히 너희 부담이 되겠지.

비유하자면 할아버지, 아버지 세대인 우리가 너희들이 먹을 밥상을 미리 뺏어와서 먹어치운 격이야. 만일 직계 자손이라면 이렇게까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미래 세대에겐 한없이 잔인해질 수 있는 게 인간의 이기심인 것 같아 씁쓸하구나.

그렇더라도 너희들끼리는 이념이니, 피부색이니 따지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면 좋겠구나. 특히 우리와 함께 사는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은 소중한 이웃이란 점을 꼭 기억해주길 바란다.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 혼인은 이미 10%를 넘었어. 결혼식을 올리는 열 쌍 중 한 쌍꼴은 다문화 가정이란 얘기지. 너희들이 열 살이 되는 2031년이면 외국에서 왔거나,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인구가 300만 명을 넘어설 거란다.

얼마 전 미국에선 한복을 입고 하원의원 취임 선서를 하는 여성이 화제가 됐어.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메릴린 스트리클런드 의원이야. 순자라는 한국 이름을 쓰는 그는 “한복은 내가 물려받은 문화적 유산을 상징하고 미국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라고 자랑스러워했지.

언젠가 우리 사회에도 베트남이나 필리핀 전통 의상을 입고 선서를 하는 국회의원이 나올 수 있을 거야. 그때가 오면 기꺼이 박수를 쳐줄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주면 좋겠구나. 오래지 않아 한국도 본격적인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면서 단일민족 국가라는 말은 과거의 유산이 될 거야.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시 한 소절을 들려주고 싶구나. 아직 날이 춥지만 머지않아 찾아올 봄을 생각하며 들어주렴. “해마다 봄이 되면/어린 시절 그분의 말씀/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보이는 곳에서/보이지 않는 곳에서/생명을 생명답게 키우는 꿈/…/항상 봄처럼 꿈을 지녀라.”(조병화 ‘해마다 봄이 오면’)

주정완 경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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