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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퍽' 최루탄에 뒤덮힌 美의사당…"민주주의가 점거 당했다"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대선 불복 집회에 참석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사당 건물을 점거하자 경찰 병력이 최루가스를 터뜨리며 진압에 나섰다. [김필규 기자]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대선 불복 집회에 참석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사당 건물을 점거하자 경찰 병력이 최루가스를 터뜨리며 진압에 나섰다. [김필규 기자]

"우리가 저 사람들을 뽑은 겁니다. 저기(의회)는 우리 건물이죠. 우리가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가는 겁니다."

'대선 불복' 트럼프 지지자들 의회 건물 점거 #BLM 운동가들과 도로 위서 일촉즉발 상황 #줄 타고, 창문 깨고… 상원 회의장까지 진입 #시위대 "다음 집회는 이만큼 평화롭지 않을 것"

6일(현지시간) 대선 불복 집회가 열린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 만난 디드 로이어는 시위대의 의회 점거가 폭력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들어가고 싶으면 들어간다”라고 말했다. 그는 대선 불복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테네시주에서 이곳까지 왔다. 로이어는 지난해 대선 이후 이번까지 세 차례 열린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더 위대하게)' 집회에 모두 참석했다고 했다. 강아지를 데리고 오지만 않았으면 자신도 의회 안으로 들어갔을 거라고 했다.

앞서 이날 오전만 해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백악관 인근 공원에서 비교적 차분하게 집회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극우 단체인 프라우드 보이즈의 단골 시위 장소다. 지난해 12월 대선불복 집회 당시 건물 앞에서 칼부림 사고가 있었던 해링턴 호텔도 예고대로 이날 문을 닫은 상태였다.

하지만 차분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오후 1시가 되자 이들은 의회로 몰려갔다.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선거 결과를 확정하기 위해 상·하원 합동 회의가 열리던 참이었다. 집회 도중 여기저기서 "회의를 막자"는 말이 나오더니 결국 이들은 의회로 행진하기 시작했다.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대선 불복 집회에서 BLM 운동가들과 트럼프 지지자들이 부딪치면서 아슬아슬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김필규 기자]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대선 불복 집회에서 BLM 운동가들과 트럼프 지지자들이 부딪치면서 아슬아슬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다. [김필규 기자]

이들이 행진하면서 백악관에서 의회로 이어지는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에선 일촉즉발의 상황도 발생했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M)' 운동가 10여 명이 나타나자 트럼프 지지자들이 이들을 둘러쌌다. 서로 욕설을 주고받으며 물리적 충돌로 이어질 뻔한 순간, 경찰차가 나타나 사이렌을 울리며 이들을 간신히 떨어뜨려 놨다.

트럼프 대통령이 앞서 트위터로 "경찰 병력을 존중해 달라"고 당부한 때문인지, 지지자들 사이에선 "폭력을 쓰지 말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대선 불복 집회에서 공주 복장을 한 참석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김필규 기자]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대선 불복 집회에서 공주 복장을 한 참석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김필규 기자]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대선 불복 집회에선 중국 공산당을 규탄하는 문구들도 눈에 띄었다. [김필규 기자]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대선 불복 집회에선 중국 공산당을 규탄하는 문구들도 눈에 띄었다. [김필규 기자]

하지만 의회 건물 앞에 이른 시위대들은 이미 흥분 상태였다. 시위대는 갑자기 잔디밭을 가로질러 의회 건물을 향해 달려들었고 경찰 병력은 이에 바라만 볼 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의사당 건물을 점거한 트럼프 지지자들은 오는 20일 대통령 취임식을 위해 설치한 철제 스탠드 위에도 올라가 ″4년 더″ 등의 구호를 외쳤다. [김필규 기자]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의사당 건물을 점거한 트럼프 지지자들은 오는 20일 대통령 취임식을 위해 설치한 철제 스탠드 위에도 올라가 ″4년 더″ 등의 구호를 외쳤다. [김필규 기자]

의회 건물 앞에는 오는 20일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을 위해 철제 대형 스탠드를 설치해 놓은 상태였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이곳에 올라 발을 구르며 “4년 더”를 외쳤다. 트럼프 대통령이 “4년 더” 해야 한다는 구호다.

경찰이 뒤늦게 시위대가 더는 들어오지 못하도록 계단 입구를 막아서자, 일부 시위대는 난간에 줄을 걸어 외벽을 타고 올랐다. 이들은 유리창을 깨고 내부로 진입했다. CNN의 앵커 제이크 태퍼는 생방송으로 나오는 이 장면을 보며 "민의의 전당이 무정부 상태가 됐다"고 한탄했다.

시위대가 난입하는 초유의 사태에 상·하원의 합동회의는 난장판이 됐다. 회의장에 진입하려는 시위대를 향해 내부에서 경찰이 총을 겨누며 막으려 했고,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등은 경호인력의 안내를 받으며 급히 대피했다. 이후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장면이 등장했다. 시위대가 회의장에 들어가 상원의장석에 앉아버린 모습이 전세계에 타전됐다. 미국의 역대 부통령(당연직 상원의장)이 앉아왔던 이 자리를 시위대가 점거한 것이다.
미국 민주주의가 점거당한 장면이었다.

 오후 5시쯤, 해가 지며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경찰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의회 건물 내부 곳곳에서 섬광이 보이더니, 바깥의 시위대를 향해서도 "퍽"하는 소리와 함께 최루가스가 발사됐다. 자욱한 연기와 함께 시위대가 조금씩 계단에서 밀려 내려왔다. 코를 막고 내려오는 이들 사이에서 경찰을 뜻하는 비속어인 "피그(Pigs)"라는 고함이 들렸다.

워싱턴 시 당국이 통금시간으로 정한 오후 6시가 가까워져 오자주 방위군 병력까지 동원했다. 무장한 군은 주요 도로를 봉쇄했다. 그럼에도 의회 건물 정면에 세워져 있는 기념비 위에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올라가 성조기를 흔들며 "(선거) 도둑질을 멈추라"는 구호를 끝까지 외쳤다. 이 기념비의 이름은 '평화 기념비(Peace Monument)'였다.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대선 불복 집회에 참석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 앞 평화 기념비에 올라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김필규 기자]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대선 불복 집회에 참석한 트럼프 지지자들이 의회 앞 평화 기념비에 올라가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 [김필규 기자]

숙소로 돌아가던 시위대 중 한 명인 그렉 프레슬리는 "오늘은 맛보기였을 뿐이다. 다음 집회는 평화롭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에는 더 많은 애국자가 모일 겁니다. 그때는 혁명이 있을 겁니다. 장담합니다."

워싱턴=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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