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철호의 퍼스펙티브

제 발등 찍은 조국·추미애…3전 3패 속에 숨겨진 비밀

중앙일보

입력 2021.01.07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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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왜 판사들의 과감한 판결이 꼬리를 무나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요즘 친문 진영은 ‘판사 닥공(닥치고 공격)’이 한창이다. 지난 연말 중요한 재판에서 뼈아픈 3전 3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직무배제·정직 중지 가처분 신청을 잇따라 인용한 행정법원 판사들을 향해 ‘사법 쿠데타’ ‘판레기(판사+쓰레기)’라며 저주를 퍼붓는다. 정경심 교수의 1심에는 “증거 없이, 의심과 선입견에 따른 나쁜 판결”이라며 ‘사법 개혁’이란 미명하에 “판사들도 손봐야 한다”며 핏대를 세운다.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40만 명 넘게 몰려가 ‘판사 탄핵’을 요구한다. 전방위로 마구 물어뜯고 있다.

행정법원 새 판사들의 독립성과
특수부 검사 수사능력 과소평가
형사사건을 정치화 시키거나
검찰총장 찍어 내기의 부작용

문제는 이 모두가 헛발질이란 점이다. ‘문파’들이 과연 판결문은 제대로 읽어 봤는지 의문이다. 법조계도 이번 3개의 판결문을 이례적이라고 본다. 우선 분량부터 남다르다. 보통 행정법원의 가처분 판결은 1쪽짜리가 대부분이다. ‘긴급한 필요에 의해 신청인의 가처분 신청을 인용(또는 기각)한다’는 딱 한 줄짜리 결정문도 흔하다. 굳이 자세한 설명을 달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 직무배제를 뒤집는 조미연 부장판사의 결정문은 9쪽이나 되고, 윤 총장을 복귀시킨 홍순욱 부장판사의 결정문은 24쪽에 이른다. 정 교수 1심 판결문은 무려 550쪽이다. 워낙 사회적 파급력이 큰 사안인 만큼 판단 이유를 자세하고 분명하게 밝혀 놓은 것이다. 판결문만 꼼꼼히 읽어봐도 쓸데없이 흥분할 이유가 없다.

행정법원의 숨은 비밀 … 사법 개혁의 역풍

지난달 19일 한 진보신문에 묘한 기사가 실렸다. 청와대 관계자를 인용해 추·윤 갈등의 뒷이야기를 전하며 민정수석실의 오판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가장 큰 실수는 민정실에서 윤 총장의 가처분 신청이 기각될 거라고 올린 보고가 문제였다. 윤 총장이 직무 정지될 것으로 본 것이다.” 왜 그랬을까. 당시 김종호 민정수석은 감사원 출신이다. 검찰과 법원을 잘 모를 수밖에 없다. 그 밑의 핵심은 이광철 민정비서관이다. 민변 출신인 그는 판·검사를 해본 적이 없다. 뼛속까지 ‘조국 라인’이다. 지난달 공수처법이 통과되자 SNS에 “여기에 이르기까지 조국 전 수석과 그 가족분들이 겪은 멸문지화 수준의 고통을 특별히 기록해 둔다”는 글을 남겼을 정도다. 이러니 극소수의 추미애 라인 검사나 좌파 판사들의 의견이 과잉 반영될 수밖에 없다. 대통령에게 올라가는 보고가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최근 주요 판결에 대한 도를 넘는 비판·저주

최근 주요 판결에 대한 도를 넘는 비판·저주

법조계가 보는 진짜 숨은 원인은 따로 있다. 문재인 정권이 밀어붙인 사법 적폐 청산이 그것이다. 오래전부터 행정법원은 워낙 중요하고 예민한 재판이 많아 대법원장이 믿고 맡길 수 있는 법원행정처·대법원 재판연구관·사법연수원 교수 출신을 앉히는 게 인사 관행이었다. 서울대 법대 출신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사법 농단 파문 이후 이런 성골(聖骨) 판사는 청산 대상으로 전락했다. 2018년부터 이런 경험이 전혀 없는 일선 부장 판사 중 실력이 뛰어나고 꼿꼿한 인사들을 행정법원에 입성시키기 시작했다. 그 상징적 인물이 홍순욱·조미연 판사다. 각각 고려대와 성균관대를 나와 줄곧 일선 법원에서 재판만 해왔다. 홍 판사는 ‘만점 판사’로 꼽혔고 조 판사는 학생운동에다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의 진보적 성향이다.

한 고위 판사는 “현 정권이 결과적으로 자기 발등을 찍은 셈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성골 출신 판사였다면 예전에 모셨던 대법원장이나 청와대를 의식해 정반대의 결정을 내렸을지 모른다”고 했다. 오히려 홍·조 판사가 정치적 눈치를 살피지 않고 구체적 증거와 법리만으로 깔끔하게 가처분 인용 결정을 내려버린 것이다. 국가 행정권 남용을 견제하는 행정법원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확실히 입증한 셈이다. 지금은 누구도 일선 판사들에게 함부로 입김을 넣거나 압박할 수 없다. 그런 독립적 판사들이 추미애 대신 윤석열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친문으로선 사법 적폐 청산의 역설이다.

대통령의 뒤늦은 태세 전환

퍼스펙티브 1/7

퍼스펙티브 1/7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실의 잘못된 보고를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뒤늦게 법무부를 향해 징계 과정에서의 절차적 정당성과 공정성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는 진보 성향의 조 판사가 ‘맹종’ ‘전횡’ ‘몰각’ 같은 날 선 표현을 동원한 것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홍순욱 판사의 결정문도 마찬가지다. 문파들은 “(판사 성향 문건이)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측면에서 매우 부적절하다”는 대목만 뽑아내 ‘윤석열=유죄’라고 흥분한다. 하지만 청와대는 ‘다만~’으로 시작되는 그 다음 문장에 주목한다. “추가로 심리할 필요가 있으며 신청인의 본안 청구 승소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그래서 문 대통령의 “인사권자로서 사과드린다”는 발표가 곧바로 나왔다고 한다. 본안 소송에서도 이길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검사 출신은 절대 민정수석에 앉히지 않겠다고 했다. 이번에 그런 의지를 접고 검찰 출신의 신현수 민정수석을 발탁한 것도 같은 뿌리에서 출발한다. 진영논리에 사로잡힌 아마추어들에게 맡겼다간 어떤 낭패를 당할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이 작동한 것이다. 더 이상 중도성향의 판사와 검사까지 적으로 돌리다간 자기 무덤을 판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문파의 난독증과 특수부 과소평가

최근 문파들은 정 교수의 1심 재판부, 특히 임정엽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8기)만 골라서 패고 있다. 법조계는 이 역시 헛다리를 짚었다며 혀를 찬다. 대등재판부를 잘 모른다는 것이다. 임 판사는 재판 진행만 맡았을 뿐 의결권은 3분의 1에 불과하다. 실제로 판결문 상당 부분은 권성수 판사(29기)가 썼다고 한다. 서로 의견이 갈릴 때는 가장 선배인 김선희 부장판사(26기)가 중심을 잡아준 것으로 전해졌다. 대등재판부의 의결권은 철저히 n분의 1이다.

법조계가 가장 놀라는 대목은 검찰의 실력이다. 이번 수사와 재판에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옛 특수부)가 핵심이다. 엘리트 검사들의 집합소다. 당시 검찰 수뇌부는 “법무부 장관에다 문 대통령의 강력한 후계자 가족에 대한 수사였던 만큼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어 가장 뛰어난 특수 2부를 투입시켰다”고 고백한다. 이들이 동양대 강사휴게실 컴퓨터와 딸의 신용카드 사용내역 등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증거들을 촘촘하게 캐낸 것이다.

추미애 장관에 의해 이 수사팀은 산산조각이 났다. 조 장관 가족 수사를 총지휘한 고형곤 부장검사는 대구지검으로 쫓겨갔다. 하지만 매주 서울로 출장 와 직접 재판에 참여했다. 통영지청으로 추방된 강백신 부부장검사도 매주 2회 서울을 오가며 정 교수 재판에 매달렸다. 왕복 9시간의 강행군을 마다치 않은 것은 직관(수사검사가 재판까지 직접 관여하는 것)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는 공판검사가 기록만 보고 재판에 임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수사 검사로서 사건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는 데다 상대측 변호사들이 어떻게 나올지 사전에 충분히 고민해 정밀 대응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증거와 법리까지 깔끔하게 정리해 재판에 임한다.

“조 장관이 서울대 형사법 교수 맞나?”

정 교수 측 변호인단은 총 15명이다. 반면 검사들은 5~6명으로 맞서고 있다. 그럼에도 정예 특수부 검사들의 능력이 1심 재판을 판가름 지었다. 이들은 공소장 변경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공소장 취소 대신 새로 캐낸 표창장 조작일 등 세부 사실을 수정해 추가기소라는 극약처방을 선택했다. 이중기소 논란에 따른 무죄 판결까지 각오했지만, 결국 신의 한 수였다. 재판부로부터 “이중 기소가 아니다” “정 교수가 표창장을 위조한 사실이 충분히 인정된다”는 판단을 끌어낸 것이다.

1심 결과에 대해 조 전 장관은 “너무도 큰 충격이다. 장관에 지명되면서 이런 시련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나 보다”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과연 조 장관이 서울대 로스쿨 형사법 교수인지 의문”이라며 고개를 흔든다. 형사소송법은 움직일 수 없는 팩트가 드러나면 이를 인정하고 그 위에서 해석의 차이를 다투는 게 대원칙이다. 왜 처음부터 모든 것을 전면 부인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 교수 항소심에 대한 전망도 비슷하다. 법조계에는 ‘여섯개의 눈은 두 개의 눈보다 더 많이 본다’는 법언(法諺)이 있다. 세 사람(합의부)은 한 사람(단독 판사)보다 훨씬 잘 심판한다는 뜻이다. 정 교수의 1심은 대등재판부가 여섯개의 눈으로 내린 판결이다. 게다가 판사들의 성비(性比)나 출신 대학(서울대·연세대·한양대)이 황금비율이다. 법조계에선 워낙 팩트가 확실하게 드러난 만큼 향후 어떤 재판부도 사실관계는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다만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하면 양형은 다소 줄어들 소지가 있다고 전망한다.

조 장관 측은 여전히 “(딸의 스펙에) 일부 과장은 있어도 허위는 아니며 설사 도덕적 비난의 대상일 수는 있으나 법적으로 판단할 사안은 아니다”고 주장한다. 검찰 개혁에 저항하려는 과잉·표적 수사라는 정치적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초동 변호사들은 “추미애 장관이 판사성향 문건을 흔들었는데도 왜 피해자인 판사들이 연거푸 윤석열 총장의 손을 들어주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법조계는 조 장관 측이 사법 문제를 자꾸 정치적 사안으로 변질시키는 것은 자승자박(自繩自縛)이나 다름없다고 안타까워한다. 결국 판사들은 팩트와 사실관계, 그리고 구체적인 증거에 따라 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제 조 장관 측이 법정 전략을 선회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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