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준공업지역에 주택을 공급하는 절차에 착수한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 시내 저밀 개발된 준공업지에 충분한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힌 지 이틀만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공장부지가 포함된 준공업지에 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정작 변 장관이 강조한 '가격안정'과 '주택품질'과 거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주거 복합공간으로 개발…7000호 규모”
서울시와 국토교통부는 오는 7일부터 민·관합동 준공업지역 순환정비사업 공모에 들어간다고 6일 밝혔다. 준공업지역 내 노후화한 공장용지를 산업시설과 주거시설이 공존하는 ‘복합산업공간’으로 개발하는 내용이다. 서울시는 공모를 통해 시범 사업지를 발굴하고 향후 3~4곳 수준의 후보지를 선정, 총 7000호를 공급할 수 있는 부지를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정부의 잇딴 부동산 대책에도 불구, 최근 고공행진 중인 서울 집값을 의식한 듯 변 장관은 지난 5일 서울시와 경기도, 한국토지주택공사(LH)·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이 참여한 간담회에서 “주택시장 조기 안정이 시급하다”며 “서울 시내에 저밀 개발 돼 있는 지하철 역세권과 준공업지역, 저층 주거지 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 서울 도심에서도 충분한 양의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고 했다.
같은 날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전국주택가격동향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주택종합 매매가격은 2.7% 뛰었다. 2018년(6.2%)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재작년 1.3% 상승한 점을 고려하면 상승률이 2배 이상 높다. 전국단위로 봐도 전달 대비 집값 상승률은 10월 0.32%→11월 0.54%→12월 0.9%로 오름폭을 키우고 있다. 서울 전셋값도 3.7% 올랐다.
1만㎡ 이하는 '주상복합'처럼…일정 비율은 공공임대로
서울시와 국토부가 집값안정을 위해 히든카드로 내민 '준공업지역'은 경공업이나 환경오염이 적은 공장을 수용하는 곳이다. 주거·상업·업무시설이 들어설 수 있다는 점에서 일반·전용공업지역과 차이가 있다. 서울 내 준공업지역은 서울 전체 면적의 3.3%인 19.98㎢다. 영등포(5.025㎢), 구로(4.277㎢), 강서(2.920㎢) 등에 몰려있다. 이번 후보지 공모 대상은 서울에 있는 3000㎡ 이상 공장용지다.
도심 공장부지에 집을 짓겠다는 발상은 그럴 듯 하지만 맹점이 있다. 준공업지다보니 주택을 공급하려면 일정 비율 이상의 ‘산업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용지가 1만㎡ 이하인 경우 대체로 한 건물에 산업·주거 시설이 공존하는 복합건물로, 1만~2만㎡인 경우는 별도 건물로 분리하도록 했다”며 “그 중 일정 비율은 공공임대 형식으로 공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집을 짓지만 결국 한 건물에 산업시설이 들어서야 하고, 공공임대도 포함해야 한다는 뜻이다.
준공업지에 공공임대 혼재…“교육여건, 가격안정 한계”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상복합처럼 산업시설에 주거 시설이 혼재된 만큼 자녀 교육·편의 여건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 이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준공업지에 공공임대가 혼합된 구조로 주택이 들어서는 거주여건을 고려하면 변 장관이 강조한 ‘가격안정’과 ‘주택 품질’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변 장관이 밝힌 “닭장으로 폄훼되는 개성 없는 주택이 아닌 삶터를 넘어선 일터, 놀터, 돌봄의 복합적인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인프라와 주택의 품질을 높여야 한다”는 취지와는 거리가 있다.
심 교수는 또 “공공임대의 경우 전체 주택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적은 만큼 전체 집값의 안정 측면에서도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며 “서울 집값 폭등의 출발점은 ‘마·용·성’과 강남인 만큼 결국 이 인근에 대단지 민간 분양아파트를 공급하는 정책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도시계획 조례를 개정해 당초 50%였던 산업시설 의무비율을 40%로 낮추고, 주택 비율을 60%까지 올렸다”며 “산업시설 중에서도 10%를 기숙사·오피스텔로 할 수 있도록 용도도 개정하고 산업 복합건물 면적의 경우 한도를 2만㎡까지 늘렸다”고 설명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