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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미래 불안 탓에 결혼도 출산도 포기하는 청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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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영철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김영철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우리나라 출산율은 2019년 0.92명이었다. 지난해에는 0.8명대로 떨어져 대한민국은 선례를 찾기 힘든 초저출산국 신세가 됐다. 찔끔찔끔 파편처럼 내놓은 정부 대책의 한계를 인식한 KDI 등 국책연구기관이 통합적인 근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최근 협동연구를 진행했다. 각계 전문가로 드림팀을 구성했으나 시작 단계부터 충격이었다.

출산율 절벽으로 인구 감소 시작 #‘출산할 용기’ 북돋을 대책 절실

우선 전국 만35세 이하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향후 출산 의향이 있는가’를 조사했다. 미혼 여성의 부정적 응답이 62.5%에 달해 연구진의 비관적 전망을 훌쩍 뛰어넘었다. 더 어리둥절했던 것은 미혼 남성의 부정적 응답이었다. 기대와 달리 미혼 남성도 부정적 응답이 절반(52.4%)을 넘었다. 요즘 대학가에서도 미래의 출산에 적극적인 학생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지금의 청년들에게는 무자녀가 대세다.

청년들이 출산에 소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주거비용, 보육 문제, 사교육비, 장시간 노동 등을 예상했지만, 이 역시 보기 좋게 빗나갔다. 부정적으로 응답했던 이들의 약 절반이 ‘결혼할 생각이 아예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결혼 의향을 접었으니 출산은 고려 대상조차 아닌 셈이다.

다음으로 높은 응답은 ‘미래가 불안정하기 때문’이었다. 남성의 39.5%, 여성의 25.6%가 이렇게 답했다. 자신의 미래가 불안한데 자식까지 챙길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협동연구에서 비혼 선택과 미래 불안이 청년층 출산 포기의 약 80%를 설명한다는 점을 밝혔다. 하지만 어떠한 정부 대책이 필요할지는 끝내 답을 내지 못했다.

얼마 전 정부가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주거비용 보조, 영아 양육 수당 지급, 돌봄 체계 강화, 육아 휴직 장려 등 다양한 정책을 망라했다. 하지만 과연 청년세대의 고뇌에 대한 적절한 응답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2006년 이후 약 200조원의 예산을 쏟아붓고도 출산율은 1.2명에서 0.8명대로 추락하지 않았나.

비혼 인구의 증가는 대부분의 서구 산업사회에서 일반화한 현상이다. 전통적 결혼 제도에 대한 거부로 ‘비혼 가정’이 빠르게 확산했고, 어느새 ‘비혼 출산’은 전체의 40%를 넘어섰다. 우리나라 역시 주민등록상 1인 가구가 지난해 900만 세대를 처음 돌파해 전체 가구의 39.2%를 기록했다. 선진국과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 비혼 인구는 감히 출산을 꿈꾸지 못한다는 점이다. 결혼하지 않고 같이 살면서 출산만 하겠다면 무책임하다고 몰린다. 방송인 사유리씨의 비혼 출산 논란에서 보듯 과연 우리나라가 비혼자들의 자발적 출산까지 질타할 만큼 사정이 한가할까. 비혼자들도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혼인 외의 대안적인 제도를 마련하는 게 현실적 방안 아닐까.

다음으로 미래에 대한 청년층의 불안 심리에 대해 더 깊은 성찰과 고민이 필요하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파고는 청년층의 미래에 짙은 안개를 몰고 왔다. 불안정한 고용이 양산되고, 현재의 일자리 역시 언제 자동화로 대체될지 모를 운명이다. 최근의 코로나19 사태와 고용 절벽은 이들의 불안감에 기름을 부었다. 실제로 결혼 5년 차 부부의 무자녀 비중은 최근 빠르게 상승해 20%에 근접한다. 청년세대의 노동시장과 취업환경을 도외시한 채 과연 이들의 ‘출산할 용기’를 북돋울 수 있을까. 게다가 집값 폭등이라는 또 하나의 폭탄이 최근 몇 년간 청년층을 엄습하지 않았나.

출생자 수가 사망자 수를 밑도는 ‘인구 데드 크로스’가 지난해 발생했다. 국내 인구의 자연 감소가 시작됐다. 엄청난 충격을 우리 공동체가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한민족은 장기적 소멸의 길로 들어설 것이다. 근본적 대책에 대한 결단·용기·지혜가 절실한 시점이다.

김영철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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