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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선 불복 허튼짓 말라’··· 네오콘 상징 체니의 반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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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11 사태를 지휘 중인 딕 체니 당시 부통령. AFP=연합뉴스

2011년 9.11 사태를 지휘 중인 딕 체니 당시 부통령. AFP=연합뉴스

재임 시절 실세 부통령으로 인정받았던 딕 체니(80) 전 부통령. 조지 W 부시 대통령(공화당 정부)의 부통령으로 이라크 전쟁을 주도했던 대표적 네오콘이다. 그런 그가 지난 3일(현지시간) 반(反)트럼프 전선의 선봉에 섰다. 역대 국방장관 10명이 이름을 올린 워싱턴포스트(WP)의 '대선 승복' 기고문에 자신도 참여하면서다. 체니는 1989년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국방장관을 역임했다.

트럼프 이란핵합의 파기땐 찬성 #이번엔 대선승복 촉구에 이름 올려 #미국 고립주의 트럼프와 지향점 달라

이 초당적 기고문은 군 통수권자인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선 결과에 승복할 것을 종용했다. 동시에 “군을 선거 불복 과정에 혹시라도 관여시킨다면 위험하고도 탈법적이며 헌법에도 어긋나는 일”이라며 “그런 일을 지시 또는 수행하는 군인 및 관료는 형사처벌을 포함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윌리엄 코언 전 국방장관은 3일 CNN에 “국방장관들이 이렇게 (정파를 초월해) 뭉친 것은 무척이나 이례적”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이 위헌적이라는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부시 대통령과 체니 당시 부통령. 2007년 사진이다. AP=연합뉴스

부시 대통령과 체니 당시 부통령. 2007년 사진이다. AP=연합뉴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4일(현지시간) 체니의 기고문 동참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진보파에겐 ‘악당’으로 통하는 체니 전 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초당적 견제 세력에 합류한 것은 예상 밖”이라고 보도했다.

반(反) 트럼프 진영의 본영과도 같은 민주당 진보파에게 체니는 불편한 상대다. 진보 성향 영화인들이 제작 및 감독한 영화 ‘바이스(Vice)’는 체니를 주인공으로 삼았는데, 제목이 중의적이다. 부통령(Vice President)을 뜻하면서도, ‘바이스’라는 단어 자체에 ‘범죄, 악덕 행위’ 등의 의미가 있다.

영화 '바이스'. [사진 콘텐츠판다]

영화 '바이스'. [사진 콘텐츠판다]

영화에서 체니는 부시 전 대통령을 전면에 내세운 뒤 자신이 외교ㆍ안보 정책을 주무른다. 애틀랜틱은 ‘왜 미국인들은 딕 체니를 증오하는가’라는 기사에서 “재임 당시 체니 부통령 지지율은 13%까지 떨어지며 역대 부통령 중 최저 기록을 남겼다”고 전했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그의 지지율은 부통령 첫해엔 60%였으나 2009년 퇴임 당시엔 30%로 반토막이 났다.

체니가 처음부터 트럼프를 비판했던 것은 아니다. 2018년엔 트럼프 대통령의 이란 핵합의(JCPOA) 탈퇴를 공식 지지했다. 이란을 '악의 축'으로 봤던 네오콘의 시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은 올바른 결정이었다. 그러나 2019년부터 공개 석상에서 트럼프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트럼프의 부통령인 마이크 펜스와 함께 참석한 미국기업연구소(AEI) 행사에선 “당신네 행정부를 보면 정통 공화당은 아닌 것 같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외교ㆍ안보 정책을 결정하고 발표하는 행태를 꼬집었다. 무엇보다도 공화당의 네오콘 입장에선 이라크전을 '불필요했던 전쟁'으로 비판하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군사적 역할을 축소하려는 트럼프 스타일은 용납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체니는 정치 일선에선 물러나 있지만 그의 장녀 리즈 체니(54)는 와이오밍주의 하원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차녀 메리 체니(51)는 공화당의 기독교 기조엔 맞지 않는 레즈비언이라 관심을 끌었다. 차녀를 위해 체니는 대통령에 대한 야망을 접었다는 게 정설이다. 체니는 극우 네오콘이면서도 동성애 옹호론자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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