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새해 연휴 외갓집 휘젓고 철수하는 딸네에 콧노래가

중앙일보

입력 2021.01.06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73) 

새해 연휴를 맞아 손자들이 쳐들어왔다. 풍경으로 보면 천국처럼 보이지만 금세 난장판이 되었다. 훌러덩 옷을 벗어 던지고 노는 아이들이 감기에 걸릴까 봐 보일러 온도를 최고로 높인다. 할머니가 되면 가장 아끼는 보일러 기름 타는 소리가 대포 소리만큼 크게 들려온다. 덜덜덜.

딸은 망아지처럼 뛰어다닐 아이들이 코로나 사태로 갇혀 있는 상황이 못내 안쓰럽다. 기회만 되면 마당 있는 이곳으로 쳐들어온다. 모녀지간에도 서로 눈치 보느라 외갓집 최장투숙 기간이 2일인데, 이번 연휴엔 어떤 구박도 이겨내고 꿋꿋이 3일을 지낼 심산으로 온 것 같다. 이 겨울 가장 춥다는 연휴 날씨에도 아랑곳없이 내복 바람으로 들락날락하며 소리 지르는 아이들을 눈이 부시듯 황홀하게 바라보며 실컷 뛰란다. 우당탕탕 다락 오르내리는 소리가 다칠까 봐 불안하다. “문 닫아라”, “뛰지 마라”. 따라다니며 야단치면 자기 자식 혼내는 게 미운지 내게 눈총을 준다. 아이들이 난장판을 쳐도 잔소리하지 말고 “아이고, 야야” 그러고 말라던 이웃 어르신 말씀이 생각난다. 용돈 줄어든다고, 하하하.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고 했던 수업. 올해 2학년이 되는 둘째는 초등학교 생활을 어떻게 기억할까? [사진 pixabay]

코로나19로 마스크를 쓰고 했던 수업. 올해 2학년이 되는 둘째는 초등학교 생활을 어떻게 기억할까? [사진 pixabay]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맨발에 동물들과 깔깔거리며 달리고, 가을에 심어놓은 유채 나물 밭을 삽으로 다 뒤집어 놓으며 흙장난한다. 꼬맹이까지 현관을 들락거릴 땐 옷에 소독제를 뿌리고 손 소독하는 것은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신기하다. 외식을 시켜주겠다고 나가자 하니 다섯 명이 넘어 식당에 가면 안 된다고 미리 손사래 친다. 뉴스를 많이도 들었나 보다. 꾀 많은 녀석은 눈치껏 할머니 밥이 제일 맛있다고 추켜세운다.

올해 2학년이 되는 둘째는 초등학교 생활을 어떻게 기억할까? 교실에서도 식당에서도 마스크 쓰고 받은 수업과 밥 먹기, 묵언 대화 등 두근거리며 시작한 초등학교 시절을 두렵고 힘들었던 풍경으로 기억할 것이다. 실제 아이네 학교 선생님이 확진자로 격리되는 바람에 온갖 검사로 삼엄했던 학교생활이었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며 유치원에 입학한 셋째는 마스크를 안 쓰면 문밖에 못 나가는 줄 안다.

대화도 살살, 걸음도 살살, 움직임도 살살, 아파트에선 무조건 조용히 하라는 말이 엄마 입에 붙어 따라다니니 애들도 힘든 시간이다. 그들에겐 혼자 노는 방법이 휴대폰을 가지고 오락하는 것이 전부인 셈이다. 친구도 못 만나고 갇힌 공간에서 조용하게 있던 아이들이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개구쟁이로 바뀌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나마 셋이라 다행이다. 그래서 나의 2021년 ‘미리 보는 10대 뉴스’에는 내가 사는 이곳을 ‘할머니 집 북스테이’로 환경을 바꾸고 다듬어 아이들과 함께 안동을 여행하는 지인에게 빌려줄 계획도 들어 있다.

아이들을 내려놓고 10분 거리인 자기 집에 잠시 다녀온다며 나간 딸이 세 시간이 넘어 한참 후에 들어온다. 혼자서 커피 한잔하고 혼자서 하릴없이 거리를 헤매다가 왔단다. 휴원, 휴관으로 애 셋을 이끌고 다니다가 간만에 혼자 걷는 시간은 숨이 확 트이고 너무너무 좋았단다. 그것도 짠하다. 친정 엄마와 함께 하는 3일 동안은 아이들도 뒷전이고 삼시 세끼를 차려 바치면 먹고 책 보다가 자고 또 먹고 잔다. 방송 다큐멘터리 감이다. 친정은 이런 곳인가.

첫째와 둘째가 미안한지 한 녀석은 청소기를 들고, 한 녀석은 설거지를 도와준단다. 초등학교 1학년이 눈치가 백단이다. 엄마를 변호하느라 주절거리는 말이 재밌다.

“엄마 혼자서 학교도 못 가는 우리 돌보느라 힘들었거든요. 빨래에 청소에 동생은 또 얼마나 말썽꾸러기인지 말이에요.”

다시 시작하는 1월 1일도 험난한 세상으로 연결되지만 눈치껏 세상을 아우르며 가다 보면 마스크도 벗겨질 날이 오겠지. [사진 pixabay]

다시 시작하는 1월 1일도 험난한 세상으로 연결되지만 눈치껏 세상을 아우르며 가다 보면 마스크도 벗겨질 날이 오겠지. [사진 pixabay]

누워 뒹구는 제 어미가 할머니에게 혼날까 봐 눈치껏 감싸는 녀석을 보니 웃음이 난다. (얘들아, 이 할머니는 너희보다 내 딸이 더 측은해)

출장 간 사위가 3일 만에 귀가했다. 전쟁 속에서도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연휴도 없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수고한 람보 같은 아빠다. 양손 가득 선물 담긴 비닐 보따리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굽신하고 인사하며 들어온다. 아이들이 매미같이 매달린다.

다시 시작하는 1월 1일도 험난한 세상으로 연결되지만 눈치껏 아우르며 가다 보면 마스크도 벗을 날이 오겠지. 철수하는 딸 부대의 뒷모습을 보며 해방감에 눈치 없이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이래저래 모두가 힘들지만, 마음만은 행복하면 좋겠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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