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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년 호텔도 문 닫게했다, 트럼프가 명령 내린 '민폐 손님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극우단체 '프라우드 보이즈'에 엮인 호텔과 업체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프라우드 보이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강력 지지하는 단체다. 그런데 이들의 행동이 과격해 트럼프 지지집회가 종종 폭력 사태로 번지면서 당국에는 경계의 대상이 됐다.

트럼프 "대기하라" 했던 프라우드 보이즈 #친트럼프 성향, 이들과 엮이면 '의문의 1패' #"바이든 당선되면 우리 더 자주 볼 것"

지난해 12월 12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대선불복 집회에 참석한 프라우드 보이즈 회원들이 행진에 앞서 해링턴 호텔 앞에 모여있다. [EPA=연합뉴스]

지난해 12월 12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대선불복 집회에 참석한 프라우드 보이즈 회원들이 행진에 앞서 해링턴 호텔 앞에 모여있다. [EPA=연합뉴스]

워싱턴 시내의 백악관에서 가까운 해링턴 호텔은 4~6일 문을 닫는다. 6일 워싱턴에서 프라우드 보이즈가 참여하는 대대적인 대선불복 집회가 예고되자 아예 호텔을 차단해버렸다. 이 호텔은 어느 순간부터 프라우드 보이즈의 아지트가 된 곳이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12일 이 호텔 식당 앞에서 칼부림이 벌어지며 4명이 칼에 찔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호텔 측은 폐쇄 조치에 대해 "호텔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투숙객과 직원의 안전을 위해 문을 닫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이 호텔 106년 역사에서 완전히 영업을 중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프라우드 보이즈 때문에 난감해진 의류 업체도 있다. 이들이 유니폼처럼 입고 다니는 티셔츠 브랜드인 프레드 페리다. 검은 바탕에 노란 월계관 로고가 박혀 있는 티셔츠인데, 비슷한 디자인에 자신들의 이니셜인 'PB'를 새겨 단체의 상징으로 삼기도 했다.
업체에선 이미 2017년 회장이 직접 나서 "프라우드 보이즈의 사상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창업자 페리는 영국 노동자 계급 출신으로 동유럽 유대계 이민자들과 함께 사업을 일으켰던 만큼, 백인 우월주의 단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프라우드 보이즈의 페리 사랑이 계속되자 급기야 지난해 9월 업체 측에선 성명을 내고 해당 제품의 미국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미 극우단체 프라우드 보이즈의 리더인 엔리케 타리오가 지난 4일 워싱턴 경찰에 체포될 때 소지했던 것으로 알려진 탄창. 프라우드 보이즈를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AP=연합뉴스]

미 극우단체 프라우드 보이즈의 리더인 엔리케 타리오가 지난 4일 워싱턴 경찰에 체포될 때 소지했던 것으로 알려진 탄창. 프라우드 보이즈를 상징하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AP=연합뉴스]

프라우드 보이즈는 6일 워싱턴 대선불복 집회를 앞두곤 총기 문제로 긴장을 야기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프라우드 보이즈를 비롯한 일부 단체가 대선 불복 집회에 총기 휴대를 종용하면서 총기를 밀반입하는 방안까지 논의하고 있다고 5일 보도했다.
 미국 수도인 워싱턴은 다른 곳에 비해 총기 규제가 엄격한 편이다. 시내에서 공개적으로 총기류를 들고 다니는 게 금지돼 있고, 감췄다 하더라도 다른 주에서 가져온 총은 휴대할 수 없게 돼 있다. 특히 대선 불복집회의 성격상 트럼프 찬반 세력 간의 충돌로 번질 수 있어 시 당국도 집회가 예정된 광장과 백악관, 의회 주변 곳곳에 총기 휴대를 금지한다는 경고문을 붙여놨다.
그러자 프라우드 보이즈는 워싱턴 시내로 몰래 총을 반입하는 방법을 텔레그램이나 보수단체들이 즐겨 쓰는 소셜미디어인 팔러 등에서 공유하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소셜미디어 타임라인에는 "(총기 소지는) 불법인 것을 알고 있지만 이건 전쟁이고 법을 뛰어넘는 단계에 와 있다" "자유 미국인으로 살자. 네 무기를 가져와라"는 등의 글이 올라있다.
프라우드 보이즈는 지난해 9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대선 1차 TV토론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비판해 보라는 주문에 "프라우드 보이즈, 물러서라. 대기하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에 프라우드 보이즈를 자극한 건 트럼프 대통령이다. 지난달 트위터에 "1월 6일 워싱턴에서 큰 시위가 열릴 것이다. 그곳에 와라. 거칠 것이다!"라고 트윗을 남겼다.
이를 두고 지역방송사인 WUSA의 한 기자는 5일 "토론 때 '대기하라'고 했던 이들에게 이번에는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모이라'는 명령을 내린 셈"이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인 리퓨즈 파시즘의 대변인인 선새라 테일러는 "워싱턴 주민의 안전뿐 아니라 우리 미래를 생각할 때 너무나 무서운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월 미국 오리건 포틀랜드에서 프레드 페리 제품으로 보이는 티셔츠를 입고 있는 프라우드 보이즈 회원들이 집회에 앞서 기도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해 9월 미국 오리건 포틀랜드에서 프레드 페리 제품으로 보이는 티셔츠를 입고 있는 프라우드 보이즈 회원들이 집회에 앞서 기도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오는 20일 백악관의 주인이 바뀌어도 워싱턴에서 이들 극우단체의 활동에는 큰 변화가 없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프라우드 보이즈를 이끄는 엔리케 타리오는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벌써 바이든이 하려는 정책 중에 동의할 수 없는 게 보인다"며 "바이든이 취임하면 워싱턴에서 우리를 더 자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김필규 특파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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